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사랑 안하면 어쩔 거야 얼마나 잘하는데"

'된장아줌마' 김영란씨가 전하는 '이것이 인생이다.'

등록 2007.03.06 21:05수정 2007.03.0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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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만든 청국장 환을 들어보인 김영란씨에게 "모델 뺨치겠다"는 말을 건네자 환하게 웃어보이고 있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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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원을 찾은 방문객에게 고추장을 선뵈고 있는 김영란씨 ⓒ 이화영

퍼주기 : 모전여전, 부창부수 - 퍼주기 좋아하는 부부

음식솜씨가 남달랐던 김영란씨의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내 집에 온 사람 절대로 그냥 보내거나 맨입으로 보내면 안 된다"고 항상 강조했다. 식구들의 밥은 못 챙길지언정 집에 찾아든 보부상들의 식사는 반드시 챙길 정도였다.

@BRI@김씨도 어머니를 닮았는지 음식 솜씨가 뛰어났고 남에게 퍼주기를 좋아했다. 장 담그기는 실력이 뛰어나 한식당을 운영하게 됐고 김장을 하거나 된장을 담그면 필요 이상으로 많이 해 어려운 이웃들과 나눠 먹었다.

특히 된장을 달라는 사람들이 많아 2가마니씩 장을 담가야 했다. 된장 담글 때가 되면 건조실이 따로 없어 집안 전체가 건조실로 변했다.

김씨의 남편인 한명석(51)씨는 8년 동안 자비를 들여 장애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장애인으로 등록시키고 권익보호에 앞장섰다. 그의 노력 때문인지 820명에 불과했던 음성군 등록된 장애인 수가 54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장애인들에 대한 지원이 인색하던 시절 이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쌀이 떨어졌다, 병원비가 없다'며 한씨 집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지만 이들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고통을 감싸 안았다.

이후 한씨는 음성군장애인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됐고, 보건사회부장관상 수상을 비롯해 신한국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는 음성군장애인복지관 재활상담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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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공학도인 막내 인수씨가 어머니를 돕고 있다. ⓒ 이화영

전통음식점을 운영하던 김씨는 된장과 청국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 지난해부터 음식점 문을 닫고 '선돌메주농원'이란 이름으로 본격적인 장 담그기에 팔을 걷고 나섰다. 컴퓨터 공학도인 막내 인수(28)씨가 서울 직장 생활을 접고 어머니를 돕고 있다.

"지금 익히고 있는 된장은 혼자 어렵게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담았어요. 장이 익으면 어르신들을 찾아 전달할 계획이에요." 지천명을 넘긴 김씨가 소풍가는 아이처럼 좋아한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진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고 싶어요. 형제자매지만 따로따로 입양돼 떨어지는 걸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정부에서 애들 많이 낳으라고 하기 전에 있는 아이들이라도 잘 키우는 정책으로 바꿔, 이런 부분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씨는 조심스럽게 희망을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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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딸의 은사님이 방문해 "장담는 일을 해보고 싶은데 비결을 알려 달라"고 하자 김영란씨가 "맨입으로 안 되죠"라는 농담을 건네고 있다. ⓒ 이화영

사랑하는 가족 : 무뚝뚝한 남편이지만 사랑의 원동력

눈물과 기쁨으로 삶을 녹여내는 5시간 동안 '항상 긴장, 정말 힘들게, 목숨 걸고' 등의 단어들이 반복돼 등장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얘기를 꺼내자 엄마와 아내의 모습으로 김씨의 얼굴엔 온화한 미소가 번졌다.

"첫 아이가 태어났을 때 손가락 발가락은 제대로 있는지 확인했어요. 가장 큰 걱정이 아이들의 건강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세 아이가 모두 건강하게 태어났고 자라줬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고맙고 신통했던 것이 아빠에게 업어달라거나 밖에 나가서 놀아달라는 말을 하지 않은 거였어요."

인터뷰 하던 도중 시집간 두 딸의 중학교 은사님이 찾아왔다. 학교를 졸업한 지가 15-17년이 지났지만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 사람을 귀히 여기는 김씨의 대인관계를 엿볼 수 있었다.

"제가 등산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한번은 지나는 말로 등산화에 대한 불만을 말하자 기억하고 있었는지 새 등산화를 인터넷으로 구입해 주더라고요. 이번엔 등산화가 무겁다고 하자 운동화도 사주고요."

무뚝뚝한 남편과 32년간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 일 없다는 김씨지만 은근한 남편자랑에 어깨를 으쓱해 한다. '표현은 안 하지만 마음으로 사랑하시는 것 같다'고 하자 "자기가 나를 사랑 안하면 어떻게 할 거예요. 내가 얼마나 자기한테 잘 하는데..."라며 웃음보따리를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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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여유가 생겨 행복하다는 김영란씨. 굴곡이 심했던 인생만큼 깊은 맛을 내는 장을 선보이길 기대한다. ⓒ 이화영

남편 한명석씨는 전화통화에서 "이런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집사람이 다른 건 못해도 음식 하나는 잘해요. 음식점을 할 때 남은 음식 싸가는 것이 솔직히 번거롭잖아요. 그런데 먹고 남긴 된장찌개를 싸달라는 사람이 많았어요"라며 아내의 손맛을 인정했다.

김씨를 장류 사업과 관련해 알게 됐다는 음성군농업기술센터 전향화(38)씨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생활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며 "잠자는 시간마저 아까워하는 사람이고 삶을 향한 에너지가 넘쳐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전달하는 분"이라고 전했다.

김씨는 요즘 자기 시간이 생겨 너무 행복하단다. "정말 하고 싶었던 된장 담그는 일을 하게 됐고요. 남편 출근시키고 세수하고 차 마시는 오전 1시간이 주어져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남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혼자 밥 먹는 것도 너무 좋아요."

아플 시간조차 없어 병원 갈 일이 없었던 김씨는 혈액형이 O형인 줄 알았다가 얼마 전에야 AB형인 걸 확인했다. 혈액형 궁합 중 결혼 가능성이 희박하고, 가정을 꾸린 부부 중 '사이가 좋다'는 응답이 50.3%로 가장 낮은 AB형을 가진 부부다. 하지만 이들 부부 집에선 행복이 곰삭아 가고 있다.

"남편과 결혼한 걸 후회해 본 적이 없고, 지금까지 살아온 게 꿈 같다"라고 말한 김씨는 오늘도 변함없이 된장에 손맛을 녹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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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씨는 메주콩이 보관되어 있는 창고에 들어서면 세상을 얻은 것처럼 행복하단다. ⓒ 이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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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메주농원 전경 ⓒ 이화영


음력 정월에 담근 장맛이 최고
김영란씨가 전한 맛있는 장 담는 법

▲ 김영란씨가 맛있는 담그는 비결을 공개하고 있다.
1. 시기 : 보통 정월 장(음력)이 가장 맛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계절에 따라 소금의 분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온이 높은 때는 짜게 담가야 하므로 맛이 적다. 좋은 장을 담그려면 음력 1월을 넘기지 말고 담는 것이 좋다.

2. 메주 씻기 : 잘 띄운 메주를 장 담기 2일 전에 깨끗이 물에 씻어 다시 말린다.

3. 소금물 만들기 : 장 담그기 전날 소금을 소쿠리에 넣고 물을 위에서 부어 소금물을 만든다.
- 2월경 : 물 10ℓ에 소금 3ℓ
- 3월경 : 물 10ℓ에 소금 4ℓ
- 4월경 : 물 10ℓ에 소금 5ℓ
- 소금물에 계란을 띄워 500원짜리 동전만큼 떠오르는 것으로 염도를 조정하기도 한다.

4. 항아리 소독하기 : 항아리에 참기름과 꿀 한 스푼씩을 넣고 빨갛게 달군 숯을 넣어 주면 연기가 나기 시작한다. 뚜껑을 덮어 연기로 항아리를 소독한다.

5. 담 기
- 독에 메주를 어슷하게 담고 그 위로 소금물을 붓는다.
- 메주 1말에 소금물 3~4말을 붓는다.(소금물을 많이 부으면 간장이 많이 나온다.)
- 소금물 위에 통고추, 대추, 달군 숯을 넣는다.
※ 고추 :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은 유해미생물의 생장을 억제
대추 : 감미를 부여
숯 : 나쁜 냄새 성분을 흡착하고 곰팡이 독소를 제거
- 망사를 꼭 씌워 해충과 이물질의 혼입을 방지한다.
- 햇볕을 잘 쬐어 45일 후에 된장과 간장을 가른다.

6. 조선간장으로 진간장 만들기 : 된장과 분리된 간장이 조선간장이다. 조선간장으로 진간장을 만드는 방법은 볶은 멸치와 양파, 무, 다시마, 검은콩을 자루에 넣고 조선간장과 함께 다린다.

서늘한 곳에서 식혀 40-45일이 지나면 진간장이 되며, 저온에서 장기간 발효시키면 깊은 맛을 낸다. 조림, 찜, 볶음 등의 요리에 사용한다. / 이화영

덧붙이는 글 | 이화영 기자는 공무원노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화영 기자는 공무원노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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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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