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또 먹고 싶다, 그 집 '대통령국밥'

[맛이 있는 풍경 11] 겨울 찬바람 데우는 구수한 국물맛 '쇠고기국밥'

등록 2007.01.31 18:59수정 2007.02.0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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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추운 겨울에 입천장을 데여가며 맛나게 먹는 쇠고기국밥 한 그릇. ⓒ 이종찬


아, 또 먹고 싶다
겨울 찬바람 데우는 뽀오얀 김 모락모락 피워올려
조용한 시골 장터 왁자지껄하게 만드는 그 집 쇠고기국밥
팔순 훌쩍 넘긴 꼬부랑 할매가 팔팔 끓이는
환갑 넘긴 꼬부랑 가마솥에서 벌겋게 끓고 있는
따끈따끈한 인정이 넘쳐나는 그 집 장터국밥
박정희 전두환이 도둑고양이처럼 살그머니 들어와
재야인사 낚아채듯 뚝딱 먹어치웠다는 그 집 대통령국밥
앗! 뜨거
입 천장 데여가며 후루룩후루룩 마시는 구수한 맛
해방의 기쁜 추억이 어른거리는 그 집 쇠고기국밥

- 이소리, '그 집 쇠고기국밥' 모두


의령 3대 음식은 망개떡, 메밀국수, 쇠고기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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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쇠고기국밥 내음을 폴폴 풍기고 있는 시커먼 무쇠솥. ⓒ 이종찬

@BRI@고운 모래밭을 옆구리 곳곳에 낀 채 은빛 윤슬을 톡톡 터뜨리고 있는 아름다운 남강. 남강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기름진 들녘을 품고 있는 경남 의령.

아무리 추운 땡겨울에도 어른 머리통보다 더 큼직한 수박이 은빛 비닐하우스 속에서 영글고 있는 수박의 고장이 경남 의령이다.

의령하면 떠오르는 세 가지 음식이 있다. 초록빛 망개(청미래) 잎사귀에 예쁘게 쌓여있는 하얀 망개떡과 쫄깃쫄깃한 갈빛 면발이 끝내주는 메밀국수, 그리고 구수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혀끝에 감도는 쇠고기국밥이다.

그중 의령 쇠고기국밥은 부산과 창원, 마산, 진주 등지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이름이 드높다.

하지만 정작 의령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의령의 3대 음식에 쇠고기국밥이 끼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이는 이 지역 사람들이 장날만 되면 늘상 쇠고기국밥 한 그릇을 예사로 먹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긴, 아무리 맛이 뛰어난 음식이라도 자주 먹다 보면 그 음식에 담긴 고유하면서도 독특한 맛을 느끼지 못하지 않겠는가.

왜 의령 쇠고기국밥을 '대통령국밥'이라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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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쇠고기국밥의 특징은 기름기가 없는 소의 양지살을 찢어 국밥 위에 얹고, 국물은 소의 뱃살로 우려낸다는 점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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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빗살과 양지살이 알맞게 섞인 수육 몇 점 양념장에 찍어 입에 넣자 쫄깃쫄깃 씹히는 구수한 맛이 혀끝에 착착 달라붙는다. ⓒ 이종찬


춥고 배 고픈 겨울날.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우고 나면 속이 든든해지면서 금세 추위마저 쫓아내게 하는, 구수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뛰어난 의령 쇠고기국밥. 기운이 없거나, 속이 더부룩할 때 한 그릇 먹고 나면 기운이 불뚝불뚝 솟아나고 금세 속이 확 풀리는, 건강과 숙취해소에 그만인 의령 쇠고기국밥.

의령 쇠고기국밥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는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러니까 의령 쇠고기국밥의 역사는 광복 직후 한 젊은 아낙(84·이봉순 할머니)이 의령읍 내에서 장이 열릴 때마다 장터에 시꺼먼 무쇠솥을 걸어놓고 황소의 양지와 갈빗살 등을 넣어 팔팔 끓여내 술국 혹은 장터국밥으로 팔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부산, 창원, 마산, 진주 등지에서 장터를 찾아온 사람들이 끼니 때마다 그 집으로 몰려들면서 경상도 곳곳에 의령 쇠고기국밥이 으뜸이라는 입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어 의령군청에서 장터국밥을 팔고 있는 아낙에게 장사를 계속 하려면 허가를 내고 하라고 하면서 의령읍장이 국밥집 이름까지 직접 지어주면서 의령 쇠고기국밥은 더욱 널리 알려졌다.

게다가 군사독재시절, 박정희 대통령이 수행원과 고속도로 현장의 기술자들을 데리고 그 집에 들러 쇠고기국밥을 먹은 뒤 하도 맛이 좋아 다시 찾았다. 또한 광주학살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이 고향인 합천에 다녀갈 때마다 이 집에 들러 수육과 쇠고기국밥 한 그릇을 먹고 가곤 했다. 의령 쇠고기국밥이 대통령국밥이라 불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

시골에서 기른 누렁소 중에서도 황소를 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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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들은 쇠고기국밥보다 김치맛을 잊지 못해 이 집을 찾기도 한단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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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 쇠고기국밥은 밥을 국물에 말아 내는 게 원칙이다. ⓒ 이종찬


지난 20일(토) 오후 2시. 이모님의 부음을 받고 가족들과 함께 의령에 있는 한 장례식장에 갔다가 오는 길에 의령읍 내의 한 쇠고기국밥집에 들렀다. 살림집을 손질해 식당으로 만든 그 집에 들어서자 식당 들머리에 놓인 커다란 무쇠솥 두 군데에서 허연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다.

구수한 쇠고기국밥 내음이 폴폴 풍기고 있는 그 시커먼 무쇠솥 곁에는 할머니 한 분이 채곡채곡 쌓인 그릇에 하얀 쌀밥과 콩나물이 듬뿍 섞인 쇠고기국을 담고 있다. 이 분이 바로 해방 직후부터 지금까지 이 곳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맛난 쇠고기국밥을 손님들에게 팔아온 이봉순(84) 할머니다.

지금도 시골에서 기른 누렁소 중에서 황소를 직접 골라 양지와 갈빗살, 뱃살을 삶아 수육과 국밥으로 차려낸다는 이봉순 할머니. 이 곳 쇠고기국밥의 특징은 기름기가 없는 소의 양지살을 찢어 국밥 위에 얹고, 국물은 소의 뱃살로 우려낸다는 점이다. 소의 뱃살로 국물을 오래 우려내야 쇠고기국밥 특유의 구수한 깊은 맛이 배어난다는 것.

이봉순 할머니에게 수육 한 접시와 쇠고기국밥, 소주 한 병을 시키자 밑반찬이 먼저 나온다. 근데 쇠고기국밥 밑반찬이라고 해봐야 잘 익은 무김치와 배추김치뿐이다. 자잘하게 썬 양파와 마늘, 풋고추, 된장, 양념장은 수육에 따라 나온 것이다. 하지만 반원으로 썰어놓은 무김치가 참으로 먹음직스럽게 보인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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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과 쫄깃거리는 양지살, 시원하고도 구수한 국물의 환상적인 조화.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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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바로 이 맛이야. ⓒ 이종찬

이윽고 맛갈스럽게 보이는 수육 한 접시가 식탁 위에 놓인다. 갈빗살과 양지살이 알맞게 섞인 수육 몇 점 양념장에 찍어 입에 넣자 쫄깃쫄깃 씹히는 구수한 맛이 혀끝에 착착 달라붙는다. 소주 한 잔 입에 털어넣고 가끔 집어먹는 무김치와 배추김치의 아삭거리는 맛도 깊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들은 쇠고기국밥보다 김치맛을 잊지 못해 이 집을 찾기도 한단다.

쫄깃하고 구수한 수육을 안주 삼아 소주 서너 잔 들이키고 있을 때 기다리던 쇠고기국밥이 나온다. 이 집 쇠고기국밥은 밥을 국물에 말아 내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손님이 원하면 국과 밥을 따로 내기도 한다. 양지살과 콩나물이 듬뿍 섞인 쇠고기국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자 입 안 가득 시원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퍼진다.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과 쫄깃거리는 양지살, 시원하고도 구수한 국물의 환상적인 조화. 순식간에 쇠고기국밥 한 그릇이 바닥을 드러낸다. 이어 이마와 목덜미에서 땀방울이 송송송 돋아난다. 국그릇을 들고 마지막 남은 국물까지 후루룩 마시고 나자 간밤 늦게까지 마신 술로 인해 더북룩했던 속이 확 풀린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찬 바람이 휘몰아치는 추운 겨울에 입천장을 데여가며 맛나게 먹는 쇠고기국밥 한 그릇. 그래, 올 겨울에는 소싸움으로 유명한 경남 의령으로 가서 60년 전통의 쇠고기국밥 한 그릇 먹어보자.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밋난 쇠고기국밥 한 그릇 속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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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난 쇠고기국밥 한 그릇 속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리라.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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