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세계화'가 사회적인 핵심 화두가 되어 있다. 최근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구체적 사안을 중심으로 이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논의 과정을 살펴보면, 세계화에 반대하는 쪽이 논리 측면에서 다소 밀리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족경제나 약자 보호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인류적 보편성을 앞세우는 세계화 찬성론 앞에서는 논리 혹은 명분에서 밀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국경과 민족을 초월해 하나의 세계 경제를 구축하자는 논리를 딱히 부정할 만한 구실을 찾기 힘든 게 사실이다.
@BRI@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세계화를 반대한다고 말하면서도 "세계화를 영구적으로 반대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개방했다가는 우리의 생존권이 위협당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세계화가 분명 잘못된 것 같은데 딱히 뭐라 논박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세계화 추진세력에서 '세계화=인류화'란 이미지를 조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화 추진세력에서 유포하는 '세계화는 인류의 보편적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는 상당히 그럴싸한 명분을 담고 있다.
이러한 점과 관련하여 1월 12일자 <노동신문> 논설을 살펴보기로 한다. 이 신문에서는 '세계화는 서방화·자본주의화'에 불과하다면서 그 근거를 제시하는 논설을 발표하였다. 한국의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에 일정한 참고가 될 수 있는 논설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국제경제질서 수립은 민족의 번영과 발전의 담보'라는 제하의 <노동신문> 논설은 오늘날의 세계경제질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현 국제경제질서는 식민주의 시대의 낡은 질서이며 이것은 정세의 불안정을 조성하는 기본요인의 하나로 되고 있다. 이것을 그대로 두고서는 발전도상나라들이 경제를 발전시킬 수 없으며 제국주의자들의 경제적 예속과 착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 <노동신문>은 세계화 시대 즉 '현 국제경제질서'를 '새로운 질서'가 아닌 '식민주의 시대의 낡은 질서'라고 규정하였다. 다시 말해, 세계화는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낡은 경제질서(세계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경제질서(탈세계화)를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이 논설의 주제다.
그럼, 제국주의 시대와 세계화 시대가 본질적으로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논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현 시기 제국주의자들이 저들의 경제방식이 마치도 세계의 '표본'이고 모든 나라들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부당한 경제적 압력이자 자주권 유린행위이다. 만약 이것이 허용되면 경제분야에서의 불평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며 따라서 제국주의자들은 낡은 국제경제질서에 의거하여 발전도상나라들에 대한 착취와 략탈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자신들의 경제방식을 제3세계에 강요하는 것은 '자주권 유린행위'라고 하였다. 바로 이러한 자주권 억압 측면이 제국주의 시대와 세계화 시대의 공통점이라는 것이 이 논설의 주장이다.
과거 19세기에 서양열강이 아시아·아프리카에 자신들의 경제체제를 '강요'한 것과, 오늘날에 서양 국가들이 제3세계에 자신들의 경제체제를 '강요'하는 것이 모두 다 본질적으로 자주권 침해행위라는 것이다.
<노동신문>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19세기나 지금이나 서양이 강요하는 것은 '동서양 공통의 경제체제'가 아니라 '서양의 경제체제'라는 점에서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이 이 논설이 던지는 시사점이다. 다시 말해, 서양이 말하는 '인류 보편적 표본'이라는 것은 실은 '서양의 일방적 표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부분에서 위 논설은 다음과 같이 '세계화의 목적은 서방화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하였다.
"오늘 제국주의자들이 들고 나오는 ‘세계화’는 발전도상나라들의 번영·발전을 위한 '처방'이 아니라 그들의 목에 올가미를 거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지배전략이다. ‘세계화’는 본질에 있어서 세계를 서방화, 자본주의화하기 위한것이다."
그럼, 이러한 세계화에 맞서 제3세계가 내놓을 수 있는 대응 카드는 무엇인가? 이에 관해 <노동신문> 논설이 나름대로 제시한 방안은 '남남협조'다.
"남남협조는 새로운 국제경제질서 수립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도의 하나이다. 남남협조는 발전도상나라들이 자주권 존중, 집단적 자력갱생, 유무상통의 원칙에서 경제무역분야에서 호상 지지·협력하는것이다."
<노동신문> 논설을 정리하면, 세계화는 '제2의 서양화' 다시 말해 '제2의 서세동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19세기 서양화와 21세기 세계화가 모두 다 제3세계에 대한 자주권 침탈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노동신문> 논설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진정한 세계화는 강대국과 약소국 모두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전제 하에서 인류 전체의 행복을 목표로 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만약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할 수 없고 어느 한쪽이 예속적 지위로 전락해야 한다면, 그것은 세계화 사회가 아니라 노예제 사회나 다름없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 등이 추구하는 세계화는 약소국의 자주권을 억압하는 전제 하에서 '세계의 균일화'를 강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인류의 보편적 지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각 참여자의 '개성'이 존중되지 않는 통합은 실은 통합이 아니라 점령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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