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짓'으로 세상을 전하다

[인터뷰] SBS U포터 김광석씨

등록 2006.12.19 16:11수정 2006.12.1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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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짓!"

짧고 간결한, 하지만 조금은 과격한 이 한 마디.

@BRI@SBS 유포터 김광석(42)씨는 자신의 유포터 생활을 서슴없이 '미친 짓'이라고 소개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에 미치지 않으면 어떤 효과도 볼 수 없다는 게 그의 '인생 좌우명'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 '미친 짓'으로 SBS 8시뉴스 특종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만들어낸 최초의 유포터가 됐다. 유포터는 '유비쿼터스 시대의 신개념 시민기자'라는 뜻. 활동범위가 인터넷부터 지상파 DMB까지 이르고 있다.

그가 이 일에 몸담은 지 벌써 1년 4개월이 넘었다. 채팅 인터뷰로 만나본 그는 유포터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10년 전부터 영상쪽 일을 한 적이 있다"며 영상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이전에 주현미, 이원옹 문공부 장관 자제의 결혼식 비디오를 제가 촬영했죠." 비디오 영상을 가르쳐 주는 학원에 다니면서 잠시 배웠던 것이 기회가 되어 특별한 촬영경험으로 이어졌고 유포터라는 지금의 그를 만들어냈다.

영상 관련 일과의 인연으로 "촬영장비가 있어서 취미로 (유포터 일을) 시작하게 됐다"는 그는 제조업 영업이사라는 본업을 하면서도 취재를 위해 자투리 시간을 낼 만큼 열성적이다. '투잡'을 하는 이 시대의 만능 재주꾼인 셈. "솔직히 죽을 지경입니다. 회사에서 알면 목이~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양쪽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바쁜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동반자가 비디오카메라다. 그가 늘 애지중지 들고 다니던 그 카메라가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 역사적인 그날은 바로 2005년 1월 11일.

"우연히 라디오를 청취하다 (사고소식을 접하고) 그쪽으로 달려갔지요." 그가 도착한 경인고속도로 사고현장에는 네 대의 중소형 차량을 실은 탁송차량이 전복돼 주변 교통이 2시간째 마비상태였다. 그는 재빠르게 사고현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탁송차량 운전자도 인터뷰했다. 발빠른 현장취재는 그날 밤 SBS 8시 뉴스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유포터 특종이라는 거대한 타이틀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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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월 11일 당시 SBS 8시뉴스에 보도된 경인고속도로 사고 ⓒ SBS

그는 이 카메라 덕분에 영상이라는 또 하나의 매개로 세상을 표현하게 됐다. 지금껏 유포터를 계속해온 첫째 이유로도 단연 영상을 꼽았다. "영상으로 보는 세상은 우리가 두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영상으로 보는 아름다운 세상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것이 시민기자 생활의 목적이라고 얘기했다.

"전 사람들 만나는 것을 좋아해요." 유포터 생활의 첫째 이유가 영상이라면, 두 번째 이유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 때문이란다.

사람을 좋아하는 그답게 기사에 사람 관련 내용이 많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각양각색의 다양한 행사 소개부터 가슴이 찡한 사연으로 이어지는 취재 기록들. "이제 제게도 제보를 해주시거나 취재요청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수많은 기사 중 월드컵경기장내 웨딩홀에서 미용업을 했던 윤미옥씨 취재를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로 꼽았다. "좋은 일 하시는 분인데, 참 가슴 아픈 내용이었지요." 한참 지난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다시 안타까운 모양이다.

"월드컵 경기장 내 시설물은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서 관리하고 서울시에서 임대하는데, 한 번 임대한 시설물은 두 번 다시 임대할 수 없죠. 그런데 웨딩홀 주인이 이를 어기고 다시 임대해 장사가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다가 계약기간이 남아있는데도 강제로 (윤씨를) 추방한 것이죠."

지금은 삭제돼 볼 수 없지만 그가 쓴 이 기사는 윤씨가 강제추방당하는 것을 막고 문제가 잘 해결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망설임 없이 "그 사건이 가장 보람 있고 기억에도 남는다"고 말한다.

취재가 늘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직업기자가 아닌 탓에 촬영협조를 받는 일이 쉽지 않았다. "신분을 밝히고 명함을 달라고 했을 때 명함이 없으니 난감하기 짝이 없어요. 지금도 어렵고 힘든 부분이죠."

신분보장의 어려움이 있지만 "직업기자와 비슷하기보다 유포터는 직업기자보다 월등이 낫다고 본다, 직업기자는 영상팀, 편집팀, 모두 별개지만 유포터는 혼자 다 해야 한다"며 유포터 일에서 느끼는 자부심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처음 글을 쓸 때는 유포터 편집실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 지금은 글 쓰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유포터 중 베테랑에 속하는 김씨이지만 아직도 편집에 관한 내용을 꾸준히 공부하며 영상을 꾸미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U포터' 어떤 방향을 원하십니까? 방향은 스스로 선택하셔서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세요. 'U포터'- 직진 - 열정으로 출발하고, 'U포터'- 좌측 -그저 그렇게 진행하다. 'U포터'- U턴 - 이제 출발도 진행도 싫다 그냥 돌아가자. 'U턴' 포기하면 안돼요 '이제 시작인걸요. 'U턴' 돌아가려 하지 마세요. 처음 시작처럼, 열정을 가지고 앞만 보세요. 모두에게 꿈과 희망 미래가 있어요."

유포터 일을 처음 시작한 2005년 6월 무렵 포스트에 적혀진 글이다. 그에게 U턴은 없다. 늘 열정으로 직진을 외치며 달리는 유포터. "사건사고 현장을 목격하면 카메라를 들이대겠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가 '미친 짓'으로 또 어떤 타이틀을 만들어갈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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