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나가 럭셔리걸이라고?

<환상의 커플>, 황당한 픽션의 전략

등록 2006.12.04 18:32수정 2006.12.0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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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극본 홍정은·홍미란, 연출 김상호)은 플롯이며 줄거리,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사랑의 성취까지도 너무나 뻔했다. 기존 멜로드라마의 온갖 공식을 버무린 비빔밥을 다만 조안나-장철수라는 '환상의 커플'이 색다르게 담아냈을 뿐이다.

@BRI@심지어 결별로 끝날 듯하던 두 사람이 차에서 뛰쳐내린 안나의 고양이로 인해 도로에서 마주치는 마지막 반전조차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너무도 유명한 엔딩신과 닮아 있다.

소위 어록을 양산하며 독특한 화법을 구사한 안나 조(한예슬 분)의 대사 "이봐, 개!" 또한 오드리 헵번이 먼저 써먹었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그녀의 고양이는 이름도 없이 끝까지 '캣'으로 불렸다.

그런데 드라마 <환상의 커플>은 되려 그 상투성을 전면에 드러내 무기로 삼았다. 익숙한 골조에 뜻밖의 인테리어를 쓴 전략이 주효한 것이다.

사실 <환상의 커플>에는 일말의 리얼리티도 없다. 못 살린 것이 아니라 아예 안 살렸다. 황당무계할 정도로 부티나게 살아온 럭셔리걸이, 남편의 암살 작전에 걸려 기억을 잃고 새 남자와 '환상의 커플'이 된다. 사실성 제로에다 사천만이 공유할 뻔한 스토리다. 그런데 현실감을 버리고 황당한 사건과 황당한 인물들의 개연성에만 매달린 결과 의외로 재미있어졌다.

자장면과 막걸리를 처음 맛보고 미친 듯이 탐닉하는 럭셔리걸 조안나를 시청자는 그저 '명랑만화'로 즐겼다. 코믹 활극을 정색하고 진지하게 만들어가는 동안 조안나는 살아있는 캐릭터가 됐다. 현실성을 버리고 캐릭터에 집중하자 등장인물들은 오히려 담백하고 그럴 듯해졌다.


<루루공주> 등등 실패한 커플이 외면받은 바로 그 지점을 뒤집은 셈이다. 떡볶이를 생전 처음 먹어본 '공주마마'의 사랑을 리얼한 일상으로 보이게 하려니 '백마 탄 왕자'는 갑자기 부도난 집안의 가장으로 대리운전수가 되질 않나, 공주가 신데렐라보다 더 비루한 처지가 되질 않나, 판타지와 볼거리는 간데없고 갑자기 식상한 순애보만 남기 일쑤였다.

거실에 연못과 분수가 있는 초호화판 집에 사는 조안나나, 남해의 작은 섬에서 자장면에 목숨 거는 그녀나 현실성 없기는 매일반이다. 그러나 어쨌든 둘 다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가? 한쪽은 럭셔리함으로, 한쪽은 '걸리버 여행기'를 방불케하는 황당무계함으로.


시청자들은 <환상의 커플>이 제공한 가상현실을 유쾌하게 즐겼다. 예쁘지만 쇼윈도의 마네킹처럼 다소 비현실적인 한예슬의 프로필과 캐릭터도 적역을 만났다. 럭셔리걸은 없었다. 그저 적임자가 잘 들어맞는 배역을 소화한 것이다. 다만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시청자에게 '현실로 봐 달라'는 애걸 대신 픽션의 솜사탕을 선사했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보낸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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