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져 있는 도토리들. 하나하나가 다람쥐의 겨울양식이다.한대일
하지만 필자는 또 하나의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관람객 중 상당수가 도토리를 챙기고 있었다. 도토리라는 열매에 별로 익숙하지 않은 어린이들은 호기심으로 도토리를 한주먹 들고 있었다. 어른들도 이런 어린이들을 혼내기는커녕 오히려 칭찬하면서 자신들도 도토리 줍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누구나 거쳐야 하는 매표소에는 "도토리 충전은 미니홈피에서"라는 독창적인 글귀가 있었다. 그리고 '도토리를 줍지 마세요'라는 문구도 후원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이를 보지 못했을 리 없건만 그 사람들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 아니 쇠눈에 문구 읽기' 식이었나 보다.
후원 곳곳은 참나무로 울창하다. 따라서 부용정 영역이든, 애련정 영역이든, 옥류천 영역이든 도토리는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하지만 그만큼 도토리를 줍는 사람들의 영역도 넓다. 어떤 사람은 비닐봉지나 배낭을 가져와서 '전문적으로' 도토리를 줍는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다람쥐에 대한 생각은 안 하느냐고 탓하기에 앞서, 필자는 이들이 도대체 그 비싼 돈을 들여 창덕궁에 온 연유가 궁금해졌다.
이 대목에서 역사를 돌아보자. <국부론>의 저자이자 고전경제학의 창시자인 아담 스미스는 위대한 경제학자임과 동시에 어쩌면 위대한 자연학자일지도 모른다.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그가 말한 경제학의 원칙, 즉 '보이지 않는 손'은 자연계에도 존재하며 자연계를 움직이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겉으로는 무분별해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물론 경제에서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과는 다르다)에 의해 체계적인 법칙을 유지한 채 존재한다.
이렇게 스스로 알아서 움직이는 자연을 인간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거기에 대해서도 스미스는 해답을 제시한다. '레세페르(laissez-faire)!' 자유방임, 즉 간섭하지 말고 그냥 놔두라는 뜻이다. 스미스 말대로 인간이 자연에 간섭하거나 규제하지 말고 그냥 놔둬야만 자연은 생태계를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다람쥐의 양식을 빼앗아가는 '도토리 줍기'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이며 이는 다람쥐를 비롯한 창덕궁 내 생태계에 분명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인간의 자연 간섭 행위는 황해 앞바다에서도 나타난다. 이때는 양식을 빼앗아가는 창덕궁 사례와는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영종도나 석모도 등 황해 섬으로 가는 유람선에는 꼭 갈매기 떼가 달라붙는다. 인간들이 주는 먹이를 얻어먹기 위해서이다. 갈매기들은 생선 대신 인간들이 만든 과자로 생계를 유지하고, 인간은 갈매기에게 먹이를 던져줌으로써 또 하나의 낭만을 찾는다. 유람선 내부에는 아예 갈매기용 먹이를 판매하기도 한다.
이는 겉으로 보면 갈매기에게 긍정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간섭 때문에 갈매기들은 힘들여 물고기를 잡는 대신 인간의 과자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점차 영양 불균형 상태에 빠지는 건 아닐까? 일부에서는 이런 구걸 행위를 예로 들며 갈매기를 '바다의 비둘기'로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 영종도나 석모도 등 황해 섬들을 육지와 잇는 다리 건설 계획이 발표되었다. 이는 곧 유람선이 오갈 필요성이 없어짐을 의미하며 갈매기에게는 중요한 먹이 조달처가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미 인간이 주는 과자에 길들여진 갈매기는 다른 먹이를 찾는 대신 계속 인간의 과자에 안주할 우려도 있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 행위가 자칫 갈매기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