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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지나고 모이면 꼭 빠지지 않는 몇 가지 얘기 중 하나가 아내들의 명절 증후군이 아닌가 싶다. 명절에 고생한 사람은 고생한 사람대로, 남편들은 그깟 일로 불평한다고, 어떤 사람은 교회에 다니니까 명절 음식을 안 해도 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교회는 교회고 차례는 지내야 한다고 하고…. 하여튼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명절행사인 것 같다.
나 역시 회사일에 매일 매일 바쁜 처지지만 명절이라고 결코 열외 해달라고 얘기한 적 없는, 다시 말해서 할만큼은 하고 사는 주부의 한 사람이다. 내 입장에서 명절 가사일에 대해 얘기하라면 나는 매우 공정하다. 모여서 차례준비 하는 데는 이의가 없으나 남녀가 하는 일이 불공평한 데는 불만이 있다.
우선 내가 보낸 구정 연휴 대해 비교적 객관적인 내용을 서술한 다음 내 의견을 적어 보려고 한다.
@BRI@토요일(17일) 아침 오랜만에 실컷 자고 일어나니 오전 9시가 조금 넘었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시댁에 가지고 갈 곶감, 고기, 젓갈을 챙기고 작업복까지 가방에 넣은 다음, 오전 10시 40분에 출발. 참고로 우리 시댁은 인천이라 서울 시내를 이동하는 것 정도밖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낮 12시 10분 전 시댁에 도착했다. 어머니께서는 전을 부칠 준비를 하고 계셨다. 형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다행이다.
어머니께서는 점심 전이라, 나는 전을 부칠 준비를 하고 어머니는 떡만둣국을 끓이셨다. 내가 만둣국을 끓여도 되지만 내가 끓인 만둣국보다 어머니께서 끓인 만둣국이 훨씬 맛있으므로 당연히 어머니가 끓이신다. 아침밥을 먹었지만 어머니가 끓이신 만둣국을 모두 맛있게 먹었다.
본격적으로 차례 준비에 돌입. 낮 12시 40분이다. 우리 형님은 집에서 갈비찜과 식혜, 약식을 만들어 오느라 좀 늦을 것 같다고 전화가 왔다.
항상 제사나 차례 준비를 하면 내가 맡는 일은 딱 정해져 있다. 전 부치기. 전에 관계되는 일은 모두 내가 한다. 두부전을 시작으로 생선전, 동그랑땡, 누름적, 빈대떡을 부치고, 고기산적을 구운 다음 생선까지 굽고 나면 나의 주요 업무가 끝난다.
이 시간 동안 어머니께서는 밀가루를 묻히시기도 하고 생선도 씻어주시고 내가 하기 어려운 녹두 계피도 해 주신다. 올해 여든이신 어머니가 하시기 버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어머니는 절대 편히 앉아서 며느리만 시키려고 하시지 않는다.
어떤 때는 어머니가 안 계시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하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공간에 일하면서 그동안 별로 못했던 이야기도 하고 재밌는 우스갯소리도 하고 그런 대로 분위기가 좋다.
내가 전을 부치는 이유는...
내가 전을 부치는 이유는 우선 전을 좋아하기 때문이고, 다른 일을 잘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국을 끓이고 편육을 만드는 것 같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은 못한다. 어머니께서도 시키려고 하시지 않는다.
시집오기 전에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낸 적이 없어서 나는 시집와서 제사 음식을 처음 해봤다. 거기다가 우리 시어머니는 음식을 굉장히 잘하시고 모든 음식을 격에 맞도록, 심지어는 파를 다져도 가로세로로 다 칼집을 낼 정도로 음식에 정성을 들이시는 분이다. 우리 시댁에서는 게맛살이 꼬치에 끼워지는 일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사회생활을 할 때에는 언제나 일을 잘한다고 칭찬을 받던 습관이 있어서 내 일솜씨를 보시고 탐탁지 않아 하시는 어머니 모습에 처음에는 속이 상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솔직히 일을 잘 못하는 내 모습에 형님들이나 시누들이 오히려 나를 편해 하는 눈치 아닌가? 하긴 일한다고 날마다 바쁜 척하고 혼자 똑똑한 척 다하는데다가 일까지 잘했다면 얼마나 얄미웠을까.
십몇 년이 지난 지금 내 일솜씨는 크게 향상된 편이지만 내가 맡은 역할은 여전히 전 부치기다. 다만 옛날에 비해 훨씬 많은 영역을 커버하고 있다. 그때는 겨우 부치는데 급급했다면 이제는 동그랑땡 만들기, 꼬치 끼우기 같은 일도 같이 할 여유가 생겼다.
그렇다고 '퀄리티'가 크게 개선된 것은 아니다. 요번에도 프라이팬을 자주 닦지 않은 탓에 동그랑땡의 빛깔이 거무스름해졌다. 어머니께서는 "아유 얘 너 너무 수고하는데…, 이 동그랑땡 계란 옷 좀 다시 입히면 안 되겠니?"하고 한 말씀 하신다. 나는 여유있게 "어머니 꼴은 이래도 맛은 좋아요"하고 어머니의 잔소리를 비켜간다.
그럭저럭 모든 전을 다 부치고 생선 두 가지를 다 굽고 나니 저녁 8시가 다 되었다. 그 7시간 반 동안 화장실에 두 번 갔다 온 것 말고는 꼼짝 않고 전기프라이팬 앞에 쭈그리고 앉아 전을 부친 것이다. 다리가 저려서 처음에는 잘 일어나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채반에 가득한 완성품(?)들을 보고 있으면 내가 대견스러워진다. 다른 일보다 전부치는 일을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가 프라이팬과 씨름하고 있는 사이 형님은 나물 볶고, 국 끓이고, 닭 삶고, 돼지고기 삶고, 거기다가 된장을 끓여서 저녁준비까지 마쳐 놓았다. 저녁을 먹고 청소하고 나니 밤 9시가 좀 넘었다. 뻣뻣해진 등을 문지르며 집에 오니 밤 10시 반. 온몸 구석구석 스며든 기름때를 다 씻고 뻣뻣한 등허리에 핫팩을 한 시간 이상 붙이고 나니 시간은 새벽 1시를 넘겼다.
드디어 설날, 가장 싫은 설거지가 차례 지내고 나서 하는 '설거지'
다음날 아침 일요일인 줄 모르고 알람을 수정해 놓지 않아서 일어나 보니 벌써 아침 7시 반이다. 허겁지겁 씻고 세뱃돈 준비해서 시댁으로 출발. 아침 경인고속도로는 생각보다 차가 많았다. 시댁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 작은 형님은 벌써 와계시고 어머니는 늦었다고 한 말씀 하신다.
부지런히 차례상에 놓을 음식을 담아 올리고 그릇, 수저 준비하고, 아침상 차릴 준비를 한다. 차례가 끝나고 모두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 시간. 식구가 많고 집이 좁으니 1차, 2차가 나눠진다. 우리 시댁 식구들은 제사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 거기다가 우리 어머니는 음식에 따른 양념장을 모두 갖춰야 하니까 이날 아침에 오른 장만도 국간장, 초간장, 수육 먹을 양념간장, 돼지고기 먹을 새우젓, 청양고추 넣은 매운 간장, 쌈장 이렇게 여섯 가지나 된다. 그러니 장 종지만도 몇십 개가 될 수밖에.
국을 좋아하는 사람, 술을 좋아하는 사람, 만두 찾는 사람, 누룽지 찾는 사람, 주문에 맞추다 보면 며느리들의 아침은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사실 가장 싫은 설거지가 차례 지내고 나서 하는 설거지다. 아무리 아무리 해도 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설거지는 우리 둘째 아주버님이 해주셨다. 그것도 냄비까지 완벽하게. 우리 남편은 아는지 모르는지 구석에서 벌써 잠이 들었다.
항상 그렇듯이 아침을 먹고 돌아서면 손님 오고, 상 차리고, 점심 먹고 돌아서면 손님 오고 상 차리고, 명절날은 하루종일 그렇다. 커피만 한 번 끓여도 컵이 열 개다. 우리 시댁에서는 절대 며느리만 일하라고 부엌에 몰아넣는 드라마에 나오는 일은 없다. 시누이나 조카들 모두 거들고 서로 자발적으로 일한다. 이런 분위기는 아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서로 돕고 일을 나누는 습관을 키워주는 것 같다.
오후 2시에 온 큰 시누이 식구들을 위한 점심을 차리고 설거지하고 나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작은 형님은 친정에 간다고 오후 3시쯤 일어났다. 아버지 엄마가 모두 돌아가셔서 딱히 찾아갈 친정이 없는 나는 이때가 좀 섭섭하다. 내가 갈 데가 없는 줄은 다 아니까 빨리 일어나기도 그렇고 사실은 집에 가서 쉬고 싶은데 어머니는 항상 더 있다 가라고 하신다. 이런 때는 눈치 빠른 남편이 가자고 성화를 한다. 오후 5시가 좀 지나 드디어 명절 임무를 완수하고 집으로 출발. 어머니께서 싸주신 여러 가지 음식들을 손에 들었다.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귀경차량과 섞여서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서울 시내도 거북이걸음이다. 저녁 7시 반이 되어서 집에 도착했다. 남편이 라면을 끓여 저녁을 때웠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날씨가 너무 따듯해서 마치 봄날 같다. 목련은 봉오리가 벌써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명절에 바라는 일... 남자들의 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명절에 식구들이 모여서 얘기도 하고, 차례도 지내고, 아이들도 서로 만나서 놀고, 이런 일들은 정말 좋은 일이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는 형제라도 그런 날 아니면 만나기가 힘들다. 부모님이 안 계신 나는 그런 만남의 소중함을 정말 잘 안다. 그리고 부럽기도 하다. 물론 나도 그 식구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근본적으로 같지는 않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시댁을 마치 전략을 세워 대처할 경쟁자라도 되듯이 시누는 이렇게 다뤄라, 시어머니는 이렇게 다뤄라 하는 소리를 한다. 내 생각에 전략을 세우려면 단기 전략을 세울 게 아니라 장기 전략을 세우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그 전략은 경쟁자를 넘어뜨릴 전략이 아니라 동업자를 유치할 전략이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항상 많은 명절 증후군 중에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가 전업주부 며느리를 괴롭히는 케이스가 나온다. 시어머니에게는 돈으로 인심을 쓰면서 정작 일할 때는 바쁘다고 쏙 빠지고, 당일 날 예쁘게 차려입고 나타난다든지…. 솔직히 그런 사람은 정말 강심장이라고 생각한다.
내 자랑이 아니라 지난 십몇 년간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지만 제사, 명절, 아버지 어머니 생신 이런 시댁 행사에 출장을 가느라 두 번 빠진 것 말고는 한 번도 빠져보지 못했다. 물론 일을 핑계로 빠질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우선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그리고 둘째는 부모님께 내가 그렇게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행동에 우리 부모님의 명예가 달려 있는데 좀 편하자고 부모님 얼굴에 먹칠하기는 싫다.
나도 명절에 바라는 일이 몇 가지 있다.
우선은 제상에 올릴 음식에 좀 융통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셨던 음식이든지, 미리 해 둘 수 있는 음식이든지 하여튼 제삿날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 또 항상 일정한 음식만 해야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정성이 깃들어 있다면 조상님이라고 왜 날마다 드시던 것만 드시고 싶을까? 지금 제사 음식은 100년 전이라면 정말 초호화판이었겠지만 현재는 대부분 아니다. 거기다 많은 아이들이 제사 음식이 살찐다고 제사에 안 오려고 한다. 그러니 제사도 좀 소비자 기호에 맞게 움직여줘야 하지 않을까.
또 하나 제사에는 남자들의 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남자들은 일하느라고 언제나 피로한데 명절까지 남자를 부려 먹어야 하겠느냐고 얘기한다.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그 말 속에는 현재 여자들을 부려 먹고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어떤 일을 준비하는 데는 다양한 사람의 능력과 의견이 들어갈수록 결과가 좋아지게 마련이다. 여자들만 제사를 준비하다가 보니 문제점이 있어도 개선되기가 힘들다. 그리고 그 제사는 누구 조상의 제사인가. 솔직히 자신의 조상을 모시는 일에 정작 본인들은 드러누워 TV나 보고 있는 것을 조상님들이 아시면 좋아하실까.
몇 년 전에 안동 권씨 재실에서 시제를 준비하는 과정을 본 적이 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께서 의관을 갖추시고 제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시는데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여자들은 제상에 올릴 음식을 만지지 않는다고 한다.
<톰 소여의 모험>에 이런 대목이 있다. 톰 소여가 벌을 받느라고 커다란 담벼락을 칠해야 하는데 톰 소여는 그 담벼락을 아주 정성스럽게 그리고 너무 신나게 칠하기 시작했다. 놀리려고 온 아이들은 그의 신나는 표정을 보고 자기도 하고 싶어졌다. 톰에게 좀 시켜달라고 하자 그는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은 자기가 아끼던 장난감을 그에게 주고 담벼락 1미터를 칠할 자격을 얻었다. 그날 오후 톰 소여는 그 담벼락을 다 칠하는 대신 한 무더기의 전리품을 얻을 수 있었다.
정말 하기 싫은 일과 정말 하고 싶은 일의 구분은 누가 짓는 것일까? 명절을 하기 싫어서 억지로 해치우는 품목에 처박아 두지 말고 좀 더 신나고 생산적으로 개선할 품목으로 옮겨보자. 사실 파티가 별거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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