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무엇으로 평가해야 하는가?

모든 어린이는 시험 문제로 평가하기엔 너무 위대한 존재

등록 2007.03.12 09:36수정 2007.03.12 09:3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 기초학력 평가가 있다고 한다. 딸은 이제 2학년이 되어 학교에 간 지 3일이 되었다. 새학기가 시작된 지 며칠되지 않아서 시험이라는 달갑지 않은 것을 만나게 된 것이다.


"수요일 시험이래."

조심스럽게 딸의 눈치를 보았다. 딸은 미간을 약간 찌뿌린다. 이제 9살의 아이도 시험은 싫은 모양이다. 그러나 별 수 없다. 학교에 다니는 이상 시험은 피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딸이 학교에서 시험을 본다고 하니 불현듯 딸이 유치원 다닐 때가 생각이 난다.

@BRI@딸은 7세에 유치원에 입학하여 다녔다. 6세에도 유치원 입학은 했지만 사정상 2주를 다니고 더 이상 다니지 못했다. 6세에 잠깐 딸이 유치원을 다닐 때, 나도 딸과 함께 유치원을 다녔다.

유치원 첫날 딸 반 선생님은 커다란 동시판을 앞에 세우더니 "읽어볼 사람 손들어 보자"라고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딸은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면서 번쩍 손을 들었다. 걸음도 당당하게 앞으로 나간 딸은 결국 선생님과 함께 동시를 읽고 들어왔다.

나중에 선생님께 알아보니 딸 반에서 한글을 못 읽는 아이는 딸 외에 딱 한 명이 더 있었다. 30여명의 아이들 가운데 90% 이상이 한글을 읽고 쓰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순간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딸에게 글자를 가르치려고 해 본 일이 없었다. 딸은 글자에 별 관심도 보이지 않았고, 맞벌이로 나름대로 바빴던 나는 짬이 나는 대로 책을 잠깐 읽어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내 태도가 딸을 이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어찌됐든 딸은 그 반에서 하위 10% 안에 가뿐하게 들었다. 나는 당시 당혹스럽기도 했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당시 딸은 태어난 지 50개월을 넘긴 상태였다. 딸의 생일이 늦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딸과 같은 반 친구들은 대략 60개월 내외의 아이들일 텐데 어떻게 저렇게 완벽하게 한글을 읽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유치원엔 6세 반이 3개였고, 한 반에 약 30명 가량의 아이가 있었다. 딸은 5세 때엔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딸 반이 그나마 그 유치원에서 실력(?)이 가장 미약한 반이었다.

딸이 유치원을 거부해서 2주 만에 유치원을 그만 두었고, 나는 비싼 입학금과 기타 유치원 수업료 등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 했다. 딸은 유치원을 거부한 지 몇 달이 지나자 다시 다닐까 갈등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나는 딸에게 권유하지 않았고, 딸은 그렇게 망설이다가 7세가 되었다.

나는 딸에게 한글을 웃으면서 가르쳐 보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제 자식 공부를 가르치는 일이 그렇게 맘대로 되는 일이던가? 공자도 포기한 일을 해내려고 하면 할 수록 딸에 대한 실망과 나에 대한 절망은 커져만 갔다. 결국 한글을 띄엄띄엄 읽는 수준에서 딸은 7세가 되었다. 7세가 되자 딸은 아무런 주저함 없이 다시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고, 우리집은 그 사이 이사를 했다.

7세가 되어 유치원에 들어간 딸 반에서 한글을 제대로 못 읽은 아이는 딸 하나 였다. 아이들은 딸을 놀렸다. 동생과 터울이 크게 져서 집에서 귀하게 큰 딸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다. 자신의 지적 능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였다.

딸은 손의 근육이 유난히 발달하지 않아서 글씨도 잘 쓰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이 빨간색으로 칠하는 그림을 딸이 같은 색으로 칠하면 분홍색이 될 만큼 딸은 손에 힘을 키우지 못했다. 그런 딸에게 연필을 잡고 글씨를 써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였다.

돌이켜보니 딸보다 아마 내 자존심이 더 상했던 듯싶다. 세상에 내 딸이 이럴 수가! 나도 나름 공부를 했었다면 했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내 딸이 이렇게 형편없다니…. 나는 딸에게 실망을 한 연후에는 화가 났다.

아무리 내가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다 하더라도 동급생들에게 놀림감이 되는 딸만했겠는가? 딸은 글씨도 못 쓰고, 그림도 잘 못 그리고, 말도 잘 못 한다고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했다. 딸이 어떻게 7세에 꿋꿋하게 유치원을 다녔는지, 이제 와서 생각하니 딸이 귀하게 커서 연약하리라 생각해왔는데 제 딴에는 강한 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저러한 사연이 하나 둘씩 생겨나가면서, 딸은 유치원을 졸업했다. 딸이 유치원을 졸업할 무렵 유치원에서는 사실 딸에게 초등학교 입학을 일년 유예할 것을 조심스레 권했다. 그러나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간 큰 엄마였던 것이다. 나는 딸아이가 학교 생활을 잘 해 나갈 것을 믿었고, 딸이 학교 생활을 힘들어 한다면, 딸만의 문제는 결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학교에 들어간 딸은 유치원보다 학교 생활에 더 잘 적응해 나갔다. 한글도 빠른 속도로 깨우쳐 나갔다. 간혹 예고하지 않은 받아쓰기에서 10점을 받아오는 경우가 있었으나, 나는 그런 것으로 딸에게 야단을 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야단을 쳤다. 나는 예수그리스도도 석가모니도 아닌 그냥 깨닫지 못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딸은 수학도 힘들어했다. 그러나 절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도 나와 딸이 유치원 생활에서 단련이 되었나 보다. 나는 딸에게 연산을 기초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딸은 귀찮아 했지만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는지 투덜대며 교재에 손을 댔다. 늦된 딸에게 연산을 가르치면서 나는 초등학생을 위한 교재가 정말로 많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교재 가운데 옥석을 가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신경을 쓴다면 문제집 값외에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고, 딸의 교육이 가능하리란 확신도 들었다. 딸을 내 손으로 지도하면서 나는 딸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나는 딸이 대단히 영리한 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딸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나는 너무도 답답했다. 그건 아마도 내가 선생이고, 학생이 다름아닌 "내 딸"이어서 인 것 같다.

"아인슈타인도 학교에서 시험문제로 평가하기에는 열등생이었다. 그건 아인슈타인이 멍청해서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시험문제로 평가하기에는 너무도 위대한 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신기한 스쿨버스>의 저자가 했던 말이다. 나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더하고 싶다.

"모든 아이는 가슴 속에 위대한 씨앗을 품고 있기에 아이들을 시험문제로 평가하는 것은 싹을 말라 죽게 하는 것이다."


3월이 되었으니 학교 생활을 시작한 지 일년이 지났다. 딸은 여전히 한글 받침과 띄어쓰기를 어려워하고, 난이도 있는 수학문제는 힘들어 한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되뇌인다.

"모든 어린이는 시험문제로 평가하기엔 너무도 위대한 존재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얼마전 EBS에 출연하여 이야기 하다가 못다한 말을 쓴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얼마전 EBS에 출연하여 이야기 하다가 못다한 말을 쓴 것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김건희 "우리 오빠" 후폭풍...이준석 추가 폭로, 국힘은 선택적 침묵
  2. 2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컴퓨터공학부에 입학해서 제일 많이 들은 말
  3. 3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4. 4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박근혜 탄핵 때와 유사...지역에서 벌어지는 일들
  5. 5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