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강이 쓸쓸할까 편안할까

섬진강 '살뿌리'를 찾아

등록 2006.12.10 21:01수정 2006.12.1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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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섬진강 물위에 철새들이 앉아 있습니다.

섬진강 물위에 철새들이 앉아 있습니다. ⓒ 서종규

그 말이 자꾸 머릿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섬진강가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여인의 말입니다. 겨울 강이 편안하다니요. 모두 메말라 버린 겨울 강이 한없이 쓸쓸하게 보였는데, 겨울 강이 편안하답니다. 겨울이 돌아오면 겨울 강은 겉옷을 모두 벗어 버리고, 몸을 비대하게 만든 무게도 털어버려 편안해진답니다.

@BRI@ 겨울 산에 있는 나무들은 자기의 잎까지 다 털어내 버리고 홀가분한 몸을 지닌대요. 세월의 더께까지 다 털어버린다는 것이죠. 그러니 얼마나 편안하겠어요.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랍니다. 새로운 에너지를 모아가는 것이랍니다.


강과 산은 서로 모습이 닮아간답니다. 모든 것을 몽땅 벗어 버린 겨울 산 을 그대로 겨울 강이 닮아 가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겨울 강은 편안하답니다. 모든 세월의 찌꺼기를 다 흘려보내고 그냥 푹 쉬고 있는 겨울 강이 얼마나 편안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강의 색깔이 계절마다 달라요. 봄에는 연둣빛이고, 여름에는 진초록이고, 가을에는 하늘의 맑은 빛이고, 겨울에는 겨울 산과 같은 빛깔입니다. 겨울 산은 모든 것을 다 벗어 버리고 홀가분한 산이지요. 바로 겨울 산을 닮은 겨울 강이 얼마나 홀가분하고 편안하겠어요."

a 도도하게 흐르던 여름의 섬진강에 비하면 겨울 섬진강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도도하게 흐르던 여름의 섬진강에 비하면 겨울 섬진강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 서종규

a 섬진강에 수량이 많이 줄어들어 흐르는 물위로 솟아 있는 바위들은 까맣게 점점이 박혀 있습니다.

섬진강에 수량이 많이 줄어들어 흐르는 물위로 솟아 있는 바위들은 까맣게 점점이 박혀 있습니다. ⓒ 서종규

지난 12월 5일 오전에 섬진강 살 뿌리를 찾았습니다. 광주경신중학교 학부모독서회원들과 함께 문학 기행을 떠난 것입니다. 너무나 쓸쓸할 것 같은 겨울 강을 찾아서 떠났답니다. 섬진강을 한번 보고 싶다는 간절함을 가지고 말이죠.

섬진강 살 뿌리는 광주에서 출발하면 곡성 나들목으로 나갑니다. 곡성에서 남원 쪽 국도를 타고 가다가 청계동 가는 길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조금 지나면 철길이 나타나는데 그 밑을 통과하면 섬진강이 나타납니다.

a 모둔 세월의 찌꺼기를 다 흘려 보내고 그냥 푹 쉬고 있는 겨울강이 얼마나 편안하겠습니까?

모둔 세월의 찌꺼기를 다 흘려 보내고 그냥 푹 쉬고 있는 겨울강이 얼마나 편안하겠습니까? ⓒ 서종규

섬진강물은 여름보다 수량이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강바닥이 거의 보일 정도로 바위들이 물 위로 솟아 있습니다. 흐르는 물 위로 솟아 있는 바위들은 까맣게 점점이 박혀 있습니다. 그 도도하게 흐르던 여름의 물들에 비하면 겨울의 물은 조용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 물 위에 철새들이 앉아 있습니다. 우리 차를 보았는지 몇 마리 물새들이 날아오르자 주변에 앉아 있던 물새들도 덩달아 날아오릅니다. 카메라를 들이댈 틈도 없었습니다.

곡성군에서 잘 정비한 섬진강가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청계동이라는 계곡이 나옵니다. 동악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섬진강으로 스며들어가는 계곡입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아름다워 여름에는 많은 사람이 찾고 있습니다.


a 곡성군 입면과 남원군 대강면을 연결하는 다리가 나오는데, 사람들은 이곳 일대를 '살뿌리'라고 부릅니다.

곡성군 입면과 남원군 대강면을 연결하는 다리가 나오는데, 사람들은 이곳 일대를 '살뿌리'라고 부릅니다. ⓒ 서종규

청계동을 조금 지나면 곡성군 입면과 남원군 대강면을 연결하는 다리가 나옵니다. 최근에 놓은 이 다리 위에 올라서 길게 뻗은 섬진강을 바라보면 가슴이 후련하여집니다. 바로 이곳 섬진강 일대를 사람들은 '살뿌리'라고 부릅니다.

이곳에는 섬진강 '독살'이 있는 곳입니다. '독살'이란 강에 대각선 방향으로 돌로 보를 쌓아 강물을 한쪽으로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물고기들이 그곳으로 오르내립니다. 대나무로 만든 발을 물 흐름이 거세게 떨어지는 곳에다 설치하여 대발에 고기가 걸려들게 하는 겁니다.

a 섬진강 '살뿌리'엔 강을 대각선 방향으로 돌로  보를 쌓아 만든 '독살'이 있습니다.

섬진강 '살뿌리'엔 강을 대각선 방향으로 돌로 보를 쌓아 만든 '독살'이 있습니다. ⓒ 서종규

우리 조상의 슬기와 지혜가 엿보이는 곳이지요. 그 넓은 섬진강에서도 '독살'을 설치하여 은어며 메기 등을 잡았겠지요. 그런데 이곳 섬진강 '살뿌리'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존된 '독살'이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 '독살'에서 유래하여 '살뿌리'라는 명칭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 '독살'은 조선시대에 막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약 300년이 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세월 동안 그 많은 홍수를 다 겪고도 터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허름해 보이는데, 그 오랜 세월을 버텨내다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a 섬진강은 봄에는 연둣빛이고, 여름에는 진초록이고, 가을에는 하늘의 맑은 빛이고, 겨울에는 겨울산과 같은 빛깔입니다.

섬진강은 봄에는 연둣빛이고, 여름에는 진초록이고, 가을에는 하늘의 맑은 빛이고, 겨울에는 겨울산과 같은 빛깔입니다. ⓒ 서종규

이 '독살'은 도깨비가 막아 주었다는 전설도 내려옵니다. 그래서 이 '독살'을 '도깨비살'이라고도 합니다. 이 도깨비 살에 대한 이야기는 <동국여지승람>, <두계전기사> 등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충정공 마천목 장군이 곡성 오지면 당산마을로 이사를 왔는데 생활이 넉넉지를 못했답니다. 그러나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마천목 장군은 섬진강에서 몸소 고기를 낚아서 부모를 공양하였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천목은 강을 막아 고기를 잡으면 좋을 거라 생각을 하였으나 강이 너무 넓고 흐름이 급하였답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강 쪽을 거닐다, 날이 저물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둥글게 생긴 돌이 푸르고 기이하여 주워왔답니다. 그날 밤 수천의 도깨비 무리가 마천목을 찾아와, "우리는 강가에서 사는 범산의 도깨비들입니다. 대감께서 석양녘에 주워오신 돌이 바로 우리들의 대장이오니 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마천목이 말하기를 "내가 섬진강 두계천에 고기를 잡는 독살을 만들려 하는데 너희가 막아주면 너희 장수를 돌려주겠다." 하였답니다.

a 강가에는 때로 살얼음이 얼어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강가에는 때로 살얼음이 얼어 있는 곳도 있었습니다. ⓒ 서종규

그래서 도깨비들이 쌓은 보가 바로 '도깨비살'이답니다. 그만큼 이 살뿌리에 오랜 세월 동안 터지지 않고 계속 버티고 있는 독살이 신비스럽기까지 하여 붙여진 전설이겠지요. 지금은 간혹 이 독살 위에서 은어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는데, 대나무발로 고기를 잡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답니다.

이곳 곡성입구에서 청계동, 살뿌리를 지나 함허정까지 20여km 섬진강가의 길은 곡성군에서 주최하는 섬진강 마라톤 코스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지난 9월 중순에 주최한 섬진강 마라톤 대회에 전국에서 7000명이 참석하였다고 하니 이 대회가 얼마나 사랑받는가 짐작이 갑니다. 섬진강을 품에 안고 달리는 마라토너들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만큼 섬진강을 따라 난 이 길은 마라톤이나 자전거 하이킹, 또는 드라이브로 적격인 셈이지요.

a 물속에서 무엇을 건져내고 있는 여인을 보았답니다. 그 추운 겨울강에서 다슬기를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물속에서 무엇을 건져내고 있는 여인을 보았답니다. 그 추운 겨울강에서 다슬기를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 서종규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물속에서 무엇을 건져내고 있는 여인을 보았답니다. 그 추운 겨울 강에서 다슬기를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긴 장화를 신었고 손에는 분홍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습니다. 물속을 볼 수 있는 도구를 물표면에 대고 물속에 손을 넣어 돌을 집어 올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돌에 붙은 다슬기를 떼어서 바구니에 넣고요.

일하는 모습에 너무 죄송하여 멀리서 망원으로 그 모습만 잡았답니다. 강가로 다가가 말이라도 한번 붙여보고 싶었지만 말입니다. 강가에는 때로 살얼음이 얼어 있는 곳도 있었는데 묵묵히 물속을 거닐면서 무엇을 건져내는 여인의 모습에서 겨울 강이 결코 쓸쓸하지만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외지에서 찾아와서 보는 강이 쓸쓸하지, 물에 접하고 사는 사람들은 겨울 강이 쓸쓸하지 않은가 봅니다. 섬진강은 오히려 쓸쓸함을 털려던 내 마음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a 겨울 섬진강은 쓸쓸함을 털어 버리려는 내게 더 많은 위로를 흘려 보내고 있습니다.

겨울 섬진강은 쓸쓸함을 털어 버리려는 내게 더 많은 위로를 흘려 보내고 있습니다.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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