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송이 복수초가 정답게 피어 있다. 갓 피어난 꽃과 활짝 핀 꽃이 솔우와 동네 할머니를 연상케 한다.최종수
동네 할머니와 동네 어린아이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 웃음꽃까지 활짝 피우면서 말이다.
"우리 동네 천사, 솔우 맘마 많이 먹었어."
"고기랑 먹었어. 할머니도 먹었어?"
"으응∼ 찬밥 물 말아서 때웠어!"
"할머니 국 말아먹어야지."
"솔우는 국 말아먹었어?"
"으응∼"
"그래서 우리 솔우 배가 통통하구나. 어디 배꼽 좀 보자!"
"싫어, 창피해∼"
솔우는 친할머니와 동네 할머니가 평소에 나누던 대화를 익히 알고 있었다. 솔우는 친할머니의 대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네 할머니와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3살배기 솔우, 사람이 그리운 동네 할머니의 지독한 외로움을 치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멀리서 넋을 잃고 손녀와 동네 할머니의 흐뭇한 풍경을 바라보던 친할머니가 손짓을 한다. 솔우와 동네 할머니는 관심밖이다. 손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 자리에 복수초 세 송이가 정겹게 앉아 있었다.
"이 세 송이 크기가 다르잖아요. 조금전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 같지 않아요?"
"나란히 앉아 있는 이 큰 꽃은 동네 할머니이고, 이 꽃은 솔우 것이고, 저 꽃은 제 꺼란 말이죠?"
"요즘 손녀를 키우면서 많이 배워요. 종종 손녀와 동네 마실을 나가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이 보이면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달려가는 거예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큰 소리로 '할머니! 할아버지!'를 부르며 뛰어간다니까요. 그러니 동네 어르신들이 다 예뻐하죠."
할아버지도 뒤질세라 손녀 자랑을 거든다.
"저 할머니는 허리도 꾸부정하게 굽고 눈도 잘 안 보여요. 기력까지 없으시니까 빨래도 자주 못하시죠. 그래서 옷차림이나 모든 것이 형편없어요. 어린아이 눈으로 보면 무섭게 보일 만도 한데 할머니만 눈에 띄면 '할머니'하고 달려가는 거예요. 참, 신통해요."
자식과 손자 자랑은 팔불출이라 하지만 차이가 있다. 자식 자랑은 낯부끄러워서 하기 어렵지만 손자 자랑은 낯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내리 사랑이라 그런가 보다.
설이 지나 이제 네 살인 솔우는 길가에 앉아 동네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 중이다. 한 뿌리에서 나란히 한 가족으로 피어오르는 복수초 같다. 손잡고 땅 속에서 나오듯 사람도 어깨동무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행복은 복수초처럼 손잡고 피어서 함께 햇살을 받으며 바람에 도란거리는 풍경이라는 것을, 어른들이 잊어버린 것을 어린 솔우는 알고 있는 것일까. 길가에 나란히 앉아 복수초처럼 도란거리는 풍경을 축복하듯 햇살이 화창하게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