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립령 길목을 가로막다

제천 한수면 '덕주산성'을 다녀와서

등록 2007.01.18 21:07수정 2007.01.1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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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산성 남문 ⓒ 이용진

@BRI@수안보에서 잠이 깼다. 버스가 수안보를 지나 지릅재로 접어들자 월악산은 서서히 장중한 산세를 보여주었다. 능선과 계곡이 번갈아가며 나타났다가 뒤로 밀려나며 울창한 소나무숲을 병풍처럼 드리웠다. '송계(松溪)'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미륵리를 지나 골 안쪽을 빠져나간다 싶을 때, 송계 덕주사 입구에서 버스를 내린다.

덕주산성(德周山城)은 월악산을 중심으로 축성된 산성으로, 현재 성벽은 거의 사라지고 남문과 동문, 북문, 그리고 내성 성문지 부근만이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4중겹의 방어축을 구축한 덕주산성은 그 독특함이 관심을 끈다. 일반적인 성곽과는 달리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성벽을 축조하고 계곡을 가로막은 차단성의 구조를 지닌다.

남쪽과 북쪽에 방어선을 형성하고, 다시 동쪽으로 물러나 방어선을 구축하는 형태로, 취재를 가기 전까지도 그 축성 형태가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남문을 살펴보고, 동문을 지나 내성 문지를 거쳐 월악산 영봉 가까이 마애불까지 갔다가 다시 북문을 취재하면서 비로소 선명하게 구축도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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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산성 남문쪽 성벽 ⓒ 이용진

소설가 박태순 선생은 이 일대를 두고 '배산임수'의 전형이라고 하며, "하늘재와 문경새재의 연봉들로 이루어지는 '배후세력'의 완강함과는 대조적으로 월악산을 끼어 송계계곡으로 빠지면서 제천군 한수면의 남한강 호반으로 탁 트여나가는 전망은 '게릴라 아지트'로서도 최적격지"라고 보았다.

그런 때문일까, 문득 월악산을 무대로 시작하는 고 권운상씨의 장편소설 <녹슬은 해방구>가 생각났다.

4중겹으로 구축된 차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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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산성 동문 ⓒ 이용진

버스에서 내려 먼저 남문을 들렀다. 남문은 송계팔경 가운데 하나인 망소대와 나란히 한 채 도로에서 서쪽으로 30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 가파른 자연 능선을 그대로 이용하여 급격하게 계곡으로 흘러내린 성벽은 계곡 아래에서 성문을 만들고, 계곡의 물줄기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맥을 뻗어간다. 홍예에 월악루(月岳樓) 문루를 올렸다.

성문은 남향을 하고 있어 남쪽에서 오는 적을 방어하는 목적이다. 반대로 북문은 성문이 북쪽을 향해 있어 북쪽에서 진입해오는 적을 방어하게 되어 있다. 동문은 성문이 서쪽을 향해 있어 서쪽으로부터 오는 적을 방어한다.

그러니까 문경 쪽에서 넘어온 적은 남문에서 막고, 한강과 충주 쪽에서 침입해오는 적은 북문에서 막는다. 남문과 북문이 모두 무너지면 동문 안쪽으로 물러나 방어하고, 동문까지 무너지는 경우에는 최후로 내성까지 물러날 수 있는 구조로 축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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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산성 동문 문루에서 바라본 성벽 ⓒ 이용진

안내판 설명에 의하면 덕주산성은 "월악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외곽을 여러 겹으로 둘러쌓은 석축산성이다. 상덕주사의 외곽을 둘러싼 내성, 상·하덕주사를 감싼 중성(동문 주변), 월천의 남쪽을 막아 쌓은 남문과 북쪽의 북문을 이루는 관문형식의 외곽성 등 네 겹으로 이루어진 매우 큰 규모의 석성"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처음 축조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축조기법은 큰 돌과 작은 돌을 혼합하여 쌓아올렸으며, 하늘재에서 월천을 따라 남한강으로 연결되는 교통로를 방어하기 위하여 축조된 산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전설 서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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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산성 동문 홍예문에서 계곡 아래쪽을 바라보다. ⓒ 이용진

남문에서 발걸음을 덕주사 쪽으로 돌려 동문과 내성을 살펴보기로 하였다. 덕주사 바로 아래에 위치한 동문은 내성의 정문 역할을 했으며, 산에 바싹 붙여 세웠다. 홍예만 남아있던 것을 복원하고 성루를 올려 덕주루(德周樓)라고 명명하였다. 자연암반을 이용한 곳은 성벽의 기초가 밀려나지 않도록 쐐기를 박아가며 쌓았다.

덕주사 경내를 둘러보고 월악산 영봉 등산로로 들어선다. 겨울산은 적막하다. 인적은 없고 바람만이 마른 나뭇가지를 스치며 온갖 소리를 만들어낸다. 휘파람소리를 내다가 어느 순간 말 달리는 소리, 창칼 부딪는 소리를 몰아쳐 가다가 다시 파도소리를 변하는 산중의 바람소리는 그 자체로 풍경이다. 그 풍경은 오름과 내림이 다르고, 바람의 강약에 따라 다르고, 사철이 다르다. 겨울산은 바람소리를 빼고는 적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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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산성 내성 문지인 출입로 바닥에 돌쩌귀 구멍이 파인 지도리돌이 지금도 남아있다. ⓒ 이용진

덕주사 경내를 나오자 월악산 영봉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등산로로 들어선다. 이 길을 따라 30여분을 가면 마애불 못 미처 성벽을 만난다. 상덕주사의 외곽을 둘러싼 내성의 성문지와 성벽이다. 등산로 통로로 이용되는 곳이 성문으로, 출입로 바닥에 돌쩌귀 구멍이 파인 지도리돌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곳에서는 성문 좌우의 복원한 성벽보다는 계곡 아래쪽 물이 흐르는 곳에 비교적 성벽 원형이 잘 남아 있는데, 이곳을 주목해서 보면 좋겠다. 자연지형을 이용한 성벽은 계곡 아래에서 성 안쪽으로 'ㄷ'자 형태로 들어갔다가 나와 요(凹)자 모양의 성벽을 이루고 있다. 그 성벽 위를 타고 물이 흘러내리게 되어 있다. 내성은 마애불과 절터가 남아있는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쌓았는데, 월악산 영봉으로 가는 덕주골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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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산성 내성의 아래쪽은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요(凹)자 모양의 성벽을 이루고 있다. ⓒ 이용진

내성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마애불을 만난다. 높이 13미터의 마애여래상(보물 제406호) 입상으로, 얼굴 부분은 양각하고 신체는 선으로만 처리하였는데, 머리가 크고 비만하게 처리된 양식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광배는 보이지 않고, 어깨 위쪽에 사각형 구멍이 나있는 것으로 보아 목조전각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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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사 마애불(보물 제406호) ⓒ 이용진

이 마애불은 미륵사지의 석불 쪽을 바라보는 방향에 새겨져 있는데, 마의태자(麻衣太子)의 누이동생 덕주공주(德周公主)의 자화상이라는 전설이 있다. 덕주산성은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와 관련된 전설을 빼놓을 수 없다. 덕주산성 일대를 '신라 부흥운동 진지 구축설'로 내세우는데, 미륵사 터에는 마의태자가, 덕주사에는 덕주공주가 웅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애불에서 발걸음을 돌려 왔던 길로 하산하여 차도까지 내려온 다음, 도로를 따라 40분을 걸어 북문에 이르렀다. 북문은 도로 옆 송계리 새터마을 민가 사이에 있었다. 홍예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고 '북정문(北正門)' 문루를 올렸다. 관리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나 민가와 붙어있어 주민의 생활공간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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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산성 북문 ⓒ 이용진

문화재청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북문은 "당초 계곡을 막았을 차단성의 성벽과 수구는 흔적이 없어졌고, 내외홍예를 갖춘 성문이나 초루와 여장(女墻) 및 대부분의 석재(石材)가 없어진 상태이다. 북문의 홍예 마룻돌에는 태극모양이 조각되어 있어 주목된다"고 한다.

덕주산성 가는 길

승용차를 이용하여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 중앙고속도로를 이용, 남제천IC에서 청풍 방면 82번 지방도로를 타고 가다가 36국도로 들어선다. 중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증평·음성IC에서 충주를 거쳐 수안보에서 단양 방면 36번 국도를 이용할 수도 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하루 여덟 번 있는 송계(월악산)행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3시간 소요. / 이용진
송계리 버스종점에 도착하니 날이 어두워졌다. 김치찌개를 시켜 먹고 서울행 버스를 기다린다. 기다림은 때로 지킴의 의미일 때도 있다. 덕주산성에 서린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전설은 새로운 세상의 도래와 복귀에 대한 기다림일 것이다.

지킴으로서의 성을 쌓는 일도 기다림을 실현시키기 위한 의미가 되기도 하리라. 설사 그것이 신라의 멸망시기와 성의 축성년대가 시기적으로 서로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다림에 대한 간절함의 투영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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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주산성 북문 홍예 마룻돌의 태극 문양 ⓒ 이용진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 7일에 다녀온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토지공사 사외보 <땅이야기>에도 실립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1월 7일에 다녀온 기록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토지공사 사외보 <땅이야기>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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