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에 선 연인이 굴리는 것은

[소설 속 강원도 14] 김남일의 <사북장 여관>

등록 2007.01.15 17:04수정 2007.01.16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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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북읍 전경

사북읍 전경 ⓒ 최삼경

새로이 길을 넓히느라 복닥거리는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영월에서 정선을 거쳐 태백, 삼척으로 놓인 길을 따라갈 때마다 내륙의 깊숙이 숨겨놓은 처녀지를 찾아가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대명천지에 어디 가당키나 한 소회일는지 모르나 몇 번째고 매양 이런 기시감이 드는 것은 그곳을 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별어곡, 자미원, 증산 등등의 다소 이국적인 지명 탓인지도 모를 일이겠다.


이 길은 혼자거나 아니면 제 몸같이 친한 동료 한둘쯤이 가는 여정이 딱 안성맞춤이겠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제 몸보다 사랑하는 정원이란 여인과 함께였다. 일찍 찾아 온 어둠속에 희끄므레 눈발이 날리고, 캄캄한 길 위에서 그들은 예전의 젊어 펄펄 끓었지만 정해 놓은 기착지가 없었던 이십대 청춘의 유적지 같던 황량함이나, 깎아 지른 히말라야의 툭체쯤으로 가는 길을 떠올리기도 하였다.

살아 눈부시던 열정은 아스팔트 위에서 짧고 거칠게 지나 이제는 소위 386세대라 규정되어 박제가 돼버렸고, 사는 일은 하루하루 다가오는 수모 속에서 견디는 일, 그것이 지금 그들 투사에게 남은 길이었다.

‘세상과의 불화’라는 공통의 병리적 증상을 겪고 있는 그들에게 세상과의 타협이란 있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수모이기도 하였다. 그것은 억지로 결심해 스스로 겪는 어떤 열병이 아니라 음지 속에 사는 이들의 본능 같은 것이겠다.

산이고, 물이고, 사람이고 심지어 그 속의 생활까지 온통 검게 물들었던 사북은 이제 십 몇 층씩의 모텔건물들이 들어서서 밤이면 제법 도심의 야경을 흉내 내는 풍광을 내보이고 있었다. 거리에는 유난히 곳곳에 늘어선 전당포가 눈에 띠었다. 그 옆으론 몇 달째 저당 잡힌 차들이 묵묵히 어둠속에 젖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빛과 어둠이 살풍경하게 공존하는 느낌이다.

태백산을 가기위해 나섰던 주인공들은 어둠과 폭설로 사북장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한때는 최신의 설비를 갖췄을 이곳도 지나는 시류를 거스르지 못한 때문인지 그나마 지금은 외지 일을 나온 인부들의 장기숙박으로 운영해나가는 눈치였다.


한때는 상한가를 치던 386세대에의 환호도 어설픈 정국운영 등으로 지탄을 받고 있으니, 어쩐지 오래된 건물은 상처 입은 짐승들에게 오히려 포근한 둥지를 마련해줄 터이다.

"분명하게 보이던 것들이 실은 얼마나 허망하게 우리를 배반하는가. 삶은 어차피 그런 기억을 위해 지속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해발 600m 이상의 산간협곡에 위치하여 한때는 산업화의 성장 동력으로 추동하다 지금은 고원관광 휴양도시로 변모해가는 사북의 생동감도 이들에게 에너지를 전하지 못한 것일까. 사북의 한 귀퉁이에 정박한 연인은 깊은 어둠속에 답답할 뿐이다.

a 사북장 여관 전경

사북장 여관 전경 ⓒ 최삼경

굴속 같은 지하셋방에서 그악하게 지내온 시간들, 지금까지 한번도 양지 속에서 발 뻗고 살아보지 못한 자들의 먹먹한 어둠, 발 빠른 행보로 양지쪽으로 수직상승하는 옛 동지의 변신...

효율과 경쟁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회는 그만큼의 소외와 불균형을 파생시킨다. 그것은 마치 건물이 높을수록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견고한 자신들의 성 속에 웅크린 불변의 법칙들, 그들의 깜냥으로 보기에 지구는 어김없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돌고 있을 뿐이니 그저 밀려난 주변자들은 또 저희들끼리 털이나 고르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둘의 사랑에 충실하고자 하는 그들의 생각은 침묵 속에 집요하게 1500조각 퍼즐만을 맞추는 아내와 겉도는 아들에 대한 죄의식으로 범벅이 되고 만다. 간단하게는 불륜으로 요약되어질 이 연인의 길에는 환한 출구도, 확실한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어둠속의 터널처럼 아가리를 벌린 시계(視界)제로의 시간들이 놓여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지금 온 나라가 온통 불륜 공화국이다. 뉴스에서,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심지어 ‘들키지 않고 바람 피는 법’이라는 책까지 버젓이 출판되는 요즘이다. 사회 전체가 오로지 이쁜 외모와 착한 몸매가 부추겨지고 있다. 성형사실을 밝히는 것이 당당한 미덕으로 취급되고 있다. 욕망과 불륜이 서로 권해지는 세상에 소설속의 상처받은 짐승처럼 앓는 연인은 말하자면 쓸데없는 시대착오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울러 든 생각 하나는 소위 말하는 주변부로 밀린 사람들은 단순히 경제적인 분야에서의 위축만이 아닌 문화적, 정서적 분야에서도 움츠리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가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사랑도 계급의 문제로 변질돼 가고 있다는 점’을 밝혀보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덧붙이는 글 | '강원도 세상' 06년 12월 21일에 게재했던 내용입니다.

덧붙이는 글 '강원도 세상' 06년 12월 21일에 게재했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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