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 가는 길에서 만난 동백의 때이른 낙화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79] 다산초당의 동백

등록 2006.12.06 15:49수정 2006.12.0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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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 가는 길, 이파리를 모두 놓아버린 나무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다산초당 가는 길, 이파리를 모두 놓아버린 나무에게서 위로를 받는다.김민수
꽃마다 피어있는 곳이 다르고, 피어있는 곳에 따라 그 느낌도 다르게 다가온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느낌이 확연하게 와 닿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겨울 초입에 나는 서울 강남의 구룡마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그곳만 생각하면 허름한 집의 담벼락에 기대에 피어있던 장미의 붉은빛이 떠올랐다. 다시 가야지, 다시 가야지 몇 번을 생각하면서도 하루 이틀 지내다 보니 아직도 그곳을 다시 가질 못했다.

꽃, 어디에 피어도 꽃이지만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홀로 걷는 길도 좋고, 도반이 있으면 더 좋은 것이 여행길이다.
홀로 걷는 길도 좋고, 도반이 있으면 더 좋은 것이 여행길이다.김민수
나에게 있어서 들꽃은 여행의 도반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들판을 걷는 일도, 숲길이나 제주의 오름을 걷는 일들도 모두 심드렁했을 것이다. 그들이 있어 홀로 여행을 하면서도 홀로가 아니었다.

그들을 담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을 바라보면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삶에서 만나는 도반, 그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 사람의 삶도 달라진다.

누군가가 "그 사람이 내 도반이야"라고 소개할 때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 돌아본다.


다산초당 올라가는 길에 만난 때이른 동백의 낙화.
다산초당 올라가는 길에 만난 때이른 동백의 낙화.김민수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 가는 길, 돌계단길에 접어드니 주변식물들이 상당히 익숙하다. 제주도에서 볼 수 있었던 고사리류나 사철 푸른 마삭줄, 덩굴류의 식물들이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푸름을 뽐내고 있다.

그런데 붉은빛의 동백이 땅에 기대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을 의심했다. 주변의 동백나무를 바라보았지만 숲에 가려 꽃이 보이질 않는다. 그러나 그 어딘가에 꽃이 피었기에 동백의 낙화가 있었을 것이다. 때 이른 동백의 낙화, 가장 아름다울 때 자신을 놓아버리는 동백이 살포시 흙에 자신을 기대고 있다.


지난 해 담았던 동백의 낙화, 떨어진 뒤에도 아름답기만 하다.
지난 해 담았던 동백의 낙화, 떨어진 뒤에도 아름답기만 하다.김민수
다산 정약용, 그는 유배지의 삶은 그의 삶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다산 정약용이 아들들에게 쓴 부정(父情)을 가득 담은 편지를 떠올렸다. 나도 한 때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었지만 내 삶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어느 순간에는 그 흔한 문자메시지나 메일조차도 보내지 못하고 살아간다.

어쩌면 그는 이렇게 낙화한 동백처럼,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떨어져 그곳에서 유배의 삶을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낙화한 동백이 하루 이틀 사이에 사그라질지 않는 것처럼, 때론 나뭇가지에 핀 동백보다 더 아름다운 것처럼, 그렇게 살아갔던 것이리라.

단아한 다산초당, 자연과 괴리되지 않은 모습이다.
단아한 다산초당, 자연과 괴리되지 않은 모습이다.김민수
다산 정약용의 필체도 단아하다.
다산 정약용의 필체도 단아하다.김민수
울창한 대나무 숲과 동백나무가 어우러진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자연과 한껏 어우러진 단아한 다산초당이 자연과 하나 되어 우뚝 서 있다. 소박한 사찰건물이라도 숲 속에 자리하고 있으면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다산초당은 그렇지 않았다.

다산에 대한 이미지가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없게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구비해 놓은 붉은 소화기만 없었더라면 하는 욕심이 생길 정도로 자연과 하나가 된 초당의 모습이었다.

다산초당 한 켠에는 연못이 있었고, 그 위로 나무대롱을 통해 맑은 물이 맑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다산초당 한 켠에는 연못이 있었고, 그 위로 나무대롱을 통해 맑은 물이 맑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김민수
맑은 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나무대롱에서 맑은 물이 흘러나온다. 돌 계단길을 오르느라 등줄기로 흐른 땀을 식힐 겸 한 모금 물을 마신다.

동백의 낙화와 맑은 물의 낙수는 닮았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따로 없는 그들의 삶, 그 어느 곳에 있어도 그들의 본성대로 살아간다. 그런데 그것이 밉지가 않다.

구룡마을에서 만난 장미는 그대로 아련한 느낌이고, 5월에 피어난 장미는 그대로 싱그럽다. 겨울비를 맞고 비이슬 가득 맺고 피어있는 립스틱을 닮은 장미는 추하지 않은 유혹이다.

그 언젠가 담았던 단아한 흰동백도 다시 만나고 싶다.
그 언젠가 담았던 단아한 흰동백도 다시 만나고 싶다.김민수
다산초당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동백,  그가 있어 동백이 피어있는 줄 알았다.
다산초당에서 내려오는 길에 만난 동백, 그가 있어 동백이 피어있는 줄 알았다.김민수
다산초당에서 강진만을 바라보았다. 텅 빈 들판에 푸릇푸릇 보리싹이 올라온다. 저렇게 텅 빈자리라야 채워지는 것이구나, 숲도 이렇게 겨울 숲처럼 비어야 이른 봄 새록새록 새 잎으로 채워지는 것이구나 생각하니, 채우려고만 살다가 끝내는 내게 주어진 행복까지도 버리고 살아가는 미련한 내 삶을 돌아본다.

'저기 떠나 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 언제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 곳이 어드메뇨 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다산초당 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렸던 노래를 부르며 내려오는 길, 동백의 낙화가 아름답고, 아련하고, 애틋하다. 저 동백의 낙화를 다산도 보았을 터인데 그가 동백의 낙화를 보면서 느꼈던 것을 나도 느끼고는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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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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