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해지됐으니 인수인계 하겠다"
"<조선일보> 법 위에 군림 하는가?"

15일 새벽, <조선> 3000여 부가 서울 종로 일대에 왜 배달 안됐나

등록 2007.02.15 13:01수정 2007.02.15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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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새벽 1시, <조선일보> 서울 종로지국 사무실엔 적막이 흘렀다. 지국의 하루는 새벽 2시께 신문이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잠들어 있어야 할 시각, 그러나 지국장 조의식씨는 초조한 얼굴로 <조선> 본사측 직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14일 오후 <조선>측으로부터 "내일 새벽 지국을 인수받으러 가겠다"는 전화통보를 받았다.

30여분 뒤, 본사 판매국 직원 2명과 후임 종로지국장 최아무개씨 등 5~6명이 승용차 두 대를 이끌고 종로지국에 도착했다. 이들이 발을 들여놓자마자 조 지국장은 "남의 영업장에 왜 들어오냐"며 목청을 높였고 본사 측 직원은 "조씨는 지국장 자격이 없다, 인수인계를 하러 왔다"고 맞받아쳤다. 한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른 새벽, 종로지국장과 <조선> 본사 직원 사이에 한바탕 신경전이 벌어졌다. 조씨가 "수십명의 생명을 자른 분이 오늘 또 자르려 한다"며 언성을 높이자 판매국 백승범 차장은 "계약이 해지됐다, 운영권은 새 지국장에 있다"고 대응했다.

이에 조씨는 "현재 해약통지 무효소송과 타 지국이 내 영업을 가로챌 수 없도록 배달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낸 상태"라면서 "2주 뒤면 가처분신청 결과가 나올 텐데 그전에 영업장을 뺏길 수 없다"고 응수했다. 이어 "법원 판결이 나오면 인수인계를 해야지, <조선>은 법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또 조씨가 "영업 방해"라고 비판하자 백 차장은 "영업관리자가 작업 점검 등 본업에 충실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상적인 인수인계'라는 얘기다.

"17년 일터, 법원 결과 기다려라" - "본사 명예 훼손, 신뢰 상실"

a 15일 새벽 6시 30분께, <조선> 종로지국 내 배달되지 않고 쌓여있는 신문 뭉치. <조선> 본사 측 관계자들이 종로지국 관리·감독권을 요구하며 밖에서 진을 치고 있자 화가 난 종로지국 직원들이 배달원에 신문을 건내주지 않았다. 이날 미배달 사태로 <조선>측엔 독자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5일 새벽 6시 30분께, <조선> 종로지국 내 배달되지 않고 쌓여있는 신문 뭉치. <조선> 본사 측 관계자들이 종로지국 관리·감독권을 요구하며 밖에서 진을 치고 있자 화가 난 종로지국 직원들이 배달원에 신문을 건내주지 않았다. 이날 미배달 사태로 <조선>측엔 독자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안윤학

조씨의 "나가라"는 고성에 백 차장은 "여기는 <조선> 사옥"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조씨는 "이 주소로 사업자 등록을 냈고 세금을 납부했다, 내 직원들도 자는 곳"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또 "지국장들은 해약통보를 받으면 '해약되는가 보다' 자연스럽게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 나는 다르다"며 목청을 높였다.

옷자락을 잡고 끄는데도 본사 직원이 자리를 뜨지 않자 조씨는 결국 경찰을 불렀다. 현장에서 자초지종을 파악한 경찰관(삼청파출소 소속)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낮에 대화로 풀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계속된 실랑이는 종로지국 밖에서도 이어졌다.

조씨는 본사 직원들에게 미리 준비한 '엿'을 돌리고, "살려주세요"라고 비는 등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조씨는 지난 4~5일에 걸쳐 본사 직원과 각 지국장들에게 "더 이상은 못 참겠습니다"로 시작하는 항의성 이메일을 돌렸다.

판매국이 지국장들에게 '몇 일 몇 시 어디에 집합을 하라'는 등 비인간적인 대우를 하는 것과 판매량으로 성적을 매겨 '벌금(페널티)'을 매기는 데 대한 불만 등이 주 내용이었다. 조씨는 본사-지국장 사이의 판매 시스템 개선을 요구하며 '본사 불복종' 운동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타 지국장들의 동참도 호소했다.


이게 화근이 됐다. 편지를 작성한 조씨의 인터뷰 기사가 7일자 <미디어오늘>에 실렸다. <조선>측은 "타 매체와 인터뷰를 해 본사 명예를 훼손했다"며 기사출고 당일 조씨에게 '14일부로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조씨는 "30년을 <조선>에 몸담아왔고 17년간 종로지국을 운영해왔는데 증명하기도 어려운 '명예훼손'을 이유로 1주일 안에 짐을 싸라니 납득이 안 간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조씨는 1979년 주간지 영업을 시작하며 <조선>과 인연을 맺었다. 89년엔 <조선일보> 지국장이 됐고 이듬해 본사 추천으로 종로지국을 맡았다. 그러다 지난 7일 해약통지서를 받아 든 것이다.

백 차장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파탄난 상황이기 때문에 계약을 지속할 이유가 없다"면서 해약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8일 가량 여유를 뒀고, 조씨가 소송을 했는지 여부를 통보 받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또 그는 "과거 <조선>에 공(功)이 많아도 과(過)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면 해약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종로지국 3000부 미배달 사태 발생... 16일엔 서소문지국서 배달

이날 본사-지국 간 충돌로 인해 종로지국 발송 3000여부가 독자에게 배달되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본사 직원들의 방문에 화가 난 종로지국 직원들이 4시께 모인 배달원들에게 신문을 내주지 않았던 것.

종로지국에서 10년 동안 총무를 맡아온 조 아무개씨는 "새벽에 인수인계를 나오면 어떻게 일하란 말인가"라며 반문한 뒤 "게다 지국장이 바뀌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본사 측은 다음날(16일)에도 미배달 사태가 이어질 것을 대비, 일정기간 신문배달을 '서소문지국'에 맡길 예정이다. 현 서소문지국장은 종로지국의 후임 지국장이기도 하다. 백 차장은 "현재(오전 11시께) 본사 고객센터는 항의 전화로 불이 난 상태"라고 전했다.

a "영세지국장의 피 빨아서 부자된 조선일보", "경품판매 안 한 것이 지국장의 죽을 죄냐"본사 직원이 돌아간 후 조씨는 종로지국 외벽 여기저기에 지국장들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방'을 붙였다.

"영세지국장의 피 빨아서 부자된 조선일보", "경품판매 안 한 것이 지국장의 죽을 죄냐"본사 직원이 돌아간 후 조씨는 종로지국 외벽 여기저기에 지국장들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방'을 붙였다. ⓒ 안윤학



a 조의식 지국장

조의식 지국장 ⓒ 안윤학

종로지국장 조의식씨는 <조선일보> 측의 계약해지에 대해 "우리 지국은 독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불법 경품(연간 구독료의 20%, 2만8800원)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 그게 해약의 한 사유가 됐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조씨는 <조선> 판매국에 '바른 소리'를 자주한 게 해약 사유의 70~80%, 경품을 돌리지 않은 게 20~30%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조선> 측의 공식적인 해약사유는 '본사에 대한 명예훼손'이다.

그는 "현 신문시장은 빚더미에 올라 앉은 지국장과 불법 경품이 넘쳐나는 '패닉(panic, 공황)' 상태"라고 탄식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해약통보서를 받아들었을 때(7일) 어떤 느낌이었나?
"'강제 접수'나 다름 없는 형태로 지국 일을 그만둘 줄 몰랐다. '본사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해약 사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30년간이나 <조선>에 몸 담아 왔는데 마음이 황량하다."

- 왜 해약 당했다고 생각하나?
"<조선> 판매국에 바른 소리를 한 게 70~80%, 경품을 돌리지 않은 게 20~30%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 현 신문지국들 사정이 어떤가?
"빚더미에 올라 앉은 지국장과 불법 경품이 넘쳐난다. '패닉' 상태다. 사실 지국 사업은 현금이 원활하게 돌아 은행에서도 환영하는 직군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한번 악순환에 빠지면 헤어날 수가 없다. 판매국 직원들은 퇴직금이라도 받지, 지국장들은 빚만 진다."

- 불법 경품을 사용한 적이 있나?
"전혀 없다. 종로지국은 94년부터 메이저 일간지들이 불법 경품을 사용하지 말자고 협의한 바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타 신문 지국장들이 '미안하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며 경품을 뿌리기 시작해 많이 지쳤다."

- <조선>에 바라는 점은?
"사실 오프라인 신문시장은 내리막길이다. 이 때문인지 본사가 '상생의 정신'을 잃었다. <조선>의 긴 로드맵에 우리 지국장들은 없어도 된다. 다만 우리를 인간적으로 대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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