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이라크 시아파 거점인 바그다드 사드르시티에서 6건에 이르는 차량폭탄테러가 발생해 46명이 죽고 204명이 부상당했다. 사드르시티 거리 테러현장의 불탄 차량 잔해.로이터/연합뉴스
첫째, 후세인 사형 후 이라크 내전의 확대 여부이다. 부시 대통령에게 있어 자신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는가의 기준은 첫째가 이라크이고 둘째도 이라크이다. 만약 이라크 이슈가 계속 확대된다면 이는 북핵이 관리해나갈 이슈 정도로 국한됨을 의미한다. 더구나 북한보다 100배는 골치가 아프고 더 큰 국제정치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란이 기다리고 있다.
더욱 자신감을 가진 헤즈볼라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결국 그간 부시가 발행한 수표가 부도가 되어 하나 둘씩 돌아오며 그를 괴롭힐 것이다. 이러한 중동 지역 정세의 불안정성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에너지를 상당히 빼앗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부시는 이라크 해법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는 과거 초특급 소방수인 베이커 국무장관이 그를 2000년 플로리다 투개표 소동에서 노회하게 구출하였듯이, 이제 다시 그에게 절실히 기대고 있다. 현재 이라크 스터디 그룹을 주도하는 베이커의 안이 나오면 부시는 초당적 합의의 모양새 하에 베이커 보고서의 부분을 채용하며 위기에서 탈출하고자 할 것이다.
뾰족한 대안이 없는 민주당으로서는 곤혹스러울 뿐이다. 더구나 지금은 대선 시즌이다. 만약 조기 철군이 이후 엄청난 부작용을 야기한다면 이는 발 앞에 대권이 저절로 굴러들어오고 있는 힐러리나 고어에게는 악몽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라크 해법 집중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가 북핵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 방식은 물론 어떻게 해서든 6자회담의 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금융제재나 6자회담 내 양자회담에 있어 보다 더 유연한 태도를 취하며 민주당이나 공화당 중진의원들의 직접 대화 공세를 피해가려 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문제가 단순하지 않는 것은 북한의 핵실험이 이루어진 이상,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기존 6자회담보다 더 골치 아픈 아젠다가 필연적으로 논의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는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관리가 강조하듯이 바로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제거하는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중앙일보> 11일자) 하지만 과거 쿠바미사일 위기가 이미 보여주듯이 이러한 제거 수단의 마련은 양국간의 신뢰 수준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욱 더 상호간의 불신과 의혹이 심화된 현 지형 하에서 이 과제는 무수한 암초가 기다리고 있다.
둘째로 대북 문제의 태도가 일방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간의 게임임을 고려할 때 북한의 의도가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과연 김정일 위원장이 현재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길은 없다. 좀 더 정국의 진행 상황을 보아야만 그의 의도가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추론해보면 그는 최소한 부시 행정부 기간 동안 획기적 딜에는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는 부시 행정부의 심각한 약화와 이라크 해법에의 올인을 목격하면서, 이 기회를 몸값을 올리는 기회로 삼고자 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그가 더욱 더 몸값을 올려 향후 새로운 대통령과의 빅딜을 기다리며 장기적 교착 상태를 만들어내고자 한다면, 핵 제거 수단 마련 논쟁에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회담이 지연될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섣부른 예단 보다는 그의 회담에 대한 향후 태도를 보면서 평가해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2008년 대선에서 고어 등이 당선된다면 그의 지연 전략이 결실을 얻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당선 후 일시적으로는 고어가 강경한 스탠스를 취하겠지만 클린턴 보다 더 철저한 실용주의자인 그는 핵제거에만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멕케인이 당선된다면? 김정일은 뜻하지 않은 일정의 차질을 경험할 것이다. 북한 문제에 있어 부시보다도 더 강경한 신념의 멕케인도 현실적으로는 뾰족한 수가 없지만 최소한 대쿠바 정책처럼 장기적인 고사 전략을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로 미국 내에 조사 정국의 도래와 그 파장의 정도이다. 민주당 내에는 지금 두 가지 기류가 긴장 속에서 존재한다. 하나는 부시 대통령의 제왕적 대통령제 행태와 그간 수년간 다수당으로서 공화당이 범한 매우 당파적인 태도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이다. 공화당은 의회에서의 어떠한 효과적 조사도 철저히 가로막았다. 설령 9·11 조사 위원회가 조사 활동을 벌였지만 위원장인 젤리코우 교수는 보수주의자이자 친 라이스파로서 라이스 국무장관의 9·11 징후 무시라는 엄청난 실책에 면죄부를 부여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조사 정국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로 비춰질 경우 94년 유권자 혁명을 일으켰던 깅그리치 하원의장이 무너지듯이 순식간에 무너진다는 두려움이 현재 민주당 내에 존재한다. 더구나 이번 선거에서의 민의는 초당적 실행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마치 과거 한국에서 탄핵정국의 민의와도 유사하다. 이 민의를 자신의 개혁 아젠다에 대한 지지로 착각한 집권당의 오류는 미국의 민주당이 그대로 범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당시 정치개혁주의 논객들과 달리,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부 장관같은 진보 논객은 <아메리칸 프로스펙스> 9일자에서 민주당에게 '과거 오류 청산' 보다 미래의 개혁 실행에 집중하자고 제언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흐름 속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어떠한 선택을 하는가는 대북 문제와도 긴밀히 관련되어 있다. 왜냐하면 조사 과정이 얼마나 전방위적이고 강도 높은가에 따라 그간 강경한 대북정책을 주도해온 부통령 체니가 어느 정도 발이 묶이는가, 어느 정도 정치적 생채기를 받는 가가 좌우될 것이 때문이다. 사실 체니는 과거 오발 사건 등 궁지에 몰렸을 때는 대북 문제의 말 고삐를 느슨하게 쥐었고 이는 곧 크리스토퍼 힐 등 온건파의 활동여지를 강화시켜 준 바 있다.
하지만 미국 정가에서 '뱀처럼 비열하다'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체니가 쉽게 약화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지금 잠시 호흡을 고르며 라이스·힐 등이 주도하는 6자회담이 파열음을 내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매우 창조적인 매파인 조지프 차관의 창조적 봉쇄정책인 '맞춤형 봉쇄' 노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9·11 이후 테러 비확산이라는 높은 명분 하에 초당적이고 지구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있는 그의 맞춤형 봉쇄노선이 설치할 덫이 사방에서 북한의 신경 발작적 대응을 유도할 것이다.
넷째로 향후 임명될지 모르는 대북조정관이 부시와 민주당 의회의 힘겨루기 속에서 어떻게 결말이 나는가도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하원 아시아태평양 소위원장을 맡았다가 이번에 아깝게 낙선한 짐 리치 공화당 의원을 거론하고 있다. 그는 공화당 전반의 기류와 달리 대화를 강조하는 실용주의자이므로 그가 임명 된다면 긍정적 신호일 것이다.
이는 12월 중순까지 백악관과 민주당 지도부인 조 바이든 상원의원 등과의 지속적 조율을 기다려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러한 4가지 변수들이 상호작용하며 장기적 교착상태나 부분적 돌파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획기적 돌파구는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이 닉슨식 획기적 전환을 취하거나 김정일 위원장이 가다피 리비아 원수의 핵 선 포기라는 '광폭정치'를 취할 가능성이 최소한 지금까지의 지형에서는 희박하다. 과연 하원 국제관계위원장이 될 랜토스 하원의원이 그의 주장처럼 가다피를 설득했듯이 김정일을 설득할 수 있을 지도 회의적이다.
어쨌든 지금 우리는 새로이 도래한 미국의 중도적 정치지형을 고려하면서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한반도 전략과 담론을 짜야할 시점이다.
몇 가지 고민이 필요한 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