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방북중인 이해찬 전 총리가 만수대의사당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환담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여전하다. 입을 다물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특사 아니냐는 궁금증을 자아냈던 이해찬 전 총리는 귀국 후에도 별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필요하긴 하지만 아직 논의할 때가 아니라는 기존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반면 이 전 총리를 동행했던 열린우리당의 이화영 의원은 가능성을 적극 개진한다. 그래서 더욱 헷갈린다.
어차피 안 될 일이다. 이 전 총리가 북한에 가서 남북정상회담을 논의했는지 안 했는지를 확인해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인지도 모른다. 뜸이 들기 전에 솥뚜껑을 열면 밥이 설익는다.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자. <한국일보>가 뉴스 하나를 내놨다. 우리 정부가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을 위해 현금 또는 현물을 북한에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부의 기존 입장은 송환 대가로 사회간접자본을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북한이 훨씬 선호하는 현금 또는 현물을 지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하고 있으며, 이 방안을 다음달 10일 열리는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제안할 계획이라고 한다.
상당히 예민한 문제다. 정부는 북한에 대한 현금 지원을 가급적 배제해 왔다. 북한에 건넨 현금이 군수자금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남한 내 보수세력의 정치 공세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정부가 이산가족 화상상봉 설비 구입용으로 북한에 4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데 대해 보수언론은 "대북 현금지원 불가원칙 왜 깼나(중앙일보)"라며 달려들고 있다.
인화성이 강한 문제를 정부가 자진해서 건드리고 있다. 그래서 궁금하다. 정말일까?
정부, 국군 포로 송환 대가 현금 지원 추진
때마침 다른 얘기가 나왔다. 이 전 총리가 귀국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북한이 전쟁시기와 그 이후 행방불명자 문제를 긍정적으로 검토해 적십자에서 논의해보자고 했다"고 말했다.
맥이 통한다. 현금 지원의 사실 여부를 떠나 남북 간에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문제가 본격 거론될 조짐을 보이는 것만은 분명하다.
창호지 구멍이 뚫렸다. 남북정상회담 개최 여부를 엿볼 수 있는 구멍이다.
납북자와 국군포로 송환문제는 남북정상회담에서, 또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하는 문제다. 그럴 이유가 있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은 6자회담장, 그리고 북미회담장이다. 북핵 문제가 위기 상황으로 치달을 때는 남북 정상이 만나 위기 돌파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지만 해결모드가 성립된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 남북정상회담의 주 의제가 북핵 문제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남북 정상이 만날 필요가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북핵 해결을 전제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아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정전협정 틀부터 깨야 한다. 하지만 난감하다. 이 문제도 남한이 전면에 나설 문제가 아니다. 정전협정 체결 주체는 북한과 미국이다.
그럼 남북 정상이 따로 만나 독립적으로 풀 문제가 뭘까? 바로 이 질문을 받자마자 뛰쳐나오는 게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문제다.
남북 경제협력 기조는 이미 잡힌 상태, 가속도만 붙이면 된다. 통일방안을 논의할 수도 있지만 그건 속도가 너무 빠르다. 6.15공동선언 이상의 합의를 도출하기는 현실적으로 무리다.
남은 건 남북간 화해와 교류에 방해가 될 수 있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다. NLL 재획정과 함께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문제가 맨 앞자리에 놓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구도 측면에서도 이 문제는 중요하다. 남북 간 화해와 교류를 안정화하기 위해서는 남한이나 북한 모두 내부 냉전세력의 도전의 싹을 잘라내야 한다.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문제는 NLL 재획정과 함께 반드시 풀어야 하는 전략과제가 돼 버렸다. 한정된 범위 내에서의 남북 교류가 아니라,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전면적 교류와 항구적 화해를 지향한다면 그렇다.
남북자·국군포로 송환과 NLL 재획정의 현실적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