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족' 아들, 어찌하오리까?

서른살 어린애 키우는 부모는 '할말 많습니다"

등록 2007.01.14 15:02수정 2007.07.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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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창남

아들은 차가 없다. 아직 미혼이다. 직장은 있으나 절반은 캥거루족이다. 월급을 타지만 집에다 생활비를 하라고 들고 오는 돈은 없다. 월급 명세를 보여준 적이 없다. 짐작으로 급여가 그리 신통치 않은가 보다라고 생각한다.

다른 집 아들처럼 나가서 살라고 하면 "지금 조선시대예요? 독립하게요"하며 농담을 하나 진심이다. 부모를 떠나 제 나름 생활을 하기 위해 쪽방 독립이라도 할 생각이 없다.


제 방 있지 부모 간섭은커녕 부모가 제 눈치 보지, 방에는 침대, 컴퓨터, 손 못쓰고 발 못 쓰는 제 어머니가 끙끙대면서도 단정하게 다려 놓은 와이셔츠가 걸려있는 옷장 있지, 바로 방 앞에는 화장실 있지, 배고플 때 열면 언제든 먹을 것 있는 냉장고 있지.

이런 공짜 호텔이 어디 있기나 하나 .

부모가 이런 생계를 유지하려고 집을 담보로 은행 빚을 내 생활하는데도 부모가 제 피를 뽑아 먹는 생활을 하거나 말거나 전혀 관심이 없다.

책임 안 지려는 나이 서른의 '어린아이'

농담 비슷하게 나가라 해도 캥거루 새끼처럼 부모에게 얹혀있다. 다 큰 자식이니 번거롭다. 부모 자식이라 하나 내리 사랑도 지치고 피곤한 일이다.


쫓아내려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는 일에 간섭하고, 거의 매일 새벽 한 두시에 오는 직장 욕하면서 쥐꼬리 같은 봉급에 만족 말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라 하고, 여자를 사귀면 번번이 차이니 사귀는 여자가 번번하기나 하냐 하며 온갖 면박을 한 이틀만 연속으로 하면 제가 이 집안을 못 견뎌 나갈 것이다.

허나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겠지만 가슴에 열 불나도 입 밖 내려면 조심스럽다. 가슴의 열불 대신 좋은 일만 생각하려고 머리에 쥐가 나도록 짜낸다. 이런 것들이다.


'우리 아들은 요즘 힘든 세상에 직장을 다니니 고맙다.
직장에서 매일 늦어도 젊은 날 하는 이런 고생이 나중에 도움이 되니 다행이 아니랴.
여자에게 당하고 와도 연애 수업을 총각 때 많이 해야 한다. 네 연분은 기다리고 있으나 아직 때가 안 된 거지. 카드를 마구 써서 빚더미를 부모에게 안 넘기니 고맙다.'

좋은 말을 골라서 하려고 애를 쓴다. 그렇다고 우리가 행복한가. 사실 행복하지 않다. 하늘도 늘 맑음이 아니요, 맑음, 흐림, 비로 흘러가는 것이 그 조화다. 그런데도 내 자식은 부모가 늘 맑음이기를 바란다.

아들이 내 차를 탐내면 나는 아들에게 차를 쓰게 한다. 우리 부부의 일정은 아들이 차를 가지고 가면 뒤로 밀린다. 이거야말로 적반하장이며 객이 와서 주인행세를 하는 일이다. 아들의 출장지는 인천, 대전, 함안, 부산 등 먼 거리에 있는 곳이다. 차를 타고 나가는 시간부터 우리 부부는 늘 가슴이 탄다.

지난번에 아들이 고속도로에서 사고를 내 한참을 더 탈 수 있는 차를 폐차한 일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없는 살림에 차를 뽑아서 할부로 타고 있었는데 아들은 또 제 차처럼 필요할 때마다 탄다.

"거리가 멀어요."
"여기 갔다가 저기 가야 해요."

못된 것, 부모에게 늘 기댈 생각만

늘 적당한 핑계를 대고 차를 가지고 간다. 다니는 거야 상관없으나 급하게 차를 모니 걱정이고 정비해서 탈 줄도 모르고 그냥 올라타서 구르면 가는 줄 아니 걱정이다. 지난 번 사고 때 다행히 전혀 다치지 않아 고마웠으나 그런 행운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들은 전날 함안에 갔다가 아침에 와서 잠깐 눈을 붙이고 회사에 또 나갔다. 몸도 피곤하니 버스를 타고 회사에 가면 좀 좋을까. 제 말로는 들고 갈 짐이 많다니 차를 쓰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대신 제사가 있는 처남댁에 갈 시간을 요량해 세시까지 들어오라고 아내는 아들에게 단단히 말을 했다.

그 세시가 지나 세시 반이 되도 아들은 오지 않는다. 아들에게 관대하고 잘 참는 아내가 화를 낸다. 전화를 걸어서 당장 오라고 야단을 쳤다. 그런 지 10여 분 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식들은 늘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무슨 연락이 오면 일이 나서야 온다.

차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가슴이 철렁하고 정신이 아득하다. 강남 사거리란다. 몸은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차는? 많이 부서졌다고 한다.

사고를 내놓고는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나이 서른 어린아이와 통화를 하면서 나는 욕을 속으로 삭이며 겉으로 이리 하라 저리 하라 말한다. 보험사에 연락하고, 차가 심하게 깨졌다니 차를 구입했던 대리점에 정비 공장을 알아보고, 다시 아들에게 전화 해주고. 아들은 결국 사고 지점 가까운 정비공장에 차를 넣었다고 전화를 해왔다.

"차 안에서 장애인 주차증, 차량등록증 등 서류를 다 챙겨와라."

전화를 두 번 걸어 두 번씩 강조했다. 그러면 아들이 집에 왔을 때 챙겨왔을까? 물론 챙겨왔어야 했지만 역시 빈손이었다.

차 사고만 두 번째 그러고도 나 어떡해

사고 경위를 들었다. 좁은 길에서 나오다 빨리 가려고 안전지대를 밟고 가는 참에 다른 방향에서 진입하던 봉고 트럭이 운전석 쪽을 부딪치며 나갔다는 것이다. 쌍방 과실이라고 한다. 차 수리 견적이 400만 원이 나왔다고 한다. 수리 기일은 3주일이나 걸린다고 한다.

어디 아픈데 없다는 말을 듣고 난 뒤 난 할 말을 꺼냈다.

"이제 차를 어떻게 할 거냐?"
"정신이 없어서 생각을 못해봤어요."
"내가 말해주마. 네가 낸 사고이니 네가 모든 처리를 해야 한다. 네 비용으로 차를 처리하고 원래 있던 위치로 갖다 놓아라."

녀석도 힘들지만 부모 마음이 부처라도 이런 말을 해야 한다. 나는 당연한 말을 했지만 녀석은 서운할 것이다.

지난 번 사고 때 나는 여기 저기 뛰어 다녔다. 그런데 당시 녀석이 한 일이라고는 몸 성히 병원 입원실에서 누워 만화를 보면서 빈둥빈둥 대거나 제 여자 친구에게 '전화질'하는 일이 다였다. 이번에는 내가 말하기 전에 제 입으로 할 말을 내가 한 것뿐이다.

원래 이번에 사고 난 차도 5년 쯤 뒤에 아들에게 줄 참이었다. 새것으로 주려했으나 제가 깡통차로 만들었으니 깡통으로 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제 아버지는 차가 있으면서도 장거리 출장 다닐 때 늘 일반 교통을 이용했는데 그런 보통 시민의 정신을 이어받지 못한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편으로 따끔하게 혼내지 못한 내 약한 마음도 문제다.

어리석은 부모의 세월은 끝나지 않았다

아내는 아들에게 빨리 오라고 말한 자신의 입을 손으로 쥐어뜯고 있다. 아들의 잘못보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탓한다. 아내가 말한다.

"애가 놀랐으니 우황청심환이라도 사서 먹여야겠지요?"

어리석은 아버지는 그 말 따라 찬바람 속 밖으로 약국을 찾아 나선다. 어리석은 부모의 세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죽은 뒤 아들이 힘들다고 나를 부른다 해서 내가 저승에서 달려오랴? 내가 힘들 때 아버지 하고 부를 때 내 아버지는 오시지 않았다. 이제야 아버지께서 내게 달려오시지 않은 이유를 알겠다.
#캥거루족 #책임 #서른살 어린애 #부모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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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본부 iso 심사원으로 오마이뉴스 창간 시 부터 글을 써왔다. 모아진 글로 "어머니,제가 당신을 죽였습니다."라는 수필집을 냈고, 혼불 최명희 찾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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