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성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은 다른 친구들과 달리 회를 이해했다는 점이었다. 물론 혼자만의 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회주는 아니었지만 세 명의 회주와 매우 가까워졌고, 저절로 회의 일에도 깊숙이 간여하게 되었다.
"혈간이나 운중이 그랬듯 아직까지 자네 역시 회에 대한 실망감을 버리지 못했군."
"우리를 키워준 회의 은혜는 구룡이 사라짐으로 모두 갚았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네. 그럼에도 회에서는 철저하게 우리를 이용했지. 철담이나 자네로 만족하지 못하고 말이야…."
"그러기 위해 우리를 키웠으니까…."
@BRI@""빌어먹을…, 그래… 어차피 이제 다 지난 일이지. 그건 그렇고 운중에게 자식이 있을 것 같나?"
"가능성이 매우 높네. 나이는 대략 스물다섯 정도겠지. 어차피 누군지 곧 밝혀낼 것이네."
어느 정도 확신에 찬 중의의 대답이었다. 이미 조사가 막바지 단계임을 의미했다. 성곤이 갑자기 목소리를 가라앉히며 말했다.
"밝혀내면…, 또 죽일 셈인가? 우리 동정오우의 유일한 혈육을…?"
"모르지…, 그것은 내 소관이 아니네."
성곤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쳤다. 사람이란 참 이상하다. 만족을 모른다. 가진 것을 지키고 더 얻기 위해 남의 불행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성곤은 탄식을 불어냈다.
"자네가 회의 일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은 인정하네. 만보적은 물론 추산관 태감하고도 각별한 사이인 것도 분명하지."
북경의 황실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인물이 중의다. 황제라도 알현하고 싶을 때는 만나볼 수 있는 중의다. 성곤이 설득하듯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친구네. 우리는 우리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누군지 기억할 수 없는 어린 나이부터 지금까지 같이 지내왔네. 서로 다른 무공이었지만 무공 역시 같이 수학했고, 무수한 난관을 겪으며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겼네. 그렇게 육십년을 보내왔지. 이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남았을까?"
"………!"
"철담이 죽고 혈간이 죽었네. 이제 남은 사람은 우리 셋뿐이지. 만약 자네 말대로 운중 그에게 자식이 있다면 이번에는 안 되네. 내가 살아있는 한 얼굴도 한 번 보지 못한 그 아이에게 다시 칼을 꼽는 짓은 용서를 못하네. 만약 그런 짓을 하려는 자가 있다면 내 분명히 그 자의 머리통을 부숴버리겠네."
너무나 단호한 말이었다. 이건 타협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였다. 성곤은 단순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다. 그저 친구들이 결정하면 그대로 따랐다. 아마 친구가 사지(死地)로 뛰어들라고 결정하면 반드시 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간혹 자신이 옳다고 결정하면 반드시 그렇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 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할 사람이었다.
"너무 감정에 치우쳐…."
중의가 달래듯 입을 열자 성곤의 눈에서 노기가 쏘아졌다. 그는 본래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지만 정말 화가 난 것 같았다. 말을 자르며 성곤이 노기에 찬 음성을 발했다.
"나를 설득할 생각을 하지 말게! 지금까지 만으로도 충분해. 이 일은 내가 결정했네. 이제는 자네도 한번쯤은 내 의견을 따르게."
성곤의 위압적인 모습에 중의는 친구가 정말 화가 났음을 알았다. 지금 자신이 그의 의견을 반대하거나 설득하려 한다면 오히려 더욱 화를 낼 터였다.
"자네 지금 분명히 한 가지 약속하게. 만약 운중에게 자식이 있고, 그 자식이 누군지 자네가 알게 되면 제일 먼저 나에게 알려주겠다고 말이네. 만약 과거처럼 자네가 알고 있으면서 나에게 나중에 알려준다면 나는 그때부터 자네의 친구가 아니네. 또 자네가 그 아이에게 칼을 꼽는 일에 관여했다면 나는 분명 아까 내가 한 말을 지킬 것이네."
중의마저도 머리통을 부숴버리겠다는 말이다. 중의는 할 말을 잊었다.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진짜 이 친구는 자신이 죽더라도 반드시 일을 벌일 것이다. 그 대상이 회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말이다.
"………!"
중의가 말을 하지 못하자 성곤이 다그쳤다.
"왜 대답을 못하는가? 약속하지 않겠단 말인가?"
중의는 오히려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감정에 치우친 사람에게는 어떠한 설득도, 어떠한 논리도 통하지 않는다.
"약속하겠네."
"고맙네. 하지만 나는 자네에게 불만이 많네."
성곤의 목소리가 조금 누그러졌다. 일단 약속을 받아낸 이상 친구라면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란 안도감 때문인 것 같았다.
"아까도 말했듯이 자네는 회에서 영향력이 큰 사람이네. 철담이 죽은 이상 자네는 철담 이상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네. 이제 셋뿐인 우리들 사이에 그렇지 않아도 사면초가에 빠져있는 운중을 도울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흉수로 몰아가는데 앞장서려 하니 나는 영 자네가 마음에 들지 않네. 설사 그가 흉수라 하더라도 말이네."
"흐… 음…."
성곤의 말은 비수가 되어 중의의 가슴에 꽂혔다. 심기가 불편한 듯 신음 같은 헛기침을 터트렸다. 사실 운중을 그렇게까지 몰아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정황이 그라고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어찌 친구라고 감싸고 돌 수만 있을까?
"자네는…."
성곤의 비난을 받은 중의가 반박하듯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것만큼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 자네는 아직 모르네. 운중도 친구지만 만약 그가 흉수라면 그를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다네. 이미 철담과 혈간 두 친구가 목숨을 잃었네. 그가 흉수라면 그는 친구 둘을 죽인 셈이네. 그리고 우리 역시 그에게 당할 수 있네. 아무리 친구라 한들 나에게 보이지 않는 칼을 꽂는 것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네. 내 말은 단정 지어 그를 흉수로 몰아가는 것이 싫다는 말이네."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의견이 달라 심기는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서로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투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휴우…."
"으음…."
두 사람의 입에서 탄식과도 같은 신음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그리고 또 동시에 술잔을 들고는 단숨에 들이켰다. 두 사람 모두 오늘 밤만큼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속이 타는 때에는 술이 때론 약이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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