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즈카 오사무, 그에게서 엿본 '도전과 응전'

[데즈카 오사무 ③] '도전과 응전'이 그에게 미친 영향

등록 2006.12.06 17:57수정 2006.12.06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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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 어디서든 경쟁을 하게 된다. 물론 때로는 그것이 과해질 때도 있다. 하늘에는 2개의 태양이 뜰 수 없다. 태양은 어디까지나 하나일 뿐이다. 그 ‘하나’가 되기 위해 경쟁을 하다 보면, 과해질 때도 있다. 원래 이기적인데다가 감정이 있는 동물인만큼, 라이벌이라는 관계는 대단히 불안정하다. 자칫 잘못하면 평생을 원수로 지내야 하는 뇌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라이벌이 없으면 발전을 이끌어낼 수 없다. 새로운 발전이나 창조에 경쟁만큼 좋은 것은 없다. 상대를 이기고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다 보면, 자신도 예상치 못한 발전이 다가올 때도 있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해왔다.


@BRI@라이벌을 이기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세력이 기존의 세력을 밀어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역사까지 덩달아 발전하는 것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그것을 ‘도전과 응전의 법칙’이라고 했던 것 같다. 정상에 서 있고 아무리 많은 발전을 일궈냈다 할지라도 ‘도전’에 대한 ‘응전’을 할 능력이 없을 때에는 소멸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아놀드 토인비는 문명 자체를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라고 규정지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역사나 문명만의 일일까? 일상 속에서도 늘상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만화 장르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른 엔터테인먼트 분야와 마찬가지로 만화 장르에서도 가장 자주 다뤄지는 것이 바로 ‘라이벌 구도’이며, 창조자들인 작가들 사이에서도 ‘라이벌’은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신’이라는 단 하나 뿐인 별명을 가졌지만, 데즈카 오사무에게도 그것은 필연이었다.

데즈카 오사무와 미야자키 하야오

물론 그들은 작품의 성향에도 차이가 있다. 데즈카 오사무가 갈등하는 인간들의 화해를 주선하며, 어린이와도 진지한 고민을 함께 나누려 했다면,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관되게 자연과 문명을 묘사하면서, 그것을 파괴하는 인간도 함께 비판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관이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13년이라는 나이 차이의 반영일 수도 있다.


그들은 일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계에서는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신’이었으며, 한 사람은 ‘대부’다. 그런데 그들은 일관적으로 서로를 의식해 비판을 가하거나, 너무 의식한 나머지 일절 언급을 하지 않는 팽팽한 관계를 유지했었다.

데즈카 오사무는 애니메이션 제작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우주소년 아톰>을 제작하면서 스폰서로부터 ‘염가 제작’이라는 납득할 수 없는 조건을 받아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일단 그 스스로가 애니메이션 제작을 너무나도 간절하게 꿈꿔왔으며, ‘월트 디즈니’처럼 캐릭터 상품권 등의 로열티로부터 찾아오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를 자극했다. 그는 사회주의 계열 기관지에 처음으로 만화를 연재하면서 “미 제국주의 디즈니의 영화에 대항하겠다”고 선언해 데즈카 오사무에 반발했고, “그가 <우주소년 아톰>을 초저가로 제작하면서 그 이후의 애니메이션계는 저가 제작이 판치기 시작했다. 그가 해온 일은 틀린 것”이라고 데즈카 오사무 사망 이후의 ‘추도문’에서까지 발표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그로 인해 너무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착취를 당했다는 이야기다.

지적이 그렇듯 매서운만큼 뭔가 반응이 있었을 것도 같지만, 데즈카 오사무는 미야자키 하야오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쓴 자서전에서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은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늘 많은 동료들과 어울렸으며,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했던 데즈카 오사무답지 않은 처사였는데, 일각에서는 “그만큼 민감하게 의식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진실은 그만이 아는 것일테지만, 상당히 설득력있는 의견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침묵의 응전’이었던 셈이다.

“데즈카 오사무로 인해 염가제작이 판쳐 많은 애니메이터들이 착취당했다”는 시각과, “데즈카 오사무가 없었으면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 자체가 다져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시각은 지금도 충돌하고 있다. 물론 어떤 시각이 더 옳은지 ‘확실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적도 ‘애니메이터의 권리와 의무’ 차원에서 그 당시로서는 대단히 현실적인 지적이라는 것이다. 데즈카 오사무의 ‘무시 프로덕션’은 저가제작으로 인해 결국 경영난으로 부도를 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도전’에 대한 데즈카 오사무의 ‘응전’은 사실상 ‘침묵’이었고, 기존의 방식은 ‘실패’나 다름없었다.

데즈카 오사무와 ‘극화’

‘도전과 응전’이 제대로 어우러진 라이벌 구도였다.

'극화'라는 '도전'에 맞선 데즈카 오사무의 '응전'은 <블랙잭>이었다.
'극화'라는 '도전'에 맞선 데즈카 오사무의 '응전'은 <블랙잭>이었다.학산문화사
데즈카 오사무의 부각 이후로, 일본만화계는 그를 모방한 둥글둥글한 스타일의 그림체가 유행했다고 한다. <고르고 13>의 사이토 다카오도 소년 시절에, ‘둥근그림체 묘사’가 안돼 데즈카 오사무를 직접 찾아갔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극화’는 한마디로 ‘안티 데즈카’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데즈카 오사무의 그림체와는 달리 직선적이고 날카로운 묘미를 앞세웠는데, 내용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가 전반적으로 어린이를 주대상으로 하는 가운데, 웃음을 주목적으로 삼았다면, 극화는 대단히 냉소적이면서도 과격하다.

‘극화’의 탄생을 선언하는 그들의 ‘안내문’에도 나온 이야기다. 그들은 극화를 일컬어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도기에 필요한 오락독서물”이라고 선언했다. 주된 독자층은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에는 없는 새로운 묘미를 찾길 원하던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안티 데즈카’를 표방해 새로운 표현방법을 찾았으면서도, ‘중층적인 구성’을 이용했다는 점에서는 그의 영향력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이토 다카오의 <고르고 13>이나 시라토 산페이의 <닌자 부게이초> 등의 만화가 대표적인 ‘극화’들이다. 특히 전쟁을 계급투쟁으로 설정한 <닌자 부게이초>는 학생운동권에 속해있던 대학생들이 애독한다는 이야기가 퍼지면서, 이 작품을 통해 유물론을 접한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이 새로운 흐름은 곧 엄청난 유행으로 번졌는데, 이는 곧 데즈카 오사무에게는 엄청난 위기였다. 심지어 그의 조수들과 아들까지 그의 앞에서 꺼리낌없이 ‘극화’를 감상했을 정도였다는데, 한때 그는 만화가를 포기할 생각에 의학자로 되돌아갈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천상 만화가였다. 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응전’의 결과로 내놓은 작품은 바로 <블랙잭>이었다. <고르고 13>의 캐릭터를 분석해, 거기에 ‘망또’와 ‘무면허’라는 설정을 추가했고, 본인의 트레이드마크인 ‘휴머니즘’까지 동시에 추구한 작품이었다. 아주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수 있었던 ‘응전’이었다. <블랙잭>은 현재 리메이크되고 있으며, <헬로우 블랙잭>이라는 우리 시대의 걸작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도전과 응전’

고인 물은 썩는다. 그리고 썩은 물은 곧 병을 유발한다. 건강을 위해서도 ‘도전’이 있어야 하며, ‘응전’은 곧 본인을 위해서도 훌륭한 처방전이 된다. 데즈카 오사무에게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극화’, 그리고 ‘극성 학부모’라는 ‘도전’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숱한 위기 속에서도 끊임없는 열정으로 이들에 대해 ‘응전’했다.

물론 그 역시 사람인 이상, 젊은 시절의 라이벌인 ‘후쿠이 에이이치’가 죽자, “더이상 그와는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애도에 앞서 안도의 한숨부터 쉬었다는 부끄럽지만 인간적으로 이해가 가는 고백을 한 적도 있다. 게다가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도전은 사실상 넘어서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나머지 2개의 도전에 대한 ‘응전’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신’이라 불리고도 남을 사람이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도전’을 받을 것이다. 정상에 서 있든, 일상에 충실한 평범한 사람이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우리가 사는 현재는 늘 ‘도전’이 도사리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가 그 도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한마디로 현실도 역사 못지 않게 도전과 응전이 뒤섞인 열정의 장이다. 현실의 궁극적인 승자는 결국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응전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일상에 타성에 젖은 우리가 데즈카 오사무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의사의 길을 벗어던지고 만화가의 길을 걸었다는 것 자체만 감탄하는 타성으로는 그에게 배울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아니, 그런 관념에 젖은 타성은 우리가 ‘도전’해야 할 대상이다. 정말 무엇을 배워야 할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끊임없는 열정으로 정상의 자리를 지킨 그의 일생이나, 그를 그렇게 성장시킨 원동력이 된 부모님 등, 현실을 사는 우리가 배워 ‘도전과 응전’에 이용해야 할 것들은 따로 있다. 무엇에 도전하고 무엇으로 응전해야 할까? 그건 우리 모두의, 어쩌면 미래에도 영원할 뜨거운 숙제일지도 모른다. 데즈카 오사무는 자신의 일생을 통해 그에 대한 모범해답을 내놓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한겨레신문>의 제 블로그에도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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