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순(가명 70) 할머니의 집에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이상욱
이혜남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10분 정도 골목길 사이로 걷다 보니 어느새 이영순 할머니 집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 도시락 왔어요."
이영순 할머니는 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살고 계십니다. 방에 들어가 앉으니 방바닥이 꽤 차갑습니다. 날씨가 춥지만 난방비가 만만치 않아 전기요로 대신 버틴다고 하십니다.
시민단체인 '환경정의'가 지난 9~10월 저소득층 밀집 거주지역의 199가구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하층에 사는 가구가 55.3%에 이른다고 합니다. 햇볕도 잘 안들고 환기도 안되는 지하층에 살면서 저소득층은 없던 병이 생기고, 앓고 있던 병이 더 악화되기도 합니다.
이영순 할머니 집 장롱 위에는 약봉지만 족히 세 박스가 넘게 있습니다. 최근 4가지 병이 겹쳐 먹어야 할 약이 늘었답니다. 그런 이영순 할머니에게 소원은 병이 낫고 고통 없이 죽는 것입니다.
이영순 할머니에게는 아들 둘, 딸 둘이 있지만 찾아오는 자식이 없습니다. 다들 형편이 어려워 찾아오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전화 한 통 없는 것이 못내 서운하신가 봅니다.
"자식들이 나한테 먼저 전화 안혀. 내가 만날 먼저 허지."
그 얘기를 듣고 계시던 이혜남 할머니도 한마디 하십니다.
"그동안 자식들 뼈빠지게 다 뒷바라지 해주면 뭐혀. 나중에 커서 잘 되면 다들 부모 모른 척 하는데 ..."
#2. 김옥자(가명·74)할머니,"내가 죽으면 우리 어머니는 어떠켜"
다음은 아흔넷이 되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김옥자 할머니 집입니다.
얼마 전 암이 재발해 폐암 수술을 받은 김옥자 할머니에게는 자식 걱정보다 더한 걱정이 하나 있습니다. 병이 악화돼 아흔넷 어머니를 모시기 힘들면 어쩌나 하는 것입니다.
"아까 약 먹다가 목구멍에 막힌겨. 그래서 막 사방을 헤맸는데 하두 고생시려워서 정말 앉아서 딱 죽었으면 싶었다니깐. 근데 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떠켜. 안되자녀…."
김옥자 할머니는 딸 명의로 되어있는 빌라에서 현재 살고 계시지만 현재 압류가 되어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런 탓에 병원비는 할머니에게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다행히 사회복지사의 소개로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3. 최명옥(가명·78) 할머니, "이렇게 얘기하니까 얼마나 좋아"
▲이해남 할머니와 함께 도시락을 배달합니다이상욱
지하 단칸방에 사시는 최명옥 할머니는 우리에게 따뜻한 커피를 주십니다. 할머니에게는 아들 셋이 있는데 일자리가 없어 걱정이라고 하십니다. 최명옥 할머니는 올해 2월까지는 양말 뒤집는 일을 하면서 한 달에 20만원씩은 벌었지만 이제는 허리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아가씨(기자를 가리키며)만할 때 끝발 날렸었는데. 기술 하나 끝내줬었거든. 근데 지금은 다 늙어서 손가락이 쥐어지지도 않아."
양말 뒤집는 일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며 젊은 시절의 얘기를 꺼내십니다. 미군 담요 가지고 학생복을 만드는 일을 하셨는데 꽤 손재주가 좋으셨답니다.
"이렇게 사람들 만나면서 지껄이니까 얼마나 좋아. 건강해지는 것 같고. 근데 혼자 있으면 계속 누워있으니까 더 아픈 것 같아."
▲일을 나가시고 없는 한 할머니의 집이 쓸쓸해 보입니다이상욱
네 번째 방문한 할머니는 일을 가셨던 터라 만나볼 수 없었습니다. 부엌에 도시락을 두고 나왔습니다. 네 분의 식사를 다 돌고 나니 벌써 1시가 되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 혼자 점심을 드시겠다는 이해남 할머니를 붙잡고 함께 점심을 먹었습니다. 밥은 비싸다며 결국에는 들어간 곳은 자장면 집. 추울 땐 따끈한 우동이 최고라며 우동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함께 점심을 먹으니 기분이 좋다고 하십니다.
"집에 가면 혼자 먹어야 하는데 같이 먹으니까 좋네 그려."
늘어나는 독거노인들
보건복지부에는 독거노인 수를 83만여명으로 추정하고 습니다. 이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지정되지 못한 노인은 30여만명에 이릅니다. 지난 3일에는 서울 동대문구 이문3동의 한 단칸방에서 혼자 지내던 85세 노인이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복지부는 독거노인 도우미 파견 사업을 계획하고 있지만,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홀로 사시는 노인들이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에만 의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 군에서는 늘어나는 저소득노인을 위한 일자리 만들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독거노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지원하고, 작은 배려와 관심을 보일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일은 정말 요원한 일일까요?
13일 하루 동안 만났던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계속 귓가에 울립니다.
"대화할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 계속 찾아왔으면 좋겄어 그려."
| | "함께 관계 맺는 이웃이 필요하다" | | | [인터뷰]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김세진 재가복지팀장 | | | | - 도시락 배달 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서울시의 독거노인 지원사업의 일환이다. 한 끼당 2천원을 지원받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그래서 도시락 한 개당 1500원을 후원받을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고 일요일은 교회에서 후원을 받고 있다."
- 도시락 배달 사업의 목적은.
"1998년 복지관이 개관할 때부터 지속적으로 진행해온 일이다. 도시락 배달 사업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자원 봉사자들은 도시락을 단순히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통해 홀로 사시는 분들에게 안부도 묻고 더욱 가깝게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 '나눔'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나눔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밥 한 끼 더해서 이웃에게 베푸는 것, 무슨 일이 없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게 나눔이다."
- 독거 노인에 대한 정부 지원 가운데 아쉬움점이 있다면.
"기초생활수급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참 애매하다. 어느 동네는 수급자의 혜택을 받는데 어느 동네는 그렇지 않다. 독거 노인에 대한 복지 혜택이 좀 더 폭넓게 제공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독거 노인들 문제를 서비스 차원이 아니라 이웃간의 '관계'를 맺는 일로 바라봤으면 좋겠다. 진정 그들이 바라는 것은 도시락이 아니라 같이 먹어줄 '사람'이다." / 이진선 | | | | |
덧붙이는 글 | 이진선, 이상욱 기자는 <오마이뉴스>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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