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석정 돌홈한대일
결론적으로, 외부적 멸망 원인으로 보이는 견훤의 경주 침공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일부 신라 지배층에 의해 행해진 내부적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10세기 초 신라의 권력 체계는 뿌리부터 뒤흔들렸으니 그것은 바로 '박'씨가 왕위에 오른 일이다. 17대 내물왕부터 52대 효공왕까지, '김'씨는 무려 556년 동안이나 '박'씨와 '석'씨를 배제한 채 신라 왕위를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권력을 5세기 넘게 독점하고 있던 '김'씨에게 비상이 걸렸으니, 효공왕이 후사 없이 죽은 것이다. 수많은 화백회의가 벌어졌지만 '김'씨는 왕이 될만한 인물을 당장 내세우지 못했고, 결국 '박'씨 성을 가진 대아찬 예겸의 아들인 휘가 왕위에 올랐다. 바로 신덕왕이다. 신라의 왕위를 어이없이 '박'씨에게 빼앗긴 '김'씨는 권력을 되찾아오기 위해 칼을 갈고 있었고, 그 와중에 신라왕은 신덕왕, 경명왕을 거쳐 경애왕이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