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두뇌서 새로운 부(富) 창출될 것"

[단독취재]한국 전문직 여성들과 특별한 만남 앨빈 토플러 박사

등록 2007.01.03 12:43수정 2007.01.0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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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타임스
[이미경 편집국장] 세계적인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 박사(78). 지난 12월 중순 산업자원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그는 12월 15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와 함께 오찬을 갖고 공항으로 떠나기에 앞서 한국의 전문직 여성들과 함께 약 1시간 30분 동안 특별대담을 가졌다.

신라호텔에서 마련된 이날 모임에는 김희정(한나라당 국회의원), 박은숙(LG생활건강 화장품사업부 컨설턴트), 오나미(스와롭스키벤쳐스코리아 지사장), 김진형(두산의류BG 폴로 여성사업부문 부문장), 정신호(한국스파이렉스사코 이사), 윤미경(애니TV 대표), 김성희(워싱턴타임스 서울 특파원)씨 등이 참석했다.

토플러 박사는 일찍부터 지식기반사회의 도래를 점쳐온 전문가답게 “미래 사회에서 성(gender)은 더 이상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고정관념을 조목조목 깨뜨리는 도전적인 대화 내용으로 참석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그는 시종 유머러스했고, 많이 웃었다.

뉴욕대학 시절 처음 만나 지금까지 56년 동안 평생의 지적 동반자로 지내온 부인 하이디(77) 여사의 이야기를 종종 꺼내가며 친근감 넘치게 대화를 이끌었다. 우먼타임스는 이날 모임을 단독 취재했다. 다음은 대담의 주요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김성희: 먼저 오늘 모임을 주최한 입장에서 의미를 짚어보고 싶다. 토플러 박사는 이제까지 사회의 변화를 주시하고 그 방향을 앞서 알려 왔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체적 역할을 하고 있다. 여성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나갈 수 있을지 생각을 나누고 싶다.

@BRI@오나미: 대한민국 여성들은 분명히 어느 수준까지는 경쟁력이 있다. 그런데 그 이상이 되면 경쟁력을 잃어버린다. 그건 능력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배짱과 네트워크 부족 때문인 것 같다. 또 문제나 갈등이 생겼을 때 남성들은 경쟁을 즐기는 데 비해 여성들은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할 때 위로 치고 올라가지 못하기도 한다. 다른 나라의 여성도 그런지 궁금하다.

토플러: 그건 남녀의 차이라기보다 개인의 성격 차가 더 크다고 본다. 실제로 내 아내 하이디는 타고난 투사(fighter)다. 강력하고 매사에 두려움이 없다.


김희정: 여성이 생리적으로 경쟁에 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여성들은 경쟁조차도 예측 가능한 상태에서 하고 싶어 한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적법하지 않은 방식으로 경쟁을 해왔기 때문에 남성들이 앞섰다고 생각한다. 적법하고 공정하게 경쟁한다면 여성이 훨씬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토플러 박사께서는 미래 사회에서 경쟁의 양태가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고 보는가.

토플러: 과거 경쟁력의 잣대는 이제 통용되지 않는다. 성(gender)은 점점 중요한 기준이 아니게 될 것이다. 앞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해 내는 것은 근력이 아니라 두뇌이다. 또한 만질 수 없는 비화폐적인 가치도 더욱 중요해진다. 경제학자들은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걸 무척 싫어하지만, 예를 들어 ‘어머니 역할’을 돈으로 환산하면 엄청나다. 인류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것은 아기에게 화장실 가는 법, 말하는 법 등을 가르친 어머니의 역할이 지대하다. 앞으로 이런 노동의 가치를 재평가해야 한다.
김희정: 국내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학교교육 체제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다. 교육의 내용을 바꾸면 될까.


토플러: 지금의 학교교육은 농업시대 농장 노동자들을 산업시대 공장 노동자로 흡수, 교육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관료적인 부분이 너무 많고, 교사 혼자서 바꾸겠다고 해서 바꿔지는 것도 아니다. 미래의 생산력은 공장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쓸모없는 것을 교육시키며 그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앞으로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실험을 거쳐야 하기에 정답이 없다.
(토플러 박사는 왜 꼭 학교교육을 해야 하는지, 일정한 나이가 되면 학교에 가서 다 같이 똑같은 내용을 공부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화제가 교육문제로 바뀌면서 한국의 입시 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토플러 박사는 새벽에 집을 나서서 자정을 넘겨서야 집에 돌아오는 한국의 고등학생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마치 죄수와 같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을 연발했다. 그는 어른들이 일중독에 빠져 장시간 노동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지만, 아이들은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우타: 한국은 고용 평등이나 고위직 진출 면에서 남녀 격차가 극심하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기보다 일을 하려 하고, 출산율도 덩달아 낮아지고 있다. 저출산 문제는 이제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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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플러: 저출산이 왜 나쁜가? 핀란드나 아일랜드, 싱가포르 같은 나라는 인구도 적고 작은 나라이지만 경제적으로 강하다. 규모가 중요하다는 것은 산업시대의 발상이다. 노인이 비생산적이라는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경제 지표에 잡히지 않더라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많다. 나이를 먹어도 일을 하는 게 건강에도 훨씬 좋다. 앞으로는 사람들이 더 오래도록 일할 것이다.

윤미경: 박사께서 쓰신 책을 보면 한국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 같은데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이 미래의 변화하는 세계를 잘 반영하기 때문인가?
토플러: 그렇다. 얼마 전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내 책에서 받은 영감과 아이디어로 IT산업을 발전시키는 효과를 봤다는 내용이었다. 작가로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기쁘다. 한국은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실현시킬 수 있는 실험실과 같은 나라이다.

정신호: 박사께서는 ‘제4의 물결’이 우주산업과 생명학의 결합에서 온다고 지적하셨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점을 대비하고 준비하면 좋을지 말해 달라.

토플러: 이들 공학의 기반은 컴퓨터산업이니만큼 이 분야를 주의 깊게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생물학과 우주산업은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 세대가 후대에 의해 기억되는 것은 이라크전 같은 것이 아니라 아마도 우주로 가서 부를 이루어내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다만 그것이 언제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토플러 박사는 대담을 마친 후 참석자들이 가져온 자신의 저서 ‘부의 미래’에 일일이 서명을 해준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앨빈 토플러는 누구

‘미래쇼크’(1970년), ‘제3의 물결’(1980), ‘권력이동’(1991년) 등 미래 사회를 예측하는 굵직굵직한 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어온 앨빈 토플러 박사는 15년 만에 내놓은 새 책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가 국내에서 초대형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다시 한 번 한국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부의 미래’는 출판인들이 뽑은 2006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고, 네티즌들이 선정한 제4회 올해의 책(인터넷 서점 YES24 주최)에 뽑히기도 했다. 2006년 8월 출간된 이 책은 30만부 정도가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은 부를 창출하는 요인으로 시간·공간·지식을 꼽고 거대한 사회 변화 속에서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팔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그는 1928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1949년 뉴욕대학을 졸업한 후 미 중서부 공업지대에서 용접공으로 일했으며 이후 백악관 담당 정치·노동문제 기자, 코넬대학 초빙교수 등 다양한 경력을 거쳤다.

1959~61년 ‘미래’(未來)지의 부편집자로 활동하였고, 1964년에 쓴 ‘문화의 소비자’를 통해 날카로운 통찰력을 인정받았다. 수질 오염, 지구 온난화, 동물 복제 등을 비롯해 고도정보화사회의 도래를 누구보다도 일찍 예견한 혜안을 가진 미래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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