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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내의 모습은 확실히 특이했다. 몸과 머리가 아주 불균형한 모습이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함과 함께 반드시 기억하게 하는 특이함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못생겼다거나 괴이한 모습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동그란 얼굴에 유독 짙고 굵은 눈썹을 가지고 있었으며 눈도 동그랗고 코도 반듯하여 이목구비 하나씩으로만 본다면 매우 잘생긴 사람이었다. 하지만 얼굴의 이목구비가 왠지 불균형한 느낌이 들었고, 머리가 여자보다도 더 작은 편인데 반해 몸집은 오히려 다른 사내들보다 훨씬 큰 편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통 하나 정도는 큰 키와 살이 찌지는 않았지만 탄탄하고 균형 있는 몸매를 가지고 있어 매우 강인하게 보이는데도 그의 작은 머리로 인하여 어찌 보면 매우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BRI@"보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연무장 아래서 중의가 올라오자 사내는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췄다.
"어…, 엽공(葉公)이 아니신가? 노부를 기다리고 계셨던 겐가?"
뜻밖이라는 듯 중의가 농처럼 말을 던지자 사내는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별 말씀을…. 제가 어찌 어르신께 공(公)이란 칭호를 받겠습니까? 그저 전처럼 명(明)이라 불러 주십시오."
사내의 음성은 매우 듣기 좋은 저음이었다. 뱃속에서 올라오는 묵직한 음성이라 그런지 목소리만으로도 아랫사람들을 주눅이 들게 하는 위엄이 있었다. 바로 이 사내가 호조수(虎爪手) 곽정흠(郭晸歆)과 함께 운중보의 경비를 책임지는 삼수검(三手劍) 엽락명이었다.
"어찌 그럴 수 있겠나? 이제 자네도 마흔 중반을 넘어섰지 않은가?"
중의가 가까이 다가와 엽락명 앞에 서자 그렇지 않아도 큰 키의 엽락명에 비해 작은 키의 중의는 어린애처럼 보였다. 고목나무에 매미가 붙었다는 표현은 이럴 때 적당한 것일까? 여하튼 어깨에도 못 미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나이를 먹은들 어르신의 소두아(小頭兒) 락명이 어디를 가겠습니까?"
"허허…, 옛날에 조금 놀렸다고 이제는 이 늙은이를 은근히 탓하기까지 하는구먼."
"어찌 감히…."
엽락명은 여전히 쾌활한 웃음을 터트리며 공손한 자세를 유지했다.
"저녁을 같이 하기로 한 다른 손님이 있는가?"
"보주께서는 오랜만에 친구 분들과 오붓한 시간을 가지시고 싶은 모양입니다. 예정대로라면 화산파에서 오신 분들이나 삼합회의 궁회주를 불렀을 터인데 모두 마다하고 성곤어른과 같이 어르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만큼 마음이 편치 않다는 의미일 게다. 중의 역시 지금은 다른 이들을 만나고 싶지 않은 기분은 매한가지였다.
"용추의 상세가 의외로 심각해 시간이 오래 걸렸군."
"첩인장에 정통으로 맞았다면 살아있는 것이 다행입니다."
"첩인장이…."
중의는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이미 상만천 쪽에서 첩인장이라 공표를 한 것과 마찬가지 상황에서 일일이 해명할 필요가 없었다. 더군다나 첩인장이 아니라고 아직은 알릴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중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는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엽락명의 전음이 중의의 고막을 때렸다.
'미심쩍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중의는 내색을 하지 않고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삼합회의 궁회주도 보에 들어왔다고…?"
"그렇습니다. 오늘 오후에 들어오셨습니다. 특별히 들어오는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한다며 부탁해 보 내에서도 몇 분을 제외하고는 알지 못했습니다. 마중 나간 사람도 궁수유 소저뿐이었습니다."
'어제 나에게 전한 내용 외에 감지된 것인가?'
중의가 엽락명의 대답을 들으며 전음을 날렸다. 중의는 오늘 운중보로 들어왔다. 헌데 어제도 엽락명이 중의에게 연락을 했던 것일까? 두 사람은 남들이 모르는 특별한 관계에 있는 것일까?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보주의 셋째 모가두가 뭔 일을 꾸미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항상 술에 취해 아무 곳에나 처박혀 있기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보 내 곳곳을 누비고 다니고 있습니다. 간혹 종적을 발견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모가두라…? 그 외에는?'
'보고 드린 데로 창월 역시 문제로 보입니다. 은밀히 조사한 결과 창월은 열흘 전 보를 아무도 몰래 빠져나갔다 나흘 전 돌아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참…, 자네… 교대시간 아닌가? 노부 때문에 쉬지도 못하는구먼."
운중각이 보이자 중의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돌렸다.
"하하…, 오늘부터는 교대고 뭐고 없습니다. 특히 오늘부터는 야간에 전 경비인원을 총동원하기로 했습니다. 보주님의 회갑연까지는 낮에 잠시 교대로 눈을 붙이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자네들 고생이 말이 아니구먼."
"그렇지 않아도 연무원(鍊武園)에 부탁을 해놓아 교두들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수학하고 있는 문하생들까지 하루 열댓 명 정도 충원이 되니 어젯밤 같은 사건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갑자기 왜 괴이쩍은 불상사가 일어나는지… 원…."
중의는 다시 운중각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십여 장 남짓.
'창월이 무슨 일 때문에 나갔다 왔는지 알아보게. 성곤이 와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일로 나갈 녀석은 아니야…. 성곤이 뭔 일을 시켰으면 모를까….'
'알겠습니다.'
"겨우 사흘 남았을 뿐입니다. 사흘 정도야 날밤을 새도 견딜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백도 그 녀석이야…. 너무 애매하거든…. 오늘 밤 자네는 특히 창월과 백도…, 그리고 장문위를 신경 써 지켜보도록 해…!'
'걱정 마십시오.'
엽락명은 운중각이 가까워지자 걸음을 멈추더니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편안히 쉬십시오. 소두아는 물러가겠습니다."
"허…. 끝까지 이 늙은이를 놀리는구먼…."
중의는 잠시 고개를 돌려 끄떡이고는 손을 내저었다. 어서 가보라는 뜻이다. 엽락명이 뒷걸음질 쳐 물러가자 중의는 어둠이 내리고 있는 운중각을 보며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지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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