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25회

등록 2007.01.31 08:17수정 2007.01.3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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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두 중 한 명인 단양수(斷陽手) 마궁효(馬躬效)는 줄곧 백도 자인을 감시하고 있었다. 환영교수 반일봉과 암기(暗機)를 담당하고 있는 탈명화운(奪命花雲) 정이랑(鄭二朗)과 함께 오늘 경비를 돕게 되었는데 광나한(廣羅漢) 철호(徹虎)가 지시한 몇 가지 일 중 자진하여 백도를 감시하는 일을 맡았던 것이다.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된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켜본 지 두 시진이 지나도록 백도는 움직이지 않았다. 조문객도 오지 않는 늦은 시각에 저렇게 앉아 홀로 밤을 지새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백도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사부에 대한 흠모의 염이 깊은 인물이었던가?


@BRI@마치 석상처럼 철담의 상청 앞에서 그는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를 은밀하게 감시하는 입장인 자신이 지루해 못 견딜 지경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알려 시비라도 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의 심정을 백도가 알았던 것일까?

'………!'

그때였다. 백도 자인의 눈이 떠지며 스르륵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리조차 전혀 나지 않아 계속 지켜보지 않았다면 그가 움직였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다. 백도는 천천히 시선은 돌리며 방안 전체를 쭉 훑었다.

'저 자식 뭐 하려는 것이지?'

마궁효는 숨을 죽였다. 뭔가 이상한 기미를 느끼고 주위를 훑고 있었지만 자신의 존재를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했을까? 백도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문으로 향했다.


'지루했나? 아니면 드디어 어디론가 움직이려는 것일까?'

마궁효는 바짝 긴장을 하며 백도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백도는 자연스럽게 문밖으로 나가서더니 심호흡을 하고 크게 기지개를 켰다. 그의 굳은 몸이 풀리는 듯 우두둑 뼈마디가 부닥치는 소리가 들렸다. 세 시진이 넘게 같은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 그렇지…, 철교두의 예측대로군.'

잠시 손과 발을 뻗고 휘휘 저으며 몸을 풀던 백도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다른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마궁효는 거꾸로 매달려 있던 몸을 소리 없이 세우며 벽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섰다. 지금껏 움직이지 못하고 그를 지켜본 것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차올랐다. 이 밤중에 그가 움직이고 있는 것은 단지 산책하기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백도는 분명 자신에게 또 다른 무언가를 보여줄 것이고, 그것이 자신들이 알고자 하는 무엇이었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백도가 향하는 곳은 운중각 쪽이었다. 마궁효는 절대 서두르지 않았다. 백도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고,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린다면 자신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절대 보여주지 않을 터였다. 그는 신중하게 멀리 거리를 유지하며 뒤를 따랐다.

매송헌에서 운중각으로 가려면 제일 먼저 거치는 곳이 동쪽에 있는 청룡각이었다. 동창의 인물들이 머무는 청룡각에는 아직도 불이 밝혀져 있었다. 신태감이 죽은 이후로 전혀 움직임이 없었던 그들은 웬일로 아직까지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어떠한 말이나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고, 움직임도 없었다.

백도는 이상하게도 청룡각을 한 번 빙 돌더니 다시 방향을 틀어 남쪽의 주작각 쪽을 향했다. 그의 뒤를 따라 청룡각을 한 바퀴 돈 그로서는 지루할 정도였다.

'저 자식…, 뭣 하는 짓이지? 정말 상청을 지키기 지루해 산책 나온 건가?'

어찌 보면 자신과 같이 경비를 서거나 순찰을 도는 듯한 모습이기도 했다. 누가 보면 마치 청룡각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 자식아…, 경비는 나란 말이다…!'

마궁효는 속으로 백도를 욕하면서 불현듯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오늘 밤 공식적인 경비인원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은 누가 볼세라 움직임을 최소화하며 나무나 건물 뒤에 숨어 백도를 뒤쫓고 있고, 경비와는 전혀 상관없는 백도 저 놈은 아예 몸을 드러내고 태연스레 걷고 있다.

곳곳에 경비를 서는 인물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의 이목을 피해 움직이는 것은 백도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지금 상황은 입장이 아주 정반대로 뒤바뀐 셈이었다.

주작각은 성곤어른과 중의어른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는 불빛 하나 새어나오지 않는 것이 이미 모두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백도는 청룡각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주작각 주위를 돌고 있었다. 마궁효는 청룡각에서 보였던 우매한 짓을 반복하지 않았다. 은밀하게 추적을 하는 자의 기본은 움직임을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마궁효는 한 번 겪었던 터라 백도가 도는 방향의 반대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차피 백도가 돌아오길 기다리면 될 것이었다. 그의 기대대로 백도는 한 바퀴 빙 돌고는 곧바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운중각 쪽을 한 번 바라보더니 서쪽에 있는 백호각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신각(四神閣)을 한 바퀴 빙 돌 모양인가? 저 자식…. 도대체 뭐 하는 짓이지?'

마궁효는 백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세 시진이나 넘도록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던 놈이 축시가 지나 인시(寅時)에 접어드는 시각에 왜 저렇게 돌아다니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궁효는 궁금함을 짓누르며 끈질기게 인내심을 발휘해 그를 소리 없이 따르고 있었다.

백호각은 혈간의 시신이 안치된 곳. 마궁효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웬일인지 백호각에서는 불빛 한 점 새어나오지 않고 있었다. 신기수사 옥청량이나 옥기룡이 혈간어른의 시신을 방치하고 잠이 들었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었다.

더구나 희미하게 문이 열려 있는 것 같았음에도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 모두 쉬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아무리 낮에 조문객들을 맞이하느라 피곤하다 해도 그렇지 인원도 적지 않은데 혈간어른의 시신을 방치하고 잠이 든다는 것은 남들에게 욕먹을 일이었다.

하지만 마궁효는 백호각 쪽으로 다가갈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 잠이 들었다면 그중에는 코를 고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몸을 뒤척이는 사람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백호각에서는 살아있는 사람이 없는 듯 너무나 적막했다. 긴장감마저 느껴지는 듯했다.

'이상한 일이군.'

백호각에 다가간 백도의 태도는 여전했다. 그는 더욱 느릿하게 백호각을 돌고 있었다. 마궁효는 청룡각에서는 그를 따라 한 바퀴 돌았지만 주작각에서는 이미 그가 돌아 나올 곳으로 가 있었던 적이 있었던 터라 이번에도 역시 반대방향으로 기다렸다.

'………?'

이상했다. 백도가 더욱 느릿하게 걷고는 있었지만 분명 모습을 보여야 할 때가 지났음에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이 자식이 내가 뒤쫓고 있음을 안 걸까?'

불현듯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자식이 자신의 이목을 흐리고 따돌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나무 뒤에 몸을 감추고 있다가 조금 더 기다려도 백도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자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백도를 놓쳤다면 이 무슨 개망신인가? 다른 교두들은 물론 철호에게 얼굴을 들지 못할 일이었다.

'미치겠군…. 안되겠다.'

그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그는 되도록 몸을 낮추어 백호각 쪽으로 다가갔다. 이상하게도 백호각에서는 긴장된 기운이 느껴졌지만 더 이상 그것에 연연할 때가 아니었다. 그는 백도가 사라진 방향으로 급히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그 쪽에서 백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확실히 자신이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궁효는 급한 마음에 백호각의 기단을 타고 모퉁이를 돌았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시커먼 물체가 얼굴로 날아들었다.

퍽----!

눈앞에서 불똥이 튀었다. 무언가 자신의 관자놀이를 강타했고, 자신의 몸은 균형을 잃고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정신이 멍해 왔다. 그러나 멍해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둠 속에서 또다시 기척 없이 파고드는 시커먼 물체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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