"햇볕정책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전환"

중간 선거 다음날 열린 브루스 커밍스 강연

등록 2006.11.09 16:22수정 2006.11.09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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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근교에 위치한 볼드윈 월리스 대학교에서 중간선거 바로 다음날인 11월 8일 저녁(현지시간) 저명한 한국학 석학인 브루스 커밍스 교수의 강연이 열렸다. 이 강연회에서 커밍스 교수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만 규정하는 미국의 언론을 비판하고 미국과 북한의 역사적 관계를 설명했다.

"미국인들은 보통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개입의 역사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며, 북한의 이해관계와 대외정책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하다"고 말문을 연 커밍스 교수는 <뉴욕타임즈>가 최근 북한은 "확실히 미친 나라(undeniably crazy)"이며 김정일은 위험한 "광인(mad man)"이라고 묘사했음을 상기시켰다.

강연중인 브루스 커밍스 교수
강연중인 브루스 커밍스 교수Dennis Hart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강연의 중요한 주제였다. 커밍스 교수는 차근 차근 역사적 기억이 왜 중요한가를 짚어갔다.

"부시와 체이니는 처음부터 북한의 정권교체를 목표로 했다. 미국인들에게는 이것이 생소한 이야기이지만, 북한사람들은 미국이 1950년 똑같은 시도를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한국전쟁에서 무려 4백만명의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압록강까지 북진해 올라간 미군들은 북한군이 밀집해 있던 곳에 엄청난 크기의 폭탄을 떨어뜨렸고, 결국 실패하긴 했지만 북한 정권의 지도자들을 잡아서 모조리 참수시킬 계획을 세웠다.

북한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지하대피시설, 철저한 방위체계, 그리고 최근의 핵무기 개발은 모두 미국과의 전쟁의 기억에 대한 반응이며 생존을 위한 자기 방어의 노력이다. 미국의 역사적 기억상실증과 미국 언론이 부추기는 증오가 결합하여 전쟁의 발판을 다지고 있다."

강연회에 참여한 청중은 약 40명 정도로 작은 규모였지만 대부분 인근의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수들이었고 몇몇 학생들이 참석하여 진지하게 경청했다. 다음은 청중과의 일문 일답을 요약한 것이다.

"중간 선거는 미국 정치의 분수령"


- 오늘 럼즈펠드 국방부 장관이 전격 사임했는데 이로써 북한과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오리라고 생각하는가?
"어제의 중간선거는 미국 정치의 분수령이 될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부시의 적들에게는 '부시는 틀렸고 우리가 옳았다'는 메시지가 되었다는 점에서 럼즈펠드의 사임은 중대사건이다. 하지만 부시에게 럼즈펠드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딕 체이니 부통령이고 그는 네오콘의 핵심이다. 부시는 아직도 '이라크는 베트남과 다르다. 우리는 이라크에서 적어도 독재자를 제거했다'고 강변하지만 이라크는 테러리스트들의 온상이 되어가고 있다."

- 미국이 1945년에 한국을 분단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소련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했을 것이고 김일성 정권이 수립되었을 것이다. 남한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한반도 전체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고 아마 소련보다 중국과 더 친한 나라가 되었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역사에서의 가정이란 현실성이 없는 얘기다."


- 이라크전쟁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나는 중동전문가가 아니므로 잘 모른다. 그렇지만 미국이 점령국(이라크)에 대해 아주 무지하다는 사실은 미국이 미군정 당시 한국에 대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는 사실과 비슷하다."

- 북한이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가?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다. 미국인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북한이 분노에 가득차 이성을 잃고 어딘가에 핵공격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미국이 수천개의 핵폭탄과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이 모를 것 같은가? 핵도발을 했다가는 미국이 북한을 완전히 불 태워버리리라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북한이 전쟁을 선택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이 너무나 위태로워진 나머지 전쟁을 불사해야하는 상황이라면, 미국이 핵공격을 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 가능한 한 빨리 남쪽으로 내려가서 남한을 점령할 것이다. 한반도에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아주 끔찍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미 국방부도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한다면 미국이 반드시 이긴다는 법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군사주의도 큰 문제이다. 일본 TV에서는 납치사건에 대해 10분마다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 북한이 자체 생산한 핵무기를 다른 나라로 수출할 가능성은 없는가?
"북한이 핵무기를 수출해서 이익볼 일이 하나도 없다. 국제원자력기구에서는 북한에서 만들어진 핵무기를 식별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핵무기는 발신인 주소가 씌어있는 우편물과 같다."

- 지금까지 한국에 대한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는데 한국정부는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는가?
"부시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한국정부는 좋은 선택을 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부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씨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미국정부에 대해 거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김대중 대통령 이후 계속되고 있는 햇볕정책의 성과는 엄청난 것이다. 이전에는 남한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을 비인간적인 존재, 악 그 자체인 존재로 보았으나 이제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 아니면 좀 삐딱한 사촌형제 보듯이 한다. 햇볕정책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전환이었다."

- 미국의 일반 국민들이 한국을 좀더 이해하고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이 나아진다면 미국 정부의 대한반도 정책에도 변화가 올 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런 희망이 없다면 내가 이런 강연을 하고 다니지 않을 것이다. 역사가 우리에게 얼마나 현실적인 연관성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어느 순간에는 역사가 회피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올 것이다."

- 아까 슬라이드로 매들린 올브라이트와 김정일이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셨는데 부시 정권이 물러나고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다시 그런 화해의 기회가 오리라고 생각하는가?
"당시 올브라이트는 마이클 조던의 사인이 들어있는 농구공을 선물했고 김정일은 그자리에서 드리블을 해보았다고 한다. 속담에서는 '일단 말이 마굿간을 나서면 다시 끌어들이기 어렵다'고 하지만, 최근 워싱턴을 여러번 방문하면서 한반도 정책전문가들을 만나고 보니 그들도 8년 전에 우리가 이런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고 북한에 대해 합리적인 인식을 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덧붙이는 글 | 데니스 하트 기자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켄트주립대학에서 한국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데니스 하트 기자는 미국 오하이오주의 켄트주립대학에서 한국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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