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전원생활? 시골 아줌마 되기 얼마나 힘든데"

원주민들, '굴러들어온 돌' 적대시하기도... 부녀회 참여도 망설여지고

등록 2006.12.19 09:55수정 2006.12.1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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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건만 갖춰지면 시골로 들어오고 싶다는 지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마땅한 시골집 좀 구해 달라는 요청도 심심찮게 받고 있다. 시골 생활 4년차, 남들 눈엔 내가 시골로 터전을 옮긴 뒤 삶의 질이 눈에 띄게 높아진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순박한 시골인심과 함께 하는 쾌적한 전원생활. 시골로 들어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쉽게 그리는 그 꿈이 사실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게 겪어 본 사람들의 한결같은 체험담이다.

낯선 주민과 하나되기 쉽지 않아

@BRI@고추당초보다 맵다는 시집살이에 비하겠냐만 어느 날 불쑥 들어온 낯선 이방인을 살갑게 맞아주는 농촌마을은 찾아보기 힘들다. 4년차인 나도 아직까지 동네 어른들 눈치 슬슬 보며 할 말도 제대로 못하고, 웬만하면 내가 손해 보는 쪽으로 잔뜩 자세를 낮춰도 동네 주민들 속에 완전히 편입되지 못한 판이니 말이다.

옆 마을에 사는 지인이 저녁식사 초대를 했다. 3년 전에 새 집을 짓고 들어온 분인데 그 집 안주인이 어찌나 붙임성이 좋든지 동네 할머니들과 한 달에 한 번씩 친목계를 하고 있단다.

같이 앉아 농촌 입주민들의 애환을 늘어놓고 있다가 그 지인의 선배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장군으로 예편한 내 선배가 편안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싶어 시골로 터를 잡았거든요. 그 양반 성격이 좋아 새로 들어간 마을 사람들에게 말도 못하게 잘했대요. 마을에 무슨 일이 있으면 큰돈도 내놓고, 술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비싼 양주도 아낌없이 대접하고….

마을사람과 친해지려고 온갖 정성을 다 들였는데 아, 갈수록 마을사람들이 무례해지더래요. 지나가다 불쑥 들어와 비싼 술 내놓으라고 퍼질러앉고, 술 내놓으니까 '장군 마누라'가 한 잔 따라 보라고 객기를 부리고."


마을 사람들 하는 꼬락서니에 꼭지가 돌아버린 퇴역장군. 그 길로 술상을 둘러엎고 멱살잡이를 해 사람들을 쫓은 다음 만정이 떨어져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우리 집 전주인 생각이 난다.

그 분이 우리 마을 이모저모를 설명해 주시며 몇 가지 주의사항을 넌지시 일러주셨다.

"조 선생, 시골사람 순진한 사람 이렇게 생각하면 큰 오산이요. 도시사람 찜 쪄 먹게 영악하고 얼마나 뒷말이 많은지 자칫 잘못하다간 시비에 휘말리기 딱 알맞단 말이요. 이곳 토박이 아니면 마을 사람들과 불가근불가원이 가장 좋아."

미루어 짐작이 가능했다. 생활터전과 생활방식 그리고 정서가 다른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오죽하겠는가.

근본을 모르는 외지인에 대한 완고한 배타심, 일요일도 없이 논밭전지나 하우스에서 허리 펼 날 없는 농투사니인 자신들과 달리 세련된 옷차림에 매끈한 서울 말씨 톡톡 쓰는 새 이웃이 낯설고 거북하고 그렇겠지. 더구나 남의 집 숟가락 숫자까지 환히 꿰고 있는 마을 사람들. 아는 것이 많으니 참견할 것은 또 오죽 많을까.

이웃들에 너무 굽신거려도 안돼

주의사항도 들었겠다 처음 이사 와서는 행동거지에 각별히 조심을 했다. 동네 어른들에겐 무조건 공손히 인사를 했고, 맛난 생선이나 과일이 생기면 주변 어른들 잊지 않고 챙겼다.

마을 경조사는 물론 1년에 한번 하는 마을총회에 참석해서는 한 쪽 구석에서 조용히 경청하다 설거지 마무리까지 깔끔히 정리했더니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낫낫한 아줌마'가 들어왔다고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에게 정 붙인다고 비굴하게 보일 정도로 굽실거리면 퇴역장군 꼴 나기 십상이다. 힘든 일 뒤에 벌이는 술판에 몇 번 초대받았지만 정중히 사양했다. 술 먹고, 노래하고, 춤추는 그 판에 어울려 함께 즐길 자신이 도저히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먹을 만한 안주 챙겨주는 것으로 소임을 다했더니 밉상은 면했다. 마을 사람들처럼 농사가 주업이 아니면 마을 부녀회 참여도 쉽지 않다. 몇 안 되는 숫자이다 보니 모든 것이 품앗이 위주이기 때문이다.

김매기도 품앗이, 추수도 품앗이 그러다보니 먹거리 또한 내 것 네 것이 없는데 마을 여인네들과 공유할 화제가 하나도 없는 굴러온 돌이 뭔 수로 그 틈에 낄 수 있겠는가.

전주인 충고대로 '불가근불가원'의 원칙을 철저히 지켰더니 나름대로 부락 공동체 일원으로 부드럽게 안착을 하긴 한 것 같은데 아직도 숙제는 산적해 있다. 그 양반들의 오래된 생활습관을 존중해 주는 것은 문제 없는데 도저히 봐주기 힘든 것들 때문에 갈등이 이만저만 아니다.

'불가근불가원' 잘 지키긴 했는데...

불타는 플라스틱통. 이렇게 태우면 안되는데…
불타는 플라스틱통. 이렇게 태우면 안되는데…조명자
그 중에 하나가 쓰레기 처리. 요즘엔 시골도 분리수거함이 아주 잘 구비되어 있다. 그런데 시골 어른들의 쓰레기처리 습관은 대책이 없을 정도이다. 아무 데나 버리고, 아무것이나 태우고. 일주일에 두 번 쓰레기차가 오지만 매립봉투가 실리는 것을 좀체 볼 수 없다.

비닐이나 화학섬유 같은 것을 태우는 노인들에게 몇 번 말씀 드렸지만 귀 밖으로도 안 들으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 이런 것들 태우면 암 걸리는 성분이 나온대요. 그러니까 제발 태우지 마세요."

그 양반들 노염 타실까봐 응석 부리듯 한 말씀 드렸더니 즉각 대답이 돌아온다.

"암시랑토 않아. 몇 십 년을 태웠어도 암은커녕 팔구십 되도록 죽지도 않잖아. 오히려 가리고 유난떠는 젊은 것들이 암 걸려 되진다고 난리굿을 치드만."

당신들 쓰레기도 모자라 도시 사는 자식새끼들 쓰레기까지 들고 와 파묻고, 태우고 버리는 농촌 환경. 청정지역 농촌이란 수식어는 옛 말. 이러다가는 도시보다 농촌의 환경이 더 빠르게 파괴되지 않을까 하는 초조감이 들 정도로 이 마을, 저 마을 가릴 것 없이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다.

그런 노인들 상대로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을 수도 없고. 청년회도 없으니 마을 질서를 다잡을 주체도 없고. 마을 주민으로 신망을 얻지 못했으니 내가 나서 설득작업을 할 수도 없고… 이래저래 농촌 이주민의 뿌리 내리기가 너무나 힘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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