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분명히 사람의 주먹이었고 이번에 또 맞으면 정신을 잃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도 얕볼 수 없다는 단양수(斷陽手) 마궁효(馬躬效)였다. 그는 일단 몸을 옆으로 뉘이며 미끄러졌다. 머리 위로 주먹이 바람을 가르고 있었다.
그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몸을 회전시켜 일어서려는 순간 그의 목덜미 쪽으로 뭔가 날아드는 것을 느꼈다. 마궁효는 또 다시 고개를 틀면서 피하려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 날아 온 물체는 그의 뒷목을 타고 미끄러지며 그의 턱을 강타했던 것이다.
@BRI@"어…억…!"
그의 몸이 이장 밖으로 나동그라졌다. 그의 입에서 신음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입안에 찝찔한 액체가 고이며 무언가 딱딱한 것이 느껴졌다. 통증도 통증이려니와 이빨이 몇 대 부러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나동그라지는 힘을 이용해 데굴데굴 굴러 상대의 공격 권에서 일단 벗어나려 한 것은 나름대로의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그가 땅바닥을 구르는 것을 느긋이 바라보고 있었고 혼자 헛 짓을 한 셈이었다.
"뒤나 졸졸 따라다니는 쥐새끼인줄 알았더니 미친 망아지 새끼였군."
백도였다. 바로 마궁효가 무림인이라면 치욕으로 여기는 '미친 망아지처럼 데굴데굴 구른 것(懶驢墮坤)'을 빗댄 말이었다. 그제 서야 마궁효는 백도의 아주 간단한 술수에 말려 치욕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나 순식간에 어처구니없이 당한 상황이었다. 단지 백도를 감시하고자 했던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이 백도를 공격하거나 그와 반대로 백도가 자신을 공격해올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은 탓도 있었다.
"퉤… 이런 죽일 놈….”
마궁효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입안에 고인 피와 부러진 이빨을 뱉어내고는 눈을 부릅떴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백도의 입가에 비웃음이 달리는 것 같았다. 허나 동시에 두 눈에는 과장되게 놀란 듯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이런…? 마교두 아니시오? 나는 또 어떤 쥐새끼가 졸졸 뒤따르기에 적당히 손봐주고 돌려 보내려 했는데…."
이미 자신을 뒤따르고 있던 마궁효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매송헌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사실까지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자신을 지켜보는 인물이 마궁효란 사실까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헌데…!"
그것도 잠시였다. 백도의 표정이 차갑고 감정이 없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의 눈에서 차갑고 냉랭한 빛이 쏘아 나왔다.
"마교두가 이 밤중에 나를 뒤따르는 것은 아까 낮에 있었던 일 때문이오?"
백도는 거리낌이 없었다. 그의 음성은 나직했지만 조용한 어둠을 타고 정지된 듯한 공기를 울리고 있었다. 오히려 당황하는 것은 마궁효였다. 이것은 확실히 망신도 개망신이었다. 그는 노기를 억누르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무슨 뜻이냐?"
그의 발음은 정확치 않았다. 자꾸 피가 입안에 고이기도 했지만 이빨이 몇 대 부러져 나가 적응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주위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인물들이 적잖은 사실에 난감해 했다. 백호각에서 미세한 움직임이 있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십여 명이 넘는 인물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완전히 병신 됐군.'
일이 틀어져도 보통 틀어진 게 아니었다. 지금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곤혹스런 처지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이미 모르는 척 휘두른 저 놈의 주먹과 발에 맞기까지 한 터였지만 따질 처지도 아니었다. 그는 감정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우르르 몰려와서 때려죽일 듯 하던 짓 말이오. 이제는 야밤에 한 번 붙자고 나를 뒤따랐던 것이오?"
하지만 백도는 아예 대놓고 한판 붙자고 빈정대고 있었다. 이미 맞은 대다가 다들 들으라고 떠들어대는 것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이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은 마궁효를 궁지에 몰아가고 있었다.
"나는 오늘밤 운중보 경비를 돕기 위해 나선 것이다. 네놈처럼 야밤에 괜히 이리저리 다닌 것이 아니란 말이다."
기껏 생각해낸 것이 이것이었다. 급한 상황에서 생각해 낸 변명치고는 썩 괜찮은 것이었다. 허나 백도는 작정한 듯 변명할 여지를 주지 않고 몰아대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내 뒤를 그리 졸졸 따라 다녔소? 그것도 다른 사람 이목을 숨기느라 전전긍긍하면서?"
"그것은…."
점점 대답할 말이 궁색해졌다. 백도의 태도로 보아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이런 경우를 보고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 말하는 것일까? 큰소리 쳐야 할 자신은 변명에 급급하고 오히려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상대가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네 놈이 아주 위험한 장난을 치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입술을 지그시 씹으며 노기를 최대한 짓누르는 음성을 발했다. 이제는 물러설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대로 우물쭈물 하다가 물러간다면 다시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된다. 아니 과거 저 놈에게 손가락을 잘리고 운중보를 떠나야 했던 섬전지(閃電指) 음학성(陰學成)과 같이 자신 역시 이곳을 쫓겨나듯 떠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자신들을 지켜보는 인물들은 적지 않은 듯 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장난이란 것을 쳐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당신이 아주 위험한 오해를 하고 있군. 낮에도 사부님의 영전 앞에서 헛소리들 하더니 말이오."
말투가 바뀌었다. 백도의 의도가 분명해지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마궁효를 계속 자극하고 있었다. 낮에 찾아와 위협이라면 위협이고 행패라면 행패라 할 수 있었던 교두들의 도발에 앙갚음이라도 하고 싶은 것일까? 아주 작정한 것 같았다.
"퉤!”
마궁효는 입안에 고인 피를 다시 뱉어냈다. 백도는 아주 위험한 자임에 틀림없었지만 꼬리를 말고 물러나는 것은 이제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림인에게 있어 정의란 곧 힘이었고, 살아남는 자가 곧 정의였다.
"전에 궁노 선배가 그러더군. 너무 지독한 근성을 가지고 있어 오히려 네 놈을 가르치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일찍이 철담 어른의 눈에 띤 것이 교두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고도 하셨지. 하지만 나는 믿지 않아. 네 놈의 입에서 게거품을 물때쯤 되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겠지?"
마궁효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과거 섬전지 음학성은 절대 하수가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무참히 깨졌다는 것은 백도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고수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마궁효는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이제 해볼 마음이 생기신 모양이군."
어둠 속에서 백도의 얼굴에 유독 흰 선이 그어졌다. 웃는 것 같았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섬뜩한 느낌이 들게 하는 모습이었다. 동시에 그는 느긋하게 팔짱을 끼었다. 그것은 상대를 업신여기고 해볼 테면 마음대로 해보라는 모습이어서 마궁효에게 모멸감마저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건방진 자식!"
분명 백도는 자신을 상대가 안 된다는 듯 경시하고 있었다. 저런 자세는 절대적으로 자신이 있음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면 상대의 감정을 자극해 평정심을 잃게 하는 얄팍한 술수를 부리는 것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저러한 허풍과 술수는 승부를 앞둔 무인에게 있어서는 버려야 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교두들에게는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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