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청룡사 대웅전 전경.송상호
사정이 이렇다보니 안성엔 유달리 미륵신앙과 불교 사찰이 독보적이다. 시대가 어지럽고 백성들이 고통스러운 만큼 신앙에 의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게다.
특히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의 뒤를 이어 57억 년 후에 세상에 출현하여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로 알려져 있는 존재로서 고난 가운데 있는 안성의 하층민들에게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메시아 신앙, 구세주 신앙'과 같은 신앙세계였던 게다.
그러고 보니 비록 안성의 역사가 '편안한 성'으로 살기엔 역경이 많았지만, 결국엔 편안한 성으로 자리 잡은 것은 다 이런 신앙의 힘이라 하겠다. 고려시대 팔만대장경을 제작해 몽고에 대항한 정신과 유사하다고 할 것이다.
이런 정신들이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말해주듯 안성에는 안성을 대표하는 3대 사찰(석남사, 청룡사, 칠장사) 외에 경수사·도피안사·쌍미륵사 등 산 곳곳에 유서 깊은 사찰들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나 천년을 자랑하는 3대 사찰은 유명한 명산과 호수를 끼고 있다. 칠장사는 칠현산과 용설호수를, 청룡사는 서운산과 청룡호수를, 석남사는 서운산과 마둔호수를.
이런 사찰들을 가보는 것이 사계절이 다 좋겠지만, 특히 겨울인 요즘 더욱 가볼만하다는 거 알고 있는가. 일단 관광객이 많지 않아 그 옛날 산사를 찾았던 조상들의 고요한 심정을 가질 수 있다.
볼 게 많고, 주위에 즐길 게 많은 다른 계절엔 산사 본연의 맛에 충실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일 게다. 만물의 숙성기인 이 겨울에 하얀 눈이라도 내려 있을 산사에는 부처님의 향기가 더욱 느껴질 게 분명하다.
산사 주위에서 앙상하고 초라한 자태로 있는 나무들과 산새들이 사찰에 기대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보면 부처님의 은총이 절로 묻어난다. 바야흐로 관광하고 즐기는 차원이 아닌 순수 산사가 되살아난다. 천년 역사동안 고을 백성들과 함께 동고동락한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질 것이다.
여러모로 힘든 탓에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잦은 요즘이 더욱 산사에 가볼만한 때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