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체벌의 기억, 왜 매를 들었을까?

결국 '소통'의 문제...아이 면면을 안다면 '체벌' 어려워

등록 2006.11.11 11:35수정 2006.11.14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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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 학교의 수업 모습. 아이들의 면면에 대해서 잘 안다면 체벌이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한 학교의 수업 모습. 아이들의 면면에 대해서 잘 안다면 체벌이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 오마이뉴스 장재완


초임 교사 시절 무던히도 매를 들었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과하다 싶은 것이었지만 그저 '교육의 열정'이자 '사랑의 매'이려니 여겼고, 아이들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갔습니다.

지금도 막무가내인 아이들 앞에서 가끔 '욱' 하는 감정이 솟구치기도 하지만, 순간적인 화를 억누르기 위해 눈을 감고 구구단을 외는 등 별의별 노력을 다하면서 체벌을 절대 하지 않겠노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짐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를 들면서 교사 개인의 감정이 섞였는가 여부를 따져 묻는 '교육적 목적'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여왔습니다. 교육 행위의 다양한 과정 또는 수단 중의 하나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했기에 오로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교사의 처지에서 매를 들 수밖에 없는 '사정'에 먼저 너그러워졌고, 강도(?)의 문제로 여겨지기 십상이었습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피교육자인 학생의 입장은 원천적으로 배려될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체벌에 관한 설문을 벌였는데, 체벌에 관한 조금은 놀라운 설문 결과가 나왔습니다. 70%에 이르는 전교조 교사들이 '체벌은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답했다고 해서 모두가 체벌을 하고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체벌에 비교적 관대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것은 학교 내에서 교사들의 아이들에 대한 통제력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기본적인 소통조차 어려워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소통 창구가 점점 좁혀지다 보니 기존의 관행대로 '대증요법'이 곧잘 동원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을 심하게 체벌했다는 보도가 언론을 통해 나오면 대안 보다는, 서로 상처주기에 급급한 것이 오늘 우리 교육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교육과 체벌, '소통'의 문제

'교육'이라는 단어와 그다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체벌'을 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또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관행이 되었을까? 남 얘기하기 전에, 나는 왜 지금껏 체벌을 엄연한 교육적 행위로 여기고 행해왔는가?


결국 소통의 문제라는 데에서 답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두루뭉수리 '세대차이'라고 넘겨버리는 것도, 교육문제에 관한 한 만병의 근원이라고 여기는, 동네북(?) '입시'에 모든 탓을 돌리는 것도 어째 좀 비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교단에 아이들 앞에 선 (교사라기보다는) '선생님'으로서, 제가 가는 길이, 또 제가 행동하는 모습이 적어도 아이들의 그것보다는 '올바르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점입니다. 도덕적으로 그들보다 앞서 있다는 생각은 가슴 속으로부터 거리낌 없이 체벌을 정당화시키는 근거가 돼 주었습니다.

교사를 교과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한정시켜본다면 아이들보다 훨씬 앞서 있을 테지만, 양심과 도덕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꼭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사 역시 수많은 기성세대 중의 한 사람으로서 다양한 '역할 모델'만 되어주고 그 다음은 온전히 아이들 각자에게 맡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를테면, 수업 등 아이들과 마주하는 학교생활 속에서 교사마다 생각과 개성을 아이들 앞에 진솔하게 드러내고 아이들과 서로 공감하고 논쟁하면서 아이들 개개인마다 '색깔'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도 바람직한 교육이 아닐까요?

또, 이런 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학부모들은 이따금 학교에 찾아와 자녀의 학교생활은 어떤지,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으며 어떤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는지 등을 궁금해합니다. 자녀의 담임교사에게 묻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보편적인 '레퍼토리'이지만, 대충 얼버무리기만 할 뿐 사실 딱 부러지게(?)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1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반 아이들 44명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업 시간을 빼면 하루에 반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조회, 종례 시간을 다 합해도 많아야 한 시간 남짓입니다. 1년 이래 봐야 그 시간 동안 만나 진지하게 얘기 나눌 수 있는 아이가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아이들의 면면에 대해서 잘 안다면 체벌이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 성격도 다르고 그에 따른 대화법도 다 다를 테니 획일적이고 강압적인 체벌이 일어날 리 없습니다. 그러자면 많이 만나야 하고, 많이 얘기 나눠야 하며, 함께 어울려 뛰어놀아야 하지만, 그럴 시간도 여유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교육'의 대상이 아닌,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을 따라가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럴진대 체벌에 일말의 정당성을 부여했던 '교육의 목적'은 매우 옹색한 변명이 되고 맙니다.

'학생 수' 줄여야 한다는 '뻔한' 대안 외에는...

사람으로 태어나 마땅히 교육을 받아야 하고, 또 학교가 없어서는 안 될 진정 필요한 곳이라고 한다면, 교육의 품질을 결정하는 교사와 교육의 진정한 의미인 아이들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야 한다는 시급하고도 '뻔한' 대안 외에도, 대화 기법과 상담 능력을 기르기 위한 교사들의 재교육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교육과정에서 수업의 비중보다 아이들과 만나 얘기 나눌 수 있는 특별활동 시간이 더 중시되어야 합니다.

또 자녀에 대한 학부모들의 역할도 커져야 합니다. 가정에서 마땅히 챙겨야 할 부분까지도 학교(또는 학원)에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또는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가정의 역할을 대신해 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자녀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 만큼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짐을 나눠지도록 해야 합니다.

좋게 말하자면, 학교 내 체벌은 교사의 교육행위에 '과부하'가 걸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짐을 너끈히 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그 짐을 조금씩 나눌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학교 내에서 체벌을 없애는 것은 참다운 교육을 하는 일만큼 길고 긴 여정이 될지도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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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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