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양산 시대, 합리적 소비자 되는 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또 하나의 접근

등록 2007.01.18 11:50수정 2007.01.1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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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한미FTA 저지를 위한 대규모 집회가 열린 2006년 7월 12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광화문 일민미술관 옥상을 기습적으로 점거하고 '비정규직 철폐' 구호를 외치는 모습(자료사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한미FTA 저지를 위한 대규모 집회가 열린 2006년 7월 12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광화문 일민미술관 옥상을 기습적으로 점거하고 '비정규직 철폐' 구호를 외치는 모습(자료사진).오마이뉴스 남소연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정부는 노동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비정규직에 대한 정부 대책은 비정규직의 직업능력 향상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비합리적인 차별을 방지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기업 역시 비정규직 사용이 노무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측면에만 주목하고 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노력하나, 그 역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얽혀 진지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은 참여 정부가 내세운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을 불신하고, 다음 대통령 선거를 계기 삼아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려고 한다.

언론에서는 이러한 여론을 '산업화세력 지지'라고 단순하게 부르나, 실은 '신자유주의 반대'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따름이다.


비정규직 문제 해법, 노사정 모두 제자리걸음

그렇다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그런데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먼저 비정규직이 확산되는 원인을 고민해야 한다. 거칠게 얘기하면,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노무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기업이 정규직을 고용해 1000원의 상품을 만들고 있었다면, 이 기업이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할 경우 절반의 노무비용만으로 같은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듯 손쉽게 비용을 절감하고 이윤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어떤 바보 같은 기업이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대책 역시 이러한 원인을 없애는 데 착안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쉽지 않은 과제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합리적인 소비자는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용을 얻으려 하는데, 그 소비자가 상품의 명목상 가액(價額)만을 기준 삼아 상품을 선택한다면, 비정규직이 감소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규직을 고용해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합리적인 소비자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언뜻 보기에는 합리적인 소비처럼 보이는 이 행동들이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는 비합리적인 행동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정규직이 증가하면 사회양극화는 더 심화되고, 이는 결국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에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합리적인 소비자는 슈퍼마켓에서 싼 가격의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었지만, 세금과 같은 다른 영역에서는 종전보다 더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하는 처지에 빠지게 된다.

비정규직 늘어나면, 물건은 싸져도 사회적 비용은 오히려 증가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영역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물건을 구매할 때, 그 물건을 생산하는 기업이 어떤 노동자를 고용하는지 알아보려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윤의 일부를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기업을 칭찬하고, 그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만약 그 기업이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사용해 그 이윤을 만들어내고선 그 중 일부를 기부한 것이라면, 이 기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평균 이하의 생활을 요구하는 기업에 대해, 단지 이윤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했다는 점만으로 이들을 좋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기업의 사회 공헌도는 그 기업에 속한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수준에 좌우돼야 함이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대규모 할인매장이 파트타이머나 계약직 등에게 낮은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면, 단지 그곳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할인매장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가격에 큰 차이가 없다면, 차라리 동네의 슈퍼마켓에 가서 소량의 물품을 사서 적게 소비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소비 활동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부 역시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소비 활동을 해야 한다. 정부 물품에 대한 입찰과 관련해 입찰 기업의 비정규직 사용 비율이나, 노동조건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 정도를 조사하고 이를 점수화해 구매 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것이 구매 결정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제한된 범위 내에서라도, 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기업의 불이익을 줄이는 기능은 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간접적으로 정부가 부담하는 사회보장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낳을 수 있을 것이다.

합리적인 소비로 비정규직 비율 높은 기업에 불이익 줘야

노동계나 사회단체 역시, 비정규직 확산을 막고 그 차별을 줄이는 일을 지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나 정부가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일도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각 업종별로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 비율이 높은 기업과 낮은 기업,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 간 근로조건 차별 정도가 심한 기업의 명단을 공개해 시민들이 이런 정보에 터 잡아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올바른 기업을 보호하고 이러한 기업들이 확산되도록 격려할 수 있다. 시민들이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고비용을 감수하면서도 정규직을 고용하는 기업은 앞으로도 기업들 사이에서 바보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찾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방법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최선의 정책이 없다고 포기하기보다는 가능한 방안을 찾아 계속 추진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도재형 교수는 인권연대 운영위원과 강원대 법대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도재형 교수는 인권연대 운영위원과 강원대 법대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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