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겨울밤 '삶은 찰옥수수' 어때요?

한 겨울에 맞보는 여름철 별미 '찰옥수수' 그 맛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등록 2007.01.03 15:32수정 2007.01.0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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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삶는 모습, 냄새만 맡아도 그 맛이 짐작된다.
옥수수 삶는 모습, 냄새만 맡아도 그 맛이 짐작된다.강기희
겨울은 밤은 길다. 긴 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입을 궁금하게 한다. 냉장고에 먹을 게 가득 찬 요즘이야 언제든지 간식거리를 뚝딱 만들어내지만 예전엔 그렇지 못했다.


바람이 씽씽 부는 겨울 밤은 언제나 먹는 일과 함께 했다. 어머니들이 오죽하면 배고프기 전에 잠이나 자라고 성화를 댔을까.

겨울 밤엔 '쫀득쫀득한 찰옥수수'를 준비하자

@BRI@어린 시절 잠자리에 들라치면 어김없이 들려오던 "찹쌀떡∼" 소리는 먹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시절의 주전부리는 집에서 곤 '옥수수 엿'이나 옥수수를 튀긴 '박산'과 시원한 '무' 정도였다.

때에 따라서 '볶은 콩'과 '누룽지'도 있었으나 삶은 옥수수만큼 인기가 좋았던 먹을거리도 없었다. 옥수수는 삶는 냄새만 맡아도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였다. 요즘은 옥수수를 따는 즉시 냉동실에 넣어두지만 예전엔 냉동 시설이 없어 삶은 옥수수를 말려 겨울에 먹었다.

삶아서 말린 옥수수는 여름철에 먹는 옥수수와 달리 독특한 맛이 났다. 말리는 과정에서 곰팡이가 생기기도 하지만 먹는 데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만큼 옥수수는 가족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먹을거리였다.


올해 옥수수 농사를 조금 지었다. 절반은 새들과 쥐가 먹고 절반만 남았다. 내년을 위해 씨앗 용으로 남겨둔 것도 쥐가 절반은 해치웠다. 자연스럽게 내가 먹을 것이 줄어들었다. 겨울을 날 때까지 먹으려면 아껴야 했다.

요 며칠 옥수수를 먹지 못했다. 오늘 밤엔 눈이 내린다는 소식도 있고 하니 옥수수가 생각났다. 두어 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결국 냉동실에 보관되어 있던 옥수수를 삶기로 했다.


그렇다고 한 솥 가득 삶는 것은 아니다. 하룻밤의 허기를 채울 정도니 많아야 다섯 통이다. 먹다 남으면 다음날 그릴에 넣어 노릇노릇하게 구워 먹는다. 구워 먹는 맛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먹는 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옥수수 맛의 오묘함은 무릎을 칠 정도다.

삶아진 옥수수, 윤기가 자르르 나는 게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삶아진 옥수수, 윤기가 자르르 나는 게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강기희
지난 연말까지는 예전처럼 삶아 말려 놓은 것을 먹었다. 삶아 말린 것은 최소한 1시간은 삶아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수확과 함께 냉동실에 넣어둔 옥수수는 30분 정도면 충분히 익는다. 삶을 때 소금 간을 조금 한다.

식성에 따라 설탕과 소금을 함께 넣기도 하지만 소금 간이 가장 좋다. 옥수수를 갓 따서 삶을 때엔 아무것도 넣지 않는 게 더 맛있다. 옥수수는 따는 즉시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하루만 지나도 맛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냉동실에 넣을 때도 곧바로 넣어야 그 맛을 유지한다.

버릴 게 없는 옥수수, 알고 보니 건강식에다 보약까지?

옥수수는 버릴 게 없다. 옥수수대는 소의 먹이로 활용되며 수염은 차로 끓여 먹는다. 어릴 적 먹을 게 없던 시절엔 옥수수대를 간식 삼아 먹기도 했다. 옥수수 대궁의 껍질을 벗기고 쭐쭐 빨면 단성분이 나왔다. 한국식 사탕수수인 셈이었다.

옥수수 뿌리와 잎은 끓여 차로 마시면 담석이나 이뇨작용에 좋다고 본초강목은 소개한다. 여성들에겐 옥수수 수염이 좋다고 한다. 끓여 물처럼 마시면 소화와 이뇨작용을 돕는단다.

삶은 옥수수 자체는 소화가 잘되니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변비에도 좋다. 옥수수에 대한 효과는 한둘이 아니라 이 자리에선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그 효능이 궁금하면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충분히 확인된다. 옥수수가 그만큼 건강식이란 얘기다.

이제 남은 것은 먹고 난 옥수수 통이다. 예전 사람들은 빈 옥수수 통에 젓가락을 꽂아 등을 긁었다. 까칠한 것이 시원하기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효자손과 비교할 수 없다. 그러다 효능이 떨어지면 아궁이에 들어가 훌륭한 불쏘시개가 된다.

올챙이 국수, 옥수수로 만든 음식이며 그 모습이 올챙이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올챙이 국수, 옥수수로 만든 음식이며 그 모습이 올챙이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강기희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옥수수는 이처럼 약재로, 다이어트 음식으로 혹은 간식용으로,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여행할 때 옥수수 몇 통만 가지고 가면 김밥이 따로 필요 없다. 먹기에 편하니 시간도 절약되고 남부러울 것도 없다.

옥수수로 만든 음식도 많다. 찰옥수수로 지은 밥을 금방 먹으면 쌀밥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차지고 맛있다. 대신 밥이 식으면 숟가락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게 굳는다.

중학교 시절만 해도 옥수수밥으로 도시락을 싸온 학생들이 많았다. 굳은 옥수수밥을 먹으려면 놋쇠 숟가락 정도는 있어야 가능했다. 단단하기가 벽돌 같다면 믿을까.

옥수수로 밥을 지으려면 옥수수를 맷돌에 갈아 쌀을 만들었다. 찰옥수수가 아니면 밥이 푸석해 맛이 덜하다. 찰옥수수로 지은 밥은 간고등어 구이 하나만 있으면 진수성찬이다.

옥수수로 만든 올챙이 국수는 여름철 별미다. 강원도 정선 지역에서는 올창묵이라고도 부른다. 올챙이 국수는 옥수수를 삶아 맷돌에 갈아 만든 것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올챙이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올챙이 국수는 술 마신 다음날 속풀이용으로도 좋다. 소화가 잘되는 음식이라 두어 시간 지나면 또 먹고 싶어진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올챙이 국수 한 그릇은 더위도 잊게 한다. 아이들에겐 옥수수 알에 치즈를 얹어 요리를 하면 훌륭한 간식이 된다.

옥수수로 빚은 술은 그 맛이 일품이다. 예전 명절날이면 몇 동이씩 옥수수 술을 빚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불법이라 규정했지만 그 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깊고 그윽한 옥수수 술은 입에 착착 감겼다. 앉은뱅이 술이 따로 없었다.

중학생 시절만 해도 어른들께 세배를 가면 세뱃돈이나 과자를 주기보다 술 상을 내어왔다. 그날만큼은 취해 쓰러진다 해도 허물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맛있는 옥수수 고르는 법을 알려면 강원도 정선으로 가야 한다

옥수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삶는 냄새만 맡아도 삶아지는 옥수수가 찰옥수수인지 아닌지 구분을 한다. 옥수수 농사는 전국적으로 하고 있으나 아무래도 강원도 지역의 옥수수가 맛있다.

강원도 정선 지역에서조차 같은 종자로 농사를 지어도 마을마다 조금씩 맛의 차이를 보인다. 그것은 해발 고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바람과 기온이 적당하게 어우러졌을 때 비로소 맛있는 옥수수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여름철 옥수수 대를 벤 모습, 옥수수는 금방 따서 삶아야 맛있다.
여름철 옥수수 대를 벤 모습, 옥수수는 금방 따서 삶아야 맛있다.강기희
개인적으로 밤 시간에 작업을 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에겐 옥수수가 요긴하다. 식사를 차리기 부담스러운 새벽 시간엔 삶은 옥수수 두어 통이면 허기를 간단하게 모면할 수 있다. 잠자리에 들어도 위에 부담이 없으니 간식용으로는 그만이다.

옥수수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을 먹어도 좋지만 김이 한숨 빠졌을 때 먹어도 차지고 맛있다. 맛있는 옥수수를 고르는 방법을 알고 싶으면 여름철 강원도 정선으로 가야 한다. 만지면 손에 쩍쩍 들러붙는 찰옥수수의 진미를 느껴 보면 절반은 터득한다.

도시에 살 때 옥수수가 떨어지면 정선으로 갔다. 여행 삼아 떠난 길에서 냉동 옥수수 두어 박스 사들고 오면 한 겨울을 났다. 정선 지역에서 만든 냉동 옥수수는 선물용으로 또는 옥수수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다.

'옥수수 마니아들이라니?'라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겠다. 옥수수라는 말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이 옥수수 마니아다. 그들은 앉은 자리에서 스무 통 정도는 거뜬히 해치운다. 그들은 또 어떤 옥수수가 맛있고, 옥수수를 어떻게 삶으면 맛있다는 것 정도는 기본으로 안다.

웰빙 음식이 유행인 요즘이다. 옥수수처럼 자연에 가까운 음식도 없다. 눈발이 펄펄 날리는 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삶은 옥수수 한 통씩 잡고 하모니카를 불어보는 건 어떨까. 정겨운 풍경 하나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옥수수는 푸근한 어머니의 품 같은 고향의 맛을 지니고 있다. 이 겨울 고향의 맛을 찾아 떠나보자. 여행 길에서 운 좋게도 옥수수 마니아를 만난다면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지난해 봄 전남 고흥에서 만난 한 시인과는 거리에서 산 옥수수를 먹으며 밤새 옥수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옥수수 하나로도 삶을 나눌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마니아끼리의 만남은 그래서 언제나 즐겁다.

군옥수수, 노릇노릇 구워야 제 맛이다. 너무 맛있어 절반은 먹었다.
군옥수수, 노릇노릇 구워야 제 맛이다. 너무 맛있어 절반은 먹었다.강기희
젓가락을 꽂은 빈 옥수수통, 등 긁는데 쓰인다.
젓가락을 꽂은 빈 옥수수통, 등 긁는데 쓰인다.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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