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142회

등록 2007.02.28 08:20수정 2007.02.2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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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위의 몸이 아주 느릿하면서도 부드럽게 회전하면서 그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속도가 빨라졌다고는 하나 답답할 정도로 느린 움직임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옥기룡이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쪽으로 향했고, 느릿하게 자신을 향해 일권(一拳)을 뻗는다고 느끼는 순간 옥기룡은 가공할 경력을 느끼며 다급한 숨을 들이 쉬었다.

‘헉…!“


@BRI@아주 단순한 동작이었다. 평범한 기마자세에서 오른쪽 주먹을 뻗고, 왼쪽 다리를 살짝 들어 올리며 내딛는 모습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저 공격을 파해할 방도가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또한 그에게는 더 이상 생각할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스으…으….

분명했다. 장문위는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일권을 뻗었고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무형(無形)의 권력(拳力)은 단순하게 느낌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허공을 격하여 무형의 권풍(拳風)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이다. 옥기룡은 가볍게 몸을 비틀며 어기충소(馭氣沖宵)의 수법으로 허공에 솟구쳐 올랐다.

파파파팍팍---!

그가 몸을 숨기고 있었던 나무에서 파편이 일며 마치 도끼로 팬 듯한 자국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대단한 위력이었다. 장문위와의 거리는 거의 삼장(三丈)이 넘은 것 같았는데 그 사이를 격하여 주먹으로 저러한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장문위의 무공수위가 이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초절정의 고수 대열에 올랐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너는 이제 남이 무공 수련하는 것을 엿보는 나쁜 취미까지 가지게 된 모양이구나.”


옥기룡이 채 지면에 날아 내리기 전에 장문위가 한쪽에 놓여있는 깨끗한 천을 집어 들며 한 말이었다. 그는 차가운 새벽임에도 이슬이 내린 것인지 아니면 땀이 난 것이지 모르지만 벗은 상체에 묻어있는 물기를 천천히 닦아냈다.

“죄송하게 되었소.”


옥기룡은 가볍게 장문위의 앞에 내려서면서 얼른 포권을 취했다. 무림에서 타인의 연무를 지켜보는 것은 금기(禁忌)에 속하는 일이었다. 들키는 날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할 일이었다. 또한 아무리 동문수학하고 있는 사형제 간이라 해도 홀로 연무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스스로 삼가야 하는 묵계(黙契)와도 같은 것이었다.

“일이 있어 이곳에 들렀는데… 사형의 연무 동작이 너무나 뛰어나 눈을 떼지 못하고 잠시 지켜보게 되었소. 용서하시오.”

태도는 너무나 정중하고, 사과하는 모습은 진실 되어 보였다. 이것이 옥기룡의 장점이었다. 그는 완벽히 자신의 내심을 감출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진실 됨을 믿게 하는 타고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하찮은 모습에 네 눈을 버리게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옥기룡의 사과에 장문위는 더 이상 탓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곳에 왜 왔느냐고 꼬치꼬치 캐묻지도 않았다. 항상 그래왔듯이 뛰어난 사제에게 약간 양보하는 모습이었다.

“별 말씀을… 사형의 무위가 너무나 고절하여 이 못난 사제는 뜻밖에 안계(眼界)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소.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더니 이 사제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사형의 무위를 보게 되어 영광이외다.”

“하하… 그만 놀리게. 이 우형은 사제의 칭찬에 어지럽구먼.”

장문위는 옥기룡의 칭찬이 싫지만은 않은지 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이제 상체의 물기를 다 닦아냈는지 한쪽에 널어 둔 옷가지를 집어 걸쳤다.

“놀리다니? 이 사제는 오늘에야 사부님의 뒤를 이어 중원 제일인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분이 사형이라 생각하게 되었소. 만천성우 중 표연부영(飄然浮榮)을 권으로 바꾸어 완벽히 펼칠 수 있는 분은 오직 사형뿐일 거요.”

“허허… 소제의 완벽한 어기충소의 수법은 이미 사제의 무공수위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것… 어찌 그 정도로 사제의 옷깃 하나 건들 수 있겠는가?”

“하하… 소제로서는 감히 맞받아 칠 도리가 없어 몸을 날린 것뿐이지요.”

“그럴 리가?”

장문위는 옷깃을 여미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제라면 충분히 파해할 방도가 있었을 게야. 그러지 않고 피한 것은 이 우형의 낯을 세워주기 위함이었겠지.”

장문위는 스스로 옥기룡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고, 그것이 부끄러운 일도 아니라는 듯 감추려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매우 흥미가 당긴다는 듯 물었다.

“어떤가? 그것은 자네 말대로 표연부영(飄然浮榮)의 초식에 본가(本家)의 권법을 가미한 것인데 파해할 방도를 찾는다면 몇 가지나 될 것 같은가?”

“몇 가지라니.? 무슨 그런 겸손의 말씀을. 소제는 정말로 감탄했소. 물론 연구를 한다면 그 방도야 겨우 찾을 수 있겠지만 지금 당장으로는 생각이 나지 않는구려.”

“허… 그렇게 비위나 맞추는 소리 말고 한 수 가르쳐 주게. 이 우형은 정말 자네의 생각을 듣고 싶다네.”

“어찌 감히 제가 사형의 무위를 평가하겠소?”

옥기룡은 재차 사양하는 듯 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장문위의 눈길에 하는 수 없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사형의 표연부영에는 날렵한 대신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묵중함이 깃들여 있고,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만변(萬變)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 쉽사리 파해할 수 없을 것이오. 다만 소제의 단견(短見)으로는 수혼천간(搜魂天竿)의 초식으로 사형의 권력을 흐트러뜨리고 용형파천(湧瑩破天)으로 허리를 공격했을 거요.”

수혼천간(搜魂天竿)은 혈간의 선인천간(仙人天竿) 중 한 초식이고, 용형파천은 만천성우 중 온 몸을 무쇠처럼 만들어 몸으로 공격하는 초식이었다. 근접한 거리에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용형파천은 전신의 기를 폭발시키며 뿜어내는 것이라 일시적으로 진력이 심하게 소모되는 약점이 있었다. 장문위는 옥기룡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맞아. 자네의 예리한 안목과 정확한 지적은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하는군. 혈간 어른의 수혼천간과 본보의 용형파천이라면 충분할 터이지.”

장문위는 옥기룡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는 듯 보였다. 확실히 옥기룡의 안목은 놀라웠다. 짧은 순간이나마 자신이 펼친 표연부영의 특징과 위력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옥기룡이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부언했다.

“또한 이미 사라져 듣기만 했지만 구룡 중 금룡(金龍)의 금강단혼수(金剛斷魂手)라면 어떨지 모르겠소. 아마 너무나 강함을 추구하는 무공들이라 동패구상의 결과가 나오지 않을지.”

장문위는 또 다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나 역시 금룡의 신위는 극강하다고 들었다. 그의 손에 오히려 보검이 부러진다고 하니….”

“소제가 주제넘게 말씀드렸소.”

“원 무슨 말을. 너의 안목은 항상 이 우형의 둔한 머리를 깨우고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구나.”

장문위는 진심으로 옥기룡의 지적을 받아들이겠다는 듯 다가가 옥기룡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들의 말과 행동으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우애가 깊은 사형제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장문위는 내심 한 가지에 대해 마음에 걸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다행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금룡의 금강단혼수를 익혔다는 말이로군. 그 대신 사부님의 심인검은 아직도 완전하게 깨우치지 못했다는 것이고….’

만약 사부의 심인검을 깨우쳤다면 옥기룡은 심인검의 초식 중 하나를 지적해 냈을 터였다. 장문위가 표연부영을 익히면서 가장 꺼려했던 바로 그것을….

그들 사형제는 동시에 미소를 띠고 있었는데 누가 보더라도 아주 우애 있는(?) 사형제의 모습이었다. 허나 그들은 내심 동상이몽을 하고 있는 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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