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달고나> 포스터PMC프로덕션
추운 겨울날 생각나는 옛 추억의 몇 가지들이 있다. 두 손을 따뜻하게 해주는 호빵, 학교 앞에서 달달한 맛을 느끼게 하던 달고나, 귀마개와 벙어리 장갑 등. 겨울날에는 유독 떠오르는 것들은 흘러간 추억의 것들이다.
예전에 달고나를 하면서 손가락으로 침을 발라 문질러 하나 더 뽑기에 성공하리라 다짐하면서 천천히 달고나를 먹던 그 맛. 그것들은 이상하게도 머리보다 눈과 귀가 먼저 알고 그보다도 마음이 먼저 안다.
지금도 문득 추억의 단상 한 조각이 떠오를 때면 빙그레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잠깐이나마 옛 추억에 묻혀 순순했던 그 시절에 행복해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래서 추억이라는 것은 평생 힘을 주는 또 하나의 '나'이자 '동반자'가 아닐까.
그런 뮤지컬 한편이 등장해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있다. 바로 송승환이 제작하는 뮤지컬 <달고나>. 특히 이 작품은 국내 뮤지컬 계에서 드물게 창작 뮤지컬이면서 동시에 소극장에서 초연을 시작해 대극장으로 옮긴 모범적인 성공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초연에 이어 올해 대학로 소극장에서도 5개월간 공연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엔 소극장 뮤지컬을 충무아트홀 대극장으로 옮겨왔다. PMC프로덕션 대표이자 연극배우인 송승환씨가 직접 연출을 맡은 것도 이전 공연과 다른 점이다. 소극장용 국내 창작 뮤지컬은 꽤 있었지만 대극장에서 공연될 만큼 규모가 큰 뮤지컬은 `명성황후` 이후 드물었던 것이 사실. 이번 무대의 전환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1970∼80년 대 음악과 함께 추억을 이야기하는 이 뮤지컬은 어린 시절의 향수와 추억에 얽힌 사랑이야기를 끄집어 낸 작품이다. 옛 흘러간 음악에 젖어, 이야기에 젖어 편하게 웃고 울며 감동을 한아름 가져가면 되는 작품인 만큼 언제든지 극장을 찾으면 훈훈함을 느낄 수 있다.
담배 가게 아가씨와 이등병 편지의 추억
이 작품은 보고있노라면 옛 추억을 물씬 느끼게 해준다. 부족한 것은 많지만 사랑이 있고, 정이 있어 따뜻했던 그 시절을 자연스럽게 노래에 맞춰 연기자들이 풀어 가는 뮤지컬이라 할 수 있다.
제작진들이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실험적이고 작품성을 내세우는 창작 뮤지컬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용이 TV드라마 시대극을 보는 것은 같은 인상을 풍기기는 하지만 그들은 '추억을 뮤지컬로!'라는 모토에 꼭 맞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추억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기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그 속에 슬픔도, 비애도, 절망도 있다. 하지만 추억이라는 것은 왠지 모르는 아련함을 느끼는 공통의 느낌이 있듯, 이 작품의 내용도 즐거운 추억이야기 만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더 공감이 간다.
흘러간 추억의 노래를 틀어 놓고, 배우들이 노래하는 모습만이 아니라 잘 짜여진 극본에 따라 배우들은 숨쉬며 노래하고 열정을 불사른다. 그것은 노래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우리를 감동시킨다.
내용은 한 방송국 PD의 추억 여행이다. 인터넷 방송국 ‘달고나’의 PD 세우. 그는 그저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40대의 남성이다. 꿈도 희망도 잃어버리고 산 지 오래며, 열정도 사랑도 먼 나라 이야기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구식 이벌 타자기에 얽힌 순수한 사랑의 추억을 떠올리는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지희가 보낸 편지. 그때부터 그의 추억 여행은 시작된다. 그리고 그 추억 여행으로부터 다시금 삶의 열정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들은 이별했기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추억에 관한 뮤지컬은 흘러간 가요를 들으며 아련함을 느끼듯, 슬픈 추억도 아련함과 함께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아주 소박한 의미를 담았다.
하지만 흘러간 가요를 들을 수 있는 것은 그 노래가 그만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던 곡이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소박하지만 단순한 내용을 빛나는 연출력과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극복해 냈다.
새롭게 변신한 무대와 연출
이 작품은 소극장에서 공연됐던 만큼 작품의 구조는 소극장에 어울리도록 연출되었다. 무대는 그만큼 소박했다. 하지만 그 강렬함은 어느 대형극장에 손색이 없었다. 예를 들어 스무 살이 된 지희의 풋풋한 대학생활로 시간을 옮긴 무대는 특별한 무대장치의 변동 없이 몇 조각의 천과 타자기 하나로 대신했다.
무대장치 또한 완벽하게 재현했다. 70∼80년대를 고스란히 담아낸 무대장치에도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골목길에서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등불. 오목한 장독대와 햇빛에 바삭하게 말라 가는 이불 홑청. 익숙한 시멘트 담벼락까지.
그러나 이것이 대형극장으로 옮기면서 작품의 규모가 커진 만큼 무대와 그의 장치도 화려해졌다. 화려해졌지만 여전히 작품의 소박함을 잘 전달하고 있다.
배우들이 동선이 긴 안무를 선보이거나, 솔로 곡도 여러 명의 코러스 뒷받침해 주어 좀 더 강렬한 무대를 연출했다. 이것은 기존 뮤지컬이 1인 소화해냈던 것을 여러 명의 배우들이 함께 소화해내 더욱더 극적인 장면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무대 세트도 1세트만 사용하고 천을 이용해 공간저인 변화를 주었던 것과 달리 8세트를 사용하고 다양한 공간적인 변화를 이뤄내며 대형극장답게 스케일의 규모도 눈에 띌 정도로 바뀌었다.
다행히도 이러한 무대장치들은 하나 같이 규모만 커졌을 뿐 소극장 공연에서 느낄 수 있었던 소박한 우리네 추억을 느끼게 하는 것은 여전하다. 무대가 3배나 커졌지만 추억의 골목길과 가로등, 옥상이 있는 낡은 집 등 공간은 여전히 정겹고 따뜻하다.
오히려 작품은 소극장에서도 충분히 훌륭했지만 규모가 커짐에 따라 입체적인 구조로 변화해 한층 더 높아진 관객들을 만족시키는데 충분했다.
새로운 연기자들의 피나는 노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