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로 덮인 청계천이 47년만에 복원되어 2005년 10월1일 오전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장애인 단체 회원들이 복원된 청계천이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필자가 대학에서 인권과목을 강의하며 시청각 자료로 활용하는 <여섯 개의 시선>이라는 인권단편영화 모음 중에 여균동 감독의 <대륙횡단>이라는 14분짜리 작품이 있다. 그것은 한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의 일상적인 삶과 감정의 기록을 짧은 장면들로 구성한 영화인데, 특히 세종로 네거리를 홀로 무단 횡단하는 마지막 장면은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린다.
장애인들이 "우리도 버스를 타고 싶다!"며 버스에 자신들의 휠체어를 쇠사슬로 묶고 절규하는 나라가 얼마나 있을까?
미국의 경우는 그와 정반대임을 우리는 본다. 휠체어 표시가 붙은 버스가 짧은 간격으로 다니며 장애인이 탈 경우엔 버스가 멈추고 기사가 나와 휠체어를 밀어 버스에서 자동으로 내려오는 발판 위로 휠체어를 탑재한 후 안전띠로 동이고 버스가 출발한다.
승객들은 어느 누구도 시간이 걸린다 하여 투덜대기는커녕 기사가 제대로 장애인 승객을 대하는지를 지켜본다. 이 장면을 목격하던 필자는 장애인들이 행복한 나라여야 진정으로 문화선진국이자 선진 민주국가라고 생각하곤 했다.
장애는 90%가 후천적으로 발생
이에 덧붙여, 필자는 인권연대 주최의 '2006년 여름 교사인권강좌' 자료집에서 접한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박숙경씨의 글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와 인권'에서 귀중한 깨우침을 얻는다. 장애는 사고나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90% 이상이라 한다.
한창 잘 나가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나 사업가들이 어느 날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거나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어 고통을 받는 것을 자주 보며 필자는 장애가 참으로 가까이 있는 것임을 절감하곤 한다.
@BRI@사실 장애인은 대한민국 인구의 약 10%인 450만 명에 근접한다고 추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장애인들을 여전히 나와는 '다른' 존재, 더 나아가 나와는 '틀린' 존재로 인식하며, 장애인이 이름을 가진 '사람' 누구누구이며 단지 '장애'를 더 가졌을 뿐임을 잊고 그저 '장애인'으로만 분류하지는 않나?
말 한마디, 냉랭한 태도, 차갑거나 동정어린 시선 등에 의해 '특별한 존재'로 취급당하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든 상처이자 인권침해라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토로한다.
1999년에 발간된 <한국장애인인권백서>를 보면, 우리는 장애인들에게 그들의 처지를 공연히 부각시키거나 그들을 비하하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부지불식간에 상처를 주는 언어폭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장애만 없어도 큰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말이 주는 상처, 신문 지상에서 곧잘 접하는 "벙어리 냉가슴 앓기", "절름발이식 국토개발", "장님 코끼리 만지기" 등의 상투적 표현, 텔레비전에서 접하는 "바보" 등 장애를 빗대어 웃음을 만드는 코미디 프로그램 등이 커다란 상처를 준다고 한다.
장애인은 '장애인'이라는 말도 듣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장애인, (장)애자, 불구자, 병신, 기형아, 장님, 봉사, 애꾸, 벙어리, 귀머거리 등등의 용어 자체가 곧 인권침해라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있는가.
더 나아가, 밥 맛 떨어진다고 못 들어오게 하는 식당, 자필서명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카드 발급을 거절하는 은행, 수화통역사를 대동하고 오라고 면박을 주는 관공서나 경찰서, 방 한 칸을 얻으려 해도 재수 없다고 거절하는 집주인들, 장애인이라고 면접에도 못 오게 항상 서류전형에서부터 낙방시키는 기업들, 가족 중에 장애인이 있다고 하여 혼사가 파혼되는 사례 등, 사례는 참으로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배려는 쉽고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