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선제공격론은 미국에 이용당하는 것

신라 욕하면서 신라의 전철을 되밟나?

등록 2006.11.13 13:58수정 2006.11.1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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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군사전략을 종래의 선수후공(先守後功)에서 선제 공세전략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군 내부에서 제기되었다.

<한겨레신문> 등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9일 미국 랜드연구소와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제9회 공군력 국제학술대회에서, 공군사관학교 권재상·박봉규 교수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및 보유로 인해, 여태껏 준수해 온 선수후공 전략은 의미가 없어졌다"면서 "이는 공세전략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선수후공 전략이란, 북한이 재래식 공격을 개시할 경우 이에 대해 즉각 반격을 가한다는 종래의 군사전략이다. 권 교수 등의 주장은 이러한 종래의 군사전략을 적극적인 선제 공격전략으로 수정하자는 것이다. 특히 박 교수는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결정한 때로부터 이를 실행하는 때까지의 시간적 간격을 활용하여 한국군이 강력한 공군력을 앞세워 선제 폭격을 가하자고 주장하였다.

북한이 이미 핵실험을 했고 또 한국이 수년 내에 전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하게 되는 등 한반도의 군사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데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응방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권 교수 등의 문제 제기는 그런 점에서 일정한 의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 교수 등의 주장은 아직도 군부 내 일부 수구세력이 소위 통일신라에 대한 환상을 벗어 버리지 못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미공조로 북한을 붕괴시킨다는 그들의 발상은 나당연합으로 고구려를 멸망시킨다는 신라 정권의 발상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수구세력은 "고구려와 북한을 등치시킬 수는 없다"며 이의를 제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북한이 고구려만한 나라는 못 될지언정, 한국은 얼마든지 신라가 될 수 있는 나라다. 외세인 당나라와 손잡고 동족인 고구려를 멸망시킨 신라를 말로는 욕하면서도, 정작 행동으로는 신라의 전철을 똑같이 되밟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의 자화상이다.

그럼, '나당연합 대 고구려의 대결'과 '한미공조 대 북한의 대결'은 어떤 면에서 상호 유사한 것일까? 그에 관해 4가지 측면을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신라 집권세력과 한국 수구세력은 불가피하지 않은 상황에서 동족과의 전쟁을 고려하고 있다. 동족과의 전쟁은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동족과도 전쟁을 벌일 수 있겠지만, 그것은 불가피한 최후의 선택으로 한정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전쟁이 명분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7세기에 신라는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고구려 침공에 가담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동아시아 정세 하에서, 고구려가 남쪽의 백제·신라를 공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서북쪽의 수나라·당나라를 상대하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백제·신라로서는 고구려의 침략을 절박하게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 절박한 사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라는 당나라의 고구려 침공에 가담함으로써 결국은 당나라의 패권을 강화시켜 주고 만 것이다.


오늘날의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전쟁 이후로 북한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침략을 경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이 주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2000년 이후로 북한은 남한과의 민족공조를 희망하고 있다.

물론 북한의 민족공조 주장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민족공조 주장 그 자체를 폄하할 수는 없다. 북한의 민족공조 논리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은 민족공조가 북한에게 정치적 이익이 된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통일이라는 관점에서는 지극히 당연하고도 바람직한 것이다. 민족화합이나 통일이 남과 북에 아무런 정치적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하고 비관적인 일이 될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기본적으로 남한과의 공조를 원하고 있다면, 이는 북한이 남한에게 별다른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대북 전쟁은 지금 상황에서 남한이 선택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는 전쟁 말고도 남한이 선택할 수 있는 대북 카드가 또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쟁을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남북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 대북 선제공격을 운운하는 것은 신라의 대(對)고구려 전쟁과 똑같은 우를 범하는 것이다.

둘째, 수·당은 자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도모했고 미국 역시 그러하다. 고구려는 수·당의 야욕에 대항했고, 북한 역시 그러하다.

수·당 통일제국이 성립하기 이전에 중국은 근 400년 동안 분열을 겪었다. 삼국시대-5호 16국 시대-남북조 시대가 바로 그 400년 동안에 전개되었다. 내부 분열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중국 왕조들은 주변 이민족에 대해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시기의 중국 왕조들은 이민족들에 대해 훨씬 더 고도의 자율성을 인정하였다. 고구려가 이 시기에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던 원인의 한 가지도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수나라가 남북조의 분열을 극복하면서부터 중국의 마음이 달라지게 되었다. 주변 이민족들을 중국 내부의 행정 단위인 군·현이나 도호부로 묶으려 한 것이다. 고구려가 격렬하게 대항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중국 중심의 보다 강화된 국제질서에 편입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북한·중국 등에까지 영향력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미·소 냉전 하에서는 꿈도 꿀 수 없던 일이었다. 1993년 제1차 북·미 핵대결이 소련 붕괴 직후에 개시된 것은, 소련 붕괴 직후의 미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급격히 확대하려 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팍스 아메리카나의 확대에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수·당의 패권 강화에 대항한 고구려를 불량국가나 악의 축이라고 비난할 수 없듯이, 팍스 아메리카나의 확대에 대항하고 있는 북한을 그렇게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수구세력은 미국을 지지하고 북한을 비난하고 있으니, 한국 수구세력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셋째, 한국의 수구세력은 북한의 인권상황을 비난하고 있지만, 고구려 역시 이러한 비난에 직면했다. 한국의 수구세력은 대북 침공의 명분 중 하나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있지만, 이것이 과거나 지금이나 강대국이 약소국을 압박하는 명분 중 하나였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수나라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수서> '양제기'에 수록된 선전포고문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또한, (고구려의) 법령이 가혹하고 징세가 무거우며 권신·호족들이 권력을 잡고 붕당이 패거리를 이루고 있다. 이런 것들이 (고구려의) 풍속이다. 그리고 뇌물이 시장 거리에 널리듯 하고, 부정부패도 시정되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매년 재난과 흉년이 이어져 집집마다 굶주리고 있다."

선전포고문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미국처럼 과거의 중국도 한민족의 인권문제를 침공의 명분으로 삼았다. 오늘날의 북한 역시 고구려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도와 북한을 치자고 주장하는 것은, 수나라·당나라를 도와 고구려를 없애 버리자고 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주장이다. 북한의 인권 상황이 열악하기 때문에 북한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한국 수구세력의 주장은 바로 그 때문에 정당성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넷째, 당나라가 신라와의 약속을 깨고 고구려 고토의 대부분을 차지했듯이, 미국 역시 북한을 붕괴시키게 되면 결국에는 북한 전역을 접수하려 할 것이다. 한국 수구세력은 한미공조를 북한을 멸망시키면 한국이 통일을 이룩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착각에 불과한 것이다. 강대국이 약소국의 영토 확장을 위해 군사력을 헌납한 사례를 아직까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국민들의 세금으로 한반도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발상과 다름없는 것이다.

미국이 한미공조로 북한을 붕괴시키게 되면, 그 땅은 미국의 땅이 될 가능성이 훨씬 큰 것이다. 미국이 그 땅을 한국에게 돌려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당나라가 고구려 땅을 빼앗아 신라에게 주리라고 기대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의 수구세력은 동일한 착각에 빠져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나당연합 대 고구려의 대결과 한미공조 대 북한의 대결 사이에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다. 그리고 한국의 수구세력 역시 신라 집권세력과 동일한 착각에 빠져 있다. TV 대하드라마를 볼 때에는 신라의 단견(短見)을 욕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그 신라의 전철을 누구보다 더 열심히 뒤쫓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선제공격을 하지 않더라도 한국 공군이 먼저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는 주장. 그 주장으로 이익을 볼 나라는 한국도 아니고 북한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미국이 이익을 볼 뿐이다. 한국이 미국 대신 북한을 선제공격하면, 이는 미국의 도덕적 부담과 군사적 수고를 덜어주는 일일 뿐이다.

그리고 한국 수구세력은 이제는 통일신라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신라의 방식으로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그 발상을 버려야 한다. 통일신라에 대한 환상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한민족의 영역을 그나마 압록강 이남에서 임진강 이남으로 축소시키는 불행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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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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