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불에 삼겹살로 보낸 연말

등록 2007.01.03 11:25수정 2007.01.0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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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장작불을 피우고 있는 모습.

장작불을 피우고 있는 모습. ⓒ 장승현

@BRI@연말에 후배들이 집으로 쳐들어왔다. 마당 한가운데 차가 가득 차고, 구워먹을 돼지갈비와 삼겹살이 도착하자 우리들의 연회는 시작되었다.


장작을 피네, 거실에서 가스레인지에 고기를 굽네, 하더니 끝내는 여자들의 성화가 이겨 밖에서 드럼통에 고기를 굽기로 했다.

후배들은 연휴 끝이라 저마다 지난밤에 찌들대로 찌들었는지 대부분 파김치가 되어 별 의욕이 없어 보였다.

술꾼들이 다들 이런저런 이유로 술을 마다했고, 불판을 만드는데도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a 호일에 싼 군 고구마.

호일에 싼 군 고구마. ⓒ 장승현

미리 준비도 되지 않은 자리라 뒷산에 가서 약간의 나무를 주워다 불을 피웠다. 원래 집에는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만든 불판이 있기에 불 피우기는 언제든지 준비되었다. 지난번 쓰다 남은 숯도 있었지만 날씨가 쌀쌀하니 직접 불을 피워 불기운을 쐬는 것도 괜찮은 듯해 불을 피웠다.

a 숯불에 익어가는 삼겹살.

숯불에 익어가는 삼겹살. ⓒ 장승현

아무 준비도 없이 갈비와 삼겹살을 사온 후배들은 마당에서 불을 지핀다, 거실에서 음식을 준비한다, 법석을 떨었다. 그러더니 10여 명이 넘는 친구들이 음식을 잔뜩 먹고는 집 여기저기에서 나뒹굴었다.


점심때 나타나 우리 집을 점령한 후배들은 집 구석구석에서 먹고 자고 했다. 김장 김치에 총각김치, 겨울철이면 반찬 걱정 없이 이거면 되고, 고기만 잘 구우면 끝이었다.

a 빗자루를 들고 폼잡는 후배 딸 현숙이.

빗자루를 들고 폼잡는 후배 딸 현숙이. ⓒ 장승현

우리 집은 시골에서 살다 보니까 주변에서 지인들이 자주 놀러 온다. 그래서 집 옆에 술 마시고 자고 쉬다 갈 수 있는 사랑방을 하나 만들었는데, 내가 위에 병이 나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그러지 않아도 내부가 완공되자 후배들과 친구들이 몇 팀 왔다 가기도 했다. 사랑방 이름을 '취화정'이라고 할까, '세문정'이라고 할까 고민하다가 속병이 났다. 그런 바람에 주변에서 욕 얻어먹을까 봐 이름 짓는 것은 아직 보류 중이다.

언젠가는 현판식도 하고, 개공식도 거나하게 해서 명실 공히 주변에서 알아주는 카페, 내지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할 때가 있으리라.

a 거실에서 돼지갈비 굽는 모습.

거실에서 돼지갈비 굽는 모습. ⓒ 장승현

예전에는 정말 개인 카페를 만들고 싶었다. 그건 땅만 여유가 있으면 흙집으로 둥그렇게 쌓고, 한가운데는 장작불을 필 수 있는 제단 같은 걸 만들고, 천장 지붕으로는 웅장한 후드 시스템을 해 내부에서 장작불을 피더라도 연기가 하늘 높이 잘 빠져나가도록 만들고 싶었다.

겨울 긴긴밤, 눈 내리는 겨울밤에 창밖으로는 가로등 불빛 사이로 굵은 눈발이 날리고, 장작불 속에는 군고구마가 익고, 삼겹살이나 구워 소주병을 자빠뜨리는 그런 집을 짓고 싶었다. 그런데 영 번거로워 그냥 간단하게 목조주택으로 나의 개인 사랑방을 만들었다.

이층에 마련된 사랑방은 밖을 내다보면 동네 전경이 내려다보이고, 무엇보다 주방과 화장실이 별도로 딸려있는 초현대식 원룸 형태의 술방으로 완성했다.

a 이층 사랑방.

이층 사랑방. ⓒ 장승현

그런데 이 사랑방을 지어놓고 내가 위장에 병이 생겼으니 주변에서 이곳을 이용하기가 불편한지, 아니면 주인이 술을 먹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이 사랑방은 찾아오는 이 없이 그냥 묻히게 되었다.

먼데서 그리운 벗이 찾아오니
불 피워 방을 데피고
숨겨놓은 술병을 꺼내
겨울밤 새는 줄을 모르네


방 한가운데 이런 시를 하나 써 놓고, 언제나 누구나 머물고 갈 수 있는 이곳에 '나그네 집'이라는 택호를 적어놓는 것도 좋을 듯했다. 언젠가는 몸을 추스르고 주변의 지인들과 술 한 잔 하는 때가 있으리….

처음에는 몸들이 무거워 그런지 다들 의욕이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장작불을 피고, 고구마를 군다, 삼겹살을 굽는다 하니까 다들 방 안에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연기가 나고 삼겹살이 지지직 소리를 내며 때깔이 변해가자 소주병이 하나하나 쓰러지기 시작했다.

a 다 익어가는 삼겹살.

다 익어가는 삼겹살. ⓒ 장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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