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만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늙은 농부의 주름살이 더 깊어만 보인다.(이필례 할머니)최종수
전북대회는 노동자와 농민, 학생과 참가단체 대표자들의 지지 연설과 문화공연으로 채워졌다. 2시간의 집회가 마무리되고 보도행진을 할 즈음에는 2만여 명에 육박했다. 전주종합경기장에서 전북도청까지 도보행진이 시작되었다. 집중호우로 불어난 거대한 급류처럼 참가자들은 8차선 대로를 흐르고 있었다. 그 인파의 물결 속에서 한 늙은 농부를 만났다.
"여기에 살라고 나왔지. 더 이상 못 살겠어. 한 해 걸러 배추나 수박밭을 갈아엎어야 하고 빚은 늘어만 가는데 쌀과 소까지 죄다 개방 허믄 어떻게 살라고 그려."(이필례 70세 고창)
소속 농민회와 노동자들이 한 대오씩 출발한 저항의 물결, 전주빙상경기장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4Km 시가행진을 1.5Km 시위대열로 오후 5시 30분경 도청에 집결했다. 그 시각 도청에는 수 겹으로 방어막을 쌓은 경찰병력 2천여 명이 저지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도지사와의 면담을 강행하려는 몸싸움은 그때부터였다. 그러나 백골단까지 동원한 경찰병력을 뚫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연행자만 늘어나고 있었다.
백골단 옆에 한 농부가 서 있었다. 백발이 할머니의 손에는 작은 촛불과 '한미 FTA 반대' 구호피켓이 들려 있었다. 백발의 할머니와 헬멧을 쓴 백골단의 모습은 마치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듯했다. 마침 그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전 공무원으로 은퇴를 하고 김제에서 안 짓는 것이 없을 만큼 여러 가지 밭농사를 짓고 있어요. 농부가 되어서야 농민의 심정을 알겠어요. 두 딸이 미국에 살아서 올 여름에 미국에 다녀왔는데 딸들이 한국처럼 좋은 국민의료보험이 없다는 거예요. 미국에서는 의료보험 없는 사람들이 맹장수술을 하려면 천만 원이래요. 그런데 재미난 것은 미국 사람들 30%가 보험이 없대요. 한미 FTA가 체결이 되면 한국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지금 이것을 막지 못하면 우리 동네 사람들 대부분 의료보험 없이 살아가야 할 판인데, 어떻게 집에만 있을 수 있어요."(황점희 65세 김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