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리본의 기사>로 되돌아간 최신단행본학산문화사
<사파이어 왕자>는 1953년 1월부터 1956년 1월까지 고단샤 발행 잡지인 <겟간 쇼우죠 클럽>에 연재됐고, 1967년에 애니메이션이 제작된 만화다. 우리나라에서는 TBC에서 <꼬마기사 랑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MBC에서는 1971년, 1979년, 1985년에 <사파이어 왕자>, <꼬마기사> 등의 제목으로 여러 차례 방영됐다.
<사파이어 왕자> 이전의 일본 소녀만화는, 우리가 아는 소녀만화와 차이가 있었다. 이전의 소녀만화는 신데렐라처럼 계모 밑에서 고생하는 불쌍하고 착한 소녀를 그린다든지, 돌아가셨거나 잃어버린 엄마를 그리워하는 이야기(1980년대 한국만화의 주요 구성이기도 하다)가 주요 구성으로 통했다. 특히 태평양전쟁 도중에는 현모양처형의 부녀자를 양성하려던 국가 이데올로기의 개입으로 장르 자체가 퇴보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사파이어 왕자>는 무엇보다 소녀만화와 순정만화의 시초라는 점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 일본만화의 대표적인 상징이 된 등장인물들의 커다란 눈과 반짝이는 눈망울은 데즈카 오사무가 이 작품을 통해 완성한 것이다. 데즈카 오사무가 기초를 닦아놓은 이 상징들은, 훗날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캔디 캔디>의 미즈노 히데코의 손을 거쳐 진화한다. 소녀만화의 또다른 상징인 화려한 너울주름이 달린 드레스들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이 상징들 역시 <베르사이유의 장미>나 <요술공주 밍키> 등이 등장하면서 다시 발전했다.
<우주소년 아톰>에서 '피노키오'의 흔적이 진하게 감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파이어 왕자>에도 서양 동화의 흔적이 다양하게 반영됐다. 공주와 왕자의 환상적인 사랑 이야기와, 동화의 이면에 숨은 어른들의 권력 다툼에 대한 풍자 등은 서양의 동화에서 이따금씩 다루었던 소재들이다. 데즈카 오사무는 서양의 동화가 다루었던 기존의 주제에, 당시 일본에 필요했던 현실적인 이야기들과 특유의 복선이 깔린 구성을 혼합함으로써 <사파이어 왕자>를 독창적인 작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부모'와 '여성'을 이야기하는 <사파이어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