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값 거품빼기 국민행동'을 진행하는 경실련 회원들.오마이뉴스 권우성
노태우 정부 시절의 전세대란 때부터 시민사회에서는 불로소득이 제거되는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위해 종합토지세 등 세제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와 함께 분양가 자율화와 후분양제 도입, 공공임대주택의 확대 등이 패키지로 다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분양가만 자율화하고 나머지는 나 몰라라 했다. 결국 분양받은 개인이 가져가던 불로소득을 대부분 건설사가 가져가도록 만들었고, 지금과 같은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더구나 토지공개념 3개 법안에 대한 위헌 논란이 일어 그 기능을 상실하면서 그나마 불로소득을 환수할 장치마저 사라지고 나서는 아무런 방책 없이 지내온 셈이다.
토지공개념법안이 만들어질 때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경실련의 한 교수는 그 당시 이렇게 한탄하기도 했다.
"토지공개념 3개 법안이 만들어질 때가 정부가 후퇴했던 시점이었는데, 시민사회가 좀 더 강경하게 밀어붙여서 종합토지세를 비롯한 근본적인 세제 개혁을 이루어내야 했다. 그런데 어설픈 타협책으로 토지공개념법안을 받아들였다가 이도 저도 아닌 게 된 건 아닌가."
분양가 원가 공개를 주장했던 근거들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폭리·담합·비리에 대한 의구심이었고, 경실련 조사에 따르면 나름대로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결국 아파트 가격을 반값으로 낮추게 될 것이라는 호언장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공주택 20%를 보유해야 한다는 경실련의 핵심 주장은 사라지고 '분양 원가 공개'만 사람들의 뇌리에 채워지고 있는 셈이다.
가정해 보자. 아파트 분양원가가 공개되고 아파트 분양가가 반값은 아니라 하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낮아진다면 전체 주택시장, 나아가 부동산시장 거품이 꺼지고 가격이 하락할까?
그러나 전체 주택시장에서 기존 시장을 뒤엎을 만큼 대량으로 반값 아파트가 공급되기도 힘들고, 설사 공급된다 하더라도 지금의 정책적, 제도적 방향 아래서는 너도나도 이 아파트를 분양받으려 할 것인데, 이건 판교보다도 더 큰 로또가 될 것이 분명하다.
분양받고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시세만큼 오르게 되어 있다. 그게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작동하는 원리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 '정책'은 부동산 부자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당연히 '조중동'이 종부세 때만큼 난리 칠 일이 없다. 거 잘되는지 보자, 이 정도의 태도를 취할 뿐이지.
분양원가 공개, '정책'으로 풀 문제가 아니다
애초 분양가를 공개하면 아파트가 반값된다는 경실련 주장과는 좀 다르지만, 현재 정당들이 검토하고 있는 토지임대부 주택이나 환매조건부 주택의 공급 역시 의도나 방향이 잘못된 건 아니다.
문제는 그 실현가능성이고, 공급량이다. 모든 전제가 충족되어서 실시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기존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공성 있는 주택시장과 별개로 대규모 주택시장이 여전히 불로소득을 보장해 주는 한 부동산가격 안정과 투기억제는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앞으로 모든 집을 이렇게 지으면 모를까.
그러면 원가공개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원가공개를 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정부가 안한 것뿐이다. 담합이 있었다면 공정위에서 조사해 과징금을, 폭리라면 국세청에서 조사해 세금을, 비리라면 검찰이 조사해 처벌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원가는 공개되게 마련이다.
말하자면 원가공개란 부동산 시장의 안정을 위한 '제도'나 정책으로 이루어질 사안이 아닌, 반시장적 행태나 부패에 대한 행정적 조치로 이루어질 사안이다. 그걸 미루고 혹은 피해가다가 이제는 '제도'나 '정책'으로 만들어야 하니, 이렇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입어야 하는 꼴이 됐다.
결국 특정지역의 가격을 내리려는 제도나 정책이 사회적 룰로 작동하기 어렵다.
부동산문제에 관한 해법은 그간의 전문가들의 논의과정에 비추어 보면 새로울 것이 없다. 가격을 낮추기 위한 정책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 비해 너무나 낮은 보유세를 강화(특히 실효세율, 명목상 1%가 아닌)하고 거래세를 낮추어서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
또한 가격의 급등이, 특히 화폐의 유동성으로 인해 생기는 경우라면 금리정책이 동원되어야 한다. 지금이 그런 시기인지 아닌지는 면밀히 검토해야 할 문제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전 국토의 이용계획, 토지이용계획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수도권정책이나 국토개발계획 전반에 대한 검토 없이 부동산 시장의 안정은 어렵다. 지역은 낙후되어 가고 수도권, 그 비빌 데 없는 공간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오는 만큼은 그를 위한 주택의 공급과 재개발은 필연적이다. 수요발생의 원인에 대한 진단 없이 공급만 하자고 하는 사람들의 경우엔 이 점을 반드시 살펴야 한다.
덧붙여 주택시장의 변화도 감안해야 한다. 집이 없으니 내게도 달라는 요구뿐 아니라 더 좋은 집을 요구하는 수요도 적잖이 형성되어 있다. 새로운 질의 주택 공급이 필요한 것이다. 이 새로운 질의 주택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당연히 가격이 높아지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 점도 면밀히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호언장담'보다 정책 신뢰 다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