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다치 미츠루의 <터치>대원씨아이
그렇다고 <터치>가 ‘전통’을 아주 무시하는 것도 아니다. 표현의 차이가 있을 뿐, <터치>는 전통을 존중한다. ‘고시엔’을 목표로 추구하는 것도 그렇고, 캐릭터들이 ‘대상’을 목표로 설정해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도 그렇다.
쌍둥이 형제는 직접적인 말보다는, 깊은 의미가 숨겨진 눈동자와 제스처로 드러내지만, 어떤 캐릭터들은 일그러진 행동으로 잘못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터치>는 눈물을 펑펑 흘리지도 않으며, <거인의 별>처럼 밥상을 뒤엎지도 않는다. 고도성장을 추구하기 위해 무작정 혼신의 힘을 다할 시대는 지났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간접적인 서사로 ‘카인 콤플렉스’를 다루는 것 같았던 <바벨 2세>와는 달리, <터치>는 직접적이라는 점이다. 흐리멍텅한 형 ‘카즈야’와 천재적인 동생 ‘타츠야’는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지만, ‘미나미’라는 소꿉친구를 두고 미묘한 감정을 나누며, 서로를 의식한다.
야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스타로 군림하는 동생이지만, 어린 시절 자신보다 더 빠른 강속구를 던지며 재능을 드러냈던 형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타 학교의 라이벌들은 ‘타츠야’를 극복하기 위해 열성을 기울이지만, 그가 생각하는 마음 속의 라이벌은 오직 형 ‘캬즈야’ 뿐이다. ‘카즈야’가 날개를 펼쳐 비상을 시도할 경우, 누구보다 무서운 상대가 될 것이란 점은 단 몇 분의 차이를 두고 태어난 동생이기에 더 잘 아는 것이다.
<터치>는 ‘타츠야’를 갑작스럽게 사망으로 처리하면서, 이야기를 급회전시킨다. 하지만 어떤 캐릭터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특유의 할말 많은 눈빛과 표정으로 숨겨두고 있으며, 그 암울한 상황에서도 아다치 미쓰루 특유의 쿨한 유머도 여전한 맛을 자랑한다. 그리고 “우에스기 타츠야는 죽어버렸기 때문에, 극복할 기회조차 사라져버렸다”는 타 학교 라이벌들의 탄식이 강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이젠 ‘카즈야’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옮겨진 것이다. 천재적인 동생은 이제 죽었기 때문에, 언제까지고 흐리멍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지껏 찾지 못했던 자신의 자아도 확실하게 찾아야만 한다. 형제가 동시에 사랑했던 ‘미나미’의 꿈을 이제는 혼자 일궈내야 했으며, 형제 간의 부담스러운 싸움을 애써 피해야 하는 이유도 없어진 것이다.
죽은 동생의 꿈을 대신하기 위해 온몸을 불사른다는 ‘열혈 코드’도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쿨하지만, 열혈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만화 <터치>는 그런 작품이었다. 어떤 인간도 피가 꿈틀거리는 이상, ‘열혈’을 무시할 수는 없다. <터치>는 그 표현 방식을 달리 했을 뿐이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