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회과학원 변강사지 연구센터의 동북공정 홈페이지
2004년부터 역사침탈의 주체는 동북3성
동북공정은 지난 2002년 시작되었으나 국내에 알려진 것은 지난 2003년 10월이었고 2004년부터 한중 사이에 외교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동북공정은 2004년 선정 과제건수가 줄어드는 등 대외적으로 활동이 지지부진한 것처럼 보였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서 교수는 "한국의 반발 등으로 중국 학자들은 2004년부터 대외적으로 연구성과 공개를 최대한 자제한 채 조용하게 연구를 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신 지린성사회과학원이 <동북사지>라는 학술지를 만들어 300편이 넘는 논문을 생산해 내는 등 이중 플레이를 했다"고 비판했다.
현재 헤이룽장성 문화청이 발행하는 <북방문물>, 지린성 문화청이 발행하는 <박물관 연구>, 지난 2004년 창간한 <동북사지> 등의 학술지가 그것이다. 특히 <동북사지>는 지린성 선전부 부부장인 장푸여우가 사장으로 있는 잡지로 2004~2006년 동안 고구려사 관련 논문만 106편을 실었다.
서 교수는 "2004년을 기준으로 역사침탈의 주체가 동북공정에서 동북 3성으로 넘어갔다"며 "한국이 동북공정이라는 껍데기만 가지고 온 국민이 난리를 치는 동안 중국은 한국을 외교적으로 무마하고 대신 자리를 옮겨 몇배 덩 강도있는 연구를 진행하여 왔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지난 1996년 7월20일 본시(本溪)시 문물관리위원회 판공실이 각 관청의 고위간부, 선전부, 공안국 및 국가안전국에 보낸 비밀문서를 공개했다. 본시시 환런현에는 고구려 첫 수도인 홀본성이 있다.
'고구려 귀속문제 논쟁에 대한 몇가지 초점'이라는 제목의 비밀문서에는 "한국과 조선(북한) 두 나라 학자들은 고구려가 고대 조선의 국가라며 우리 나라 동북지구를 조선 역사에 써넣고 있는데 이것은 역사적 사실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이에 대해 우리 나라 학자가 유력한 반론을 내놓았으니 참고하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중국 정부가 고구려 역사침탈에 동북공정을 공식적으로 시작하기 이미 6년 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1980년대 중국의 유명 역사지리학자인 탄치양이 중국 역사의 지리적 범위를 1940년대 아편전쟁 이전의 청나라 판도로 규정했고 이는 사실상 중국의 공식적인 입장이 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국경전문 연구기관으로 1983년에 변강사지연구중심이 만들어졌다. 이어 1986년 티베트 지역 전문 연구기관인 '중국장학(藏學)연구중심'이 만들어졌고 몽골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킨 <몽골족통사>가 1990년 10월에 나왔다. 1990년대 후반에는 통화사범대학에 고구려연구소, 지린성사회과학원에 고구려연구중심, 조선·한국연구소, 동북사범대학에 동북민족강역연구중심 등이 앞다퉈 세워졌다.
또 1996년부터 2000년 에는 제9차 경제·사회5개년 계획의 하나로 하·상·주 단대공정이 이뤄졌다. 이 작업은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의 정확한 연표를 확정하는 것이 목적이다. 현재 중국 역사는 서주 후기 공화 원년 즉 기원전 841년까지만 정확히 확인되어 있어 이집트의 기원전 2500년 등에 비하면 한참 떨어진다. 하상주단대공정의 결과 하나라는 기원전 2070~1600년 등으로 역사가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