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아랍 주전자와 커피잔
오늘날 세계적으로 거래되고 있는 상품 가운데 원유 다음으로 많이 거래되는 것이 커피다.
흔히 커피하면 생산지로 브라질을, 최대 소비국으로 스타벅스와 머그컵의 미국을 연상하지만 실제 커피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발견되어 아랍을 거쳐 전파되었음을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
에티오피아에서 600여년 전 최초 발견된 커피는 당시 교역의 중심 예멘을 통해 인근 아랍 국가로 수출되기 시작되었고 이후 터키와 이란 등지로 수출지역을 확대해 나갔다.
가화(Gahwah) 혹은 카화(Qahwah)로 불리우던 당시의 커피는 곧이어 사막 민족 베두윈들이 즐겨마시는 연한 커피 '가화 사드(Plain)'와 터키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진한 커피 '가화 아라비아(=터키식 커피)'의 두 종류로 나뉘어 발전된다.
아랍어로 커피를 의미하는 가화가 'w' 발음이 없는 터키로 들어가며 카베(Kahve)로 불리다가 나중에 카페(Cafe), 커피(Coffee)로 불리게 된 것이다.
당시 수출항으로 명성을 떨쳤던 알 무카(Al Mukhaa) 항구의 이름에서 모카(Mocha) 커피의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되어 예멘에서 수출되기 시작한지 200여년이 지나게 되자 차차 커피의 명성이 유럽에까지 알려지기 시작한다.
마침내 커피 종자를 몰래 훔쳐간 네덜란드 상인에 의해 기후 조건이 비슷한 인도네시아에서 대량생산이 시작되자 예멘의 독점 시대가 막을 내리고, 대영제국은 곧이어 나이지리아와 자메이카 등지로 재배지를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전래 과정이다.
커피 권하는 사회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같은 영화를 통해 아랍을 간접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아랍하면 생각나는 것'을 들어보라면 사막을 배경으로 삼아 천막을 치고 이동하며 살아가는 베두윈 민족을 떠올린다.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 찾을 수 없는 사막을 지나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천막의 모습이 보이면 더위에 지친 나그네는 물이라도 한 잔 얻어마시고 지친 낙타와 함께 쉬고갈 요량으로 걸음을 재촉하는 그 정경이 다름아닌 베두인 생활이 아니던가.
더위를 피해 헐떡거리며 천막 속으로 들어온 나그네를 위해 한 잔의 차와 더불어 오아시스에서 길어온 시원한 냉수 한 잔을 준비하는 것 만큼 더 고마운 선물이 또 무엇이 있을까.
매일 만나는 사람인데도 만날 때마다 몇 차례에 걸쳐 서로간의 뺨을 부비고 한참에 걸쳐 유일신 알라로부터 시작해 가족의 안부까지 장황하게 인사말을 교환하는 풍습도 다 따지고 보면 이런 황량한 사막에서의 반가운 만남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랍을 여행하며 가정 초대를 받거나 비즈니스 출장을 위해 아랍 회사의 사무실을 방문해 보면 으레 권하는 차가 사막 한 가운데서 대접받던 바로 그 베두윈식 커피와 시원한 물 한 잔이다.
조그만 간장 종지 여러 개를 포개어 들고 들어온 사환이 따라주는 찻 잔을 잠시 들고 있노라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사환의 모습에 영 신경이 쓰인다. 혹, 내가 마신 잔을 아예 챙겨서 나가려고 그러나 싶어 친절하게 '원샷'으로 마신 뒤 잔을 건네주면 기다렸다는 듯이 또 한 잔 가득 따른다.
다 마신 빈잔을 들어 좌우로 흔들어 "나는 더 이상 안 마실거야"라는 단호한 신호를 보여주지 않는 한 사환의 차 공세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아랍은 사막 한 가운데서 더불어 살아가는 차 권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