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 주고 훌쩍 떠난 아들... 눈물을 흘리다

등록 2007.01.01 16:36수정 2007.01.0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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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들에게 선물할 때는 부자가 함께 웃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선물할 때는 둘이 다 눈물을 흘린다."


어딘가 썰렁한 내 집.
어딘가 썰렁한 내 집.박도
서양 속담이다. 인류의 보편적인 진리와 가치는 동서양 구별이 없나 보다. 더욱이 가족애와 같은 사랑은 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 집은 내가 제사를 물려받은 뒤부터 여태 신정을 쇠고 있다. 한때는 신정을 설로 쇠기도, 구정을 쇠기도 하다가 그 언제부터인가 모두들 구정을 설로 쇠고 있지만, 우리 집은 여태 신정을 고수하고 있다.

설날이 다가오면 온 나라가 명절 분위기로 들뜬 분위기 속에 온통 요란하다. 그게 민족 고유의 전통이요, 세시풍속으로 우리가 마땅히 지켜야 할 민속이지만 온 나라가 교통으로 몸살을 앓고, 시장에는 물가가 덩달아 뜀박질을 한다.

@BRI@이런 소용돌이 속에 백에 한두 집쯤은 미리 신정을 쇠는 것도 교통에도, 물가에도 조금은 도움이 되리라. 사실 모든 사람의 삶이 판에 박은 듯한 똑같은 삶은 전근대적이요, 독재국가에나 있을 법한 일이다. 현대는 다양화 시대로, 자기 나름대로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사는 게 나는 옳고, 시대정신에도 맞다고 생각한다.

오늘 설날을 앞두고 엊그제(30일)부터 아들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날도 출근해야 한다기에 어제는 아침부터 기다렸다. 내가 하염없이 아들을 기다리자 아내가 곁에서 충고를 했다. "오면 반갑고, 안 오면 더 반갑다"는 마음으로 자식에게서 독립을 하라고 한 마디했다.


하기는 일리가 있는 말이다. 부모가 기다린 줄 알면서도 여러 가지 형편과 사정으로 오지 못하는 자식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무작정 자식을 기다리는 것은 자식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다. 사실 올해 우리 집 딸은 멀리서 공부하고 있기에 올 수도 없는 처지다.

내 눈망울에 눈물이 맺혔다


어제 점심 때가 지나고서야 아들로부터 서울에서 출발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영동고속도로가 스키장 가는 인파와 동해안 해맞이 가는 인파로 하루 종일 막힌다고 했다. 밤늦게야 도착할 줄 알았더니 해거름에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상현이냐?"
"예, 저 왔어요."
"그래, 오너라고 수고했다."

우리 부자는 더 이상 별 말이 없었다. 나는 아들과 함께 새로 지은 흙집 글방에서 자려고 어제 온종일 연탄불이라도 꺼질까 연탄 화덕을 몇 번이나 여닫았다. 아들은 간밤에 나와 함께 따끈따끈한 흙집에서 자고는 오늘 아침 차례를 드렸다. 나는 마음 속으로 조상님에게 가족의 건강만 빌었다.

아들의 졸업식날 제 엄마가 가운을 매만져주고 있다.
아들의 졸업식날 제 엄마가 가운을 매만져주고 있다.박도
차례상을 물린 뒤 아들에게 세배를 받고 세 식구가 차례상의 떡국을 나누어 먹자 아들은 오전에 출발해야 길이 밀리지 않는다면서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붙잡아 점심이라도 먹은 뒤에 보내고 싶었지만 아들도 서울에 일찍 도착해 푹 쉰 뒤에 내일 출근하는 게 좋을 듯하여 굳이 잡지 못하였다.

차 시동을 걸어놓은 뒤 아들은 전송하는 우리 내외에게 각각 봉투 하나씩을 주고는 차에 올랐다.

"저, 가요."
"그래 잘 가라. 조심하고."

그는 푸르스레한 매연을 뿜은 채 훌쩍 떠났다. 그가 준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서는 내 눈망울에서는 눈물이 맺혔다.

새해 해돋이. 새해에는 모든 가정에 희망과 행복이 가득하기를...
새해 해돋이. 새해에는 모든 가정에 희망과 행복이 가득하기를...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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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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