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운동 활력소 '젊은 피'...2030세대 新바람

등록 2006.11.14 13:14수정 2006.11.14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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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혜원 기자] 여성운동이 변하고 있다.

가정과 사회, 직장에서의 남녀차별 철폐를 주장하며 법과 제도 변화를 이끌어 온 여성운동이 이제는 정치ㆍ평화ㆍ환경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호주제 폐지 운동과 함께 전개됐던 부모 성(姓) 함께 쓰기, 평등 명절문화 만들기,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 등 행사를 중심으로 한 문화운동과 사이버운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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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새로운 활동의 중심에는 20·30들이 있다. '직업'으로서 운동을 해온 기성세대와 달리 이들은 여성운동을 시작하는 계기부터 다르다. 특별한 '운동'을 한다기보다 일상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하고자 한다. 그리고 삶 속에서 생겨나는 여성주의에 대한 모순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20·30들은 자신의 일상을 재구성하면서 활동한다.

그러다 보니 여성 관련 행사들은 즐거우면서도 의미 있는 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밤거리 성폭력 추방을 주제로 한 '밤거리 되찾기 행사'는 시위 형태를 하고 있지만 흥겨운 축제나 다름없다. 발랄한 모습으로 밤거리에서의 여성 권리를 외치는 이 행사에는 매년 신청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10대 청소녀들을 대상으로 시작했던 '여성주의 자기방어 훈련'은 주말도장 형태로 자리 잡아 지금은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진행 중인 '외모지상주의 인식 개선 교육' 사업에도 20·30들이 참여하면서 교육 대상인 10대 청소녀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프로그램 논의가 수월했다고 한다.

자기개발을 중시하는 20·30들의 활동은 국제연대를 강화하는 성과도 낳고 있다. 여성 인권의 문제는 국경을 넘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 간 NGO 연대가 요구되고 있다. 20대 활동가가 주축이 된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국제연대팀에서는 국제결혼 광고 반대, 아시아 국가와 연계한 폭력 추방 국제 캠페인 등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빠른 정보력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여성 이슈를 접하고 자기개발에 힘쓰는 20·30의 모습은 기성세대 활동가들에게는 활력을 불어넣어준다. 올해로 활동 10년차인 신이찬희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영페미니스트들은 단체 활동만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언니네 등과 같은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의 관심 분야를 확장시켜간다"며 "바쁜 와중에도 자기개발과 건강관리, 취미 생활을 소홀히 하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선배들도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부족하다. 갓 활동을 시작한 20대 활동가들은 각 단체별로 일정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 전문성을 갖춘 중간층의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런 만큼 여성단체들은 '활동가 역량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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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우타: 20·30이 여성운동에 참여하면서 어떤 부분이 변화하고 있는가.


신연숙: 여성운동을 시작하는 계기부터 다르다. 과거에는 주로 학생운동을 거쳐 졸업 후 사회운동을 하다가 여성들을 둘러싼 환경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게 돼 여성운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비해 지금 20·30들은 순수하게 여성 문제에 관심이 있어 활동을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성운동도 전문성을 띠고 있다는 걸 느낀다. 과거에는 활동 틀에 자신을 맞췄다면, 20·30들은 자신의 전문성에 맞게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본다.

조지혜: 동감한다. ‘언니네’의 경우도 최근에는 20대가 많아지고 있다. 그들은 운동을 한다기보다 일상에서 여성주의를 실천하고, 살면서 자기 안에서 발생하는 여성주의에 대한 모순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20대들은 자신의 일상을 재구성하면서 활동한다. ‘활동을 어떻게 나답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재밌게 할 수 있을까’란 즐거운 상상으로 일상에서 여성운동을 하는 것이다.

김민혜정: 지금까지 여성운동은 단체 중심으로 이뤄져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직업으로서의 운동에 대한 틀이 깨지고 있다. 반드시 상근하지 않아도 자원 활동으로 시작하거나 비상근으로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등 여성운동에 참여하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운동을 하는 것도 어떤 사명감 때문이라기보다는 지금 현재 이슈가 내 삶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더 나은 활동을 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스스로의 역량 강화를 위한 자기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우타: 활동하면서 느끼는 세대 갈등이 있는가.

신: 사업을 진행하거나 일을 할 때는 크게 느끼지 않는다. 다만 개별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네트워크 형태를 어떻게 가져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논의를 하다 보면 의견 차가 발생하긴 한다.

조: 조직 내부보다는 단체 간에 갈등이 있다고 본다. 언니네는 활동가들이 대부분 20·30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내부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별로 없다. 그런데 활동가들이 다른 단체와 만남을 가졌을 때 ‘영페미니스트는 다를 것’이란 선입견을 가지고 우리를 보는 경우가 있다. 실제 다를 수도 있지만 소통할 때는 이런 부분이 자유롭게 열려 있어야 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체별로 긴밀한 소통이 필요하다.

김민: 기본적으로 다른 점은 있다. 상담소의 경우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을 때 민주적인 방법을 통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편이다. 다만 앞서 말한 대로 다른 단체와의 관계에서 세대 갈등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상담소는 나이, 직책에 상관없이 모두 별칭을 사용하면서 활동한다. 그러나 외부 단체와 사업을 함께 할 때 그곳에서는 본인의 나이, 이름, 직책을 사용할 것을 요구할 때가 있다. 또한 우리들은 사업을 진행할 때도 기존 방식과 전혀 다른 형태를 시도해보려 하지만, 기성세대 활동가들은 종전 방식을 고집한다.

우타: 여성운동단체 활동년수 그래프 곡선을 보면 ‘M자형’으로,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중간층이 부족한 양상을 보인다.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는 어떠한가.

신: 역량 있고 경험이 풍부한 활동가가 줄어들면 자연스럽게 전문성은 떨어진다. 젊은 세대들이 역할모델로 삼고 활동할 수 있는 ‘활동상’도 없어지는 것이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들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좋긴 한데, 이것을 어떻게 운동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지, 경험을 토대로 연결해줄 수 있는 역할자가 없는 것이 문제다.

조: 기성세대들은 단체가 그동안 활동해온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실천에 옮겼다면 20·30들은 다양한 고민을 한다. 내가 단체가 제시한 비전을 믿고 따라갈 것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 것인가 등 계속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이때 경험을 토대로 설득할 수 있는 중간층이 없으면 모두 지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김민: 경험과 역량을 가진 중간층을 키우기 위해서는 나의 성장이 곧 단체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20·30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잘 반영될 수 있는 소통구조를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우타: 지속 가능한 여성운동을 위해서는 어떤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신: 20·30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줘야 한다. 이제 운동의 당위성, 사명감으로만 운동 인력을 끌어 모으는 시대는 지났다. 각 단체마다 여성재단, 환경재단, 사회복지사협회 등 민간재단에서 지원하는 해외연수 프로그램 등에 20·30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역량 프로그램을 조직에서 체계화한다면 활동가들 간의 신뢰도 높아질 것이다.

조: 활동가로서의 인생 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사례를 많이 발굴했으면 한다.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커리어 설계 방법, 극복 방안 등을 참고할 만한 전례가 있다면 힘이 나지 않을까.

김민: 인력을 보충할 때도 다양한 경험을 지닌 사람들을 뽑는다면 조직이 훨씬 활발해진다고 생각한다. 사업 못지않게 인력개발이나 활동가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선후배들 간 대화의 장을 넓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서로 대화를 하고 힘을 얻다 보면 여성운동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다.

일시: 11월 2일 낮 12시 30분
장소: 국회의원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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