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아침, 잠시 피었다 지는 꽃을 아시나요?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83] 눈꽃(상고대)

등록 2006.12.19 08:29수정 2006.12.1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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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중부고속도로 일죽 부근의 들판에 흰눈이 쌓여있습니다.

중부고속도로 일죽 부근의 들판에 흰눈이 쌓여있습니다. ⓒ 김민수

함박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든 날, 마음 같아서는 카메라를 들고 산야로 뛰어다니고 싶었는데 바쁜 일상을 벗어나질 못해 녹아버리는 눈을 아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방출장을 가는 길, 라디오에서는 겨울바다에 대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겨울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 닿는 대로 발 가는 대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을 살아가지 못한다.


a 메마른 단풍잎에 상고대가 눈꽃으로 피어났습니다.

메마른 단풍잎에 상고대가 눈꽃으로 피어났습니다. ⓒ 김민수

내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만나는 것들, 그 속에서 소중한 것들을 하나 둘 발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삶이다. 결국 '겨울바다'가 그리운 것은 지금 내가 그 곳과는 너무 먼 곳에 있기 때문에 그리움이 더 큰 것일 수 있다. 바다를 지척에 두고 살아갈 때 겨울바다에 서있다가는 살을 엘 것 같은 바람에 몇 걸음 걷지도 않고 집으로 돌아오곤 하지 않았던가?

a 눈이 쌓인 것과는 다릅니다. 눈결정체가 보입니다.

눈이 쌓인 것과는 다릅니다. 눈결정체가 보입니다. ⓒ 김민수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길, 아직도 산야에는 하얀 눈들이 쌓여있고 나목들 사이로 드러난 산의 살갗은 하얀 눈을 이불삼아 곤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안개가 끼는 곳은 강이나 하천을 끼고 있는 곳일 터이다. 그곳을 지나면서 나목과 들풀에 하얗게 피어난 눈꽃(상고대)을 보았다.

"와! 정말 예쁘다!"

a 밋밋하던 것을 특별한 것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밋밋하던 것을 특별한 것으로 변화시켰습니다. ⓒ 김민수

그러나 갓길에 차를 대고 그들을 담을 수도 없고, 갓길에 차를 댄들 내가 담고 싶은 풍광들을 제대로 담을 수도 없을 것 같아 마음에 그 풍광들을 담으며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 다닐 때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을 보고, 감격하곤 했는데 이렇게 고속도로를 달리니 그저 차창으로 스치며 볼 수밖에 없다. 느릿느릿 걷는 삶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실감하며 아쉬운 마음을 가득안고 고속도로를 달린다.


a 가는 것들도 잠시 숨을 멈추고 하얀 들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가는 것들도 잠시 숨을 멈추고 하얀 들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김민수

네비게이션에 목적지 도착예정 시간이 나온다. 조금 일찍 출발해서 1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1시간 여유가 있은들 잠시라도 쉬었다갈 수 있는 여백이 없는 고속도로니 그 1시간의 여유가 큰 의미가 없다. 휴게소 그 어딘가에도 그런 풍광들이 남아있기를 바랄 뿐이다. 휴게소에서 그런 풍광을 만나면 그 곳에서 1시간을 보내고 가리라 생각하며 가는 길, 장거리를 운행하는 트럭들이 쉬어갈 수 있는 큰 갓길이 보인다.

a 하얀 눈을 밟으면 소복소복 소리가 납니다. 눈꽃이 발자욱소리에 놀라 달아날까 그런가 봅니다.

하얀 눈을 밟으면 소복소복 소리가 납니다. 눈꽃이 발자욱소리에 놀라 달아날까 그런가 봅니다. ⓒ 김민수

그 곳에 차를 세우고는 고속도로 바깥으로 이어진 곳으로 가보니 그 곳에 눈꽃이 피어있었다.


"와!"

얼른 카메라를 챙겨들고 눈이 쌓인 들판을 걷는다. 구두 속으로 눈이 들어가 금방 발을 축축하게 만든다. 어린 시절 눈 속에서 뛰어놀다보면 신발 사이로 눈이 들어가는 그런 느낌이다.

a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또 있을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간이 또 있을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 김민수

마른 나뭇가지와 말라가던 들풀들에 맺힌 하얀 눈꽃, 겨울에만 피어나는 꽃이다. 그것도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주어야 피어나는 꽃, 햇살이 비추면 이내 뚝뚝 녹아버리는 꽃이 눈꽃이다.

눈꽃은 눈이 쌓인 것과는 다르다. 그래서 상고대라고 하는데 그 말은 참 멋이 없다. 그냥 눈꽃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다.

눈꽃이 꽃눈을 살포시 덮고 있다.
봄이 오면 꽃눈마다 눈꽃이 피어난다.
꽃 속에는 지난 겨울 눈꽃이 들어있다. <자작시-눈꽃>


a 돌콩인지 새콩인지 여우콩인지 꼭다문 입술에도 상고대가 피었습니다.

돌콩인지 새콩인지 여우콩인지 꼭다문 입술에도 상고대가 피었습니다. ⓒ 김민수

아직도 저 안에는 내년 봄에 싹틔울 콩이 들어있는 것일까? 콩꼬투리에 맺힌 눈꽃, 저 눈꽃이 녹아내리고 햇살 따스한 날이 오면 그들을 세상에 내어놓을까?

지금 이 순간, 하얀 눈꽃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 가까이에 있었다면, 마음먹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곳에 있었어도 이렇게 행복했을까 싶다.

a 푸른 하늘과 하얀 눈과 상고대가 어우진 풍경은 참 예쁩니다.

푸른 하늘과 하얀 눈과 상고대가 어우진 풍경은 참 예쁩니다. ⓒ 김민수

오랜만에 날씨도 맑다. 이렇게 맑으니 오전이 가기 전에 눈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또 언젠가 안개가 피어오르는 그 날에 피어날 것이다. 작은 물줄기들도 자기들이 피어올린 안개가 이렇게 아름다운 눈꽃을 피워낸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a 강아지풀도 반갑게 상고대를 맞이하고 있네요.

강아지풀도 반갑게 상고대를 맞이하고 있네요. ⓒ 김민수

강아지풀이 꼬리를 내리고 들판을 바라본다. 바람이라도 불어야 반갑다 꼬리를 칠 터인데 바람 한 점 없다. 그래, 겨울에는 바람이 불면 너무 춥다. 바람이 없어 함박눈도 내리는 것이다. 너무 춥지 않고, 너무 따스하지도 않은 날만 피어나는 눈꽃, 그 꽃을 이 겨울이 지나가기 전에 또 한번 만나고 싶다. 그 날은 그저 그 눈꽃들이 다 녹아버릴 때까지 그 곳에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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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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