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병원 응급실 모습(기사와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연합뉴스 한상균
"경험 있으신 분 있나요?"
열흘전 신체검사를 받을때 채혈을 했던 간호사의 질문. 그러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서로를 잠깐 쳐다볼 뿐이었다.
내가 있는 곳은 서울 강남구 소재의 한 병원 물리치료실. 이 곳에서는 지금 '생물학적동등성시험(생동성시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제약회사가 새로 신약을 만들고 시판 직전에 기존에 판매되고 있는 약과 생체적인 효과가 얼마나 동등한지를 측정하는 시험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은 일명 '마루타 알바'로 불린다. 피시험자 입장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약의 부작용을 걱정할 수 밖에 없다. 꺼려하는 사람들을 그래도 오게 하는 것은 높은 시험보상비용이다.
그러니까 '알바천국'에 올라와있는 정보를 보고 병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 당시, 나는 돈이 무척 궁했던 것이다.
오호라, 약을 2번 먹은 후 2박3일간 병원에서 자고 2주동안 왔다갔다하면서 채혈만 하면 50만원! 눈앞에 신세계가 열리는 듯 했다. 나와 같이 오늘 모여있는, 20명 남짓한 남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을까.
물리치료실은 원래 있어야 할 치료기구들이 치워지고 병원침대와 임시 간이침대만 가득 놓여, 마치 호화로운 군대 내무실을 연상케 했다.
[#1. 2월 24일 오후 6시 5분, 물리치료실] "금연하시고 물 드시지 마세요"
@BRI@"시간, 규칙, 그리고 질서. 이 세 가지는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간호사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말이다. 나를 포함한 24명의 피시험자가 다 모이자 그는 다시 한번 시험과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A·B조로 나누어서 시험을 받는다. 오늘 일단 같이 저녁식사를 한 후, 밤 10시부터 자게 된다. 다음날 아침, 투약 15분 전에 첫 채혈이 있다. A조는 현재 시판되고 있는 약을, B조는 제약회사가 새로 만든 신약을 먹게 될 것이다. 투약 후 각각 15분, 30분, 1시간, 2시간, 4시간, 6시간, 8시간, 10시간, 12시간, 24시간, 36시간, 48시간, 72시간째 됐을때 채혈을 실시한다. 24시간째 채혈 후에는 퇴원하고, 각 시간때 다시 병원에 와서 채혈을 실시한다. 일주일후에 같은 과정을 밟는데, 이 때는 A와 B조가 바뀐다….
박 간호사의 설명은 대개 이와 같았는데, 귀담아 듣는 사람은 별로 없어보였다. 그러나 금기사항을 설명할 때는 반응이 확연히 드러났다.
"금연하셔야 합니다. 오늘 밤 10시부터 내일 낮 12시 30분까지는 물을 드실 수 없습니다. 내일 아침 6시 30분에 기상합니다." 곳곳에서 한숨이 터져나왔다. 질문을 받겠다고 할 때도, 시험내용보다 '시험생활'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집이 바로 이 앞인데, 뭐 좀 가지고 오면 안 되냐"는 기막힌 질문도 있었다.
[#2. 같은 날 오후 6시 30분, 병원 근처 식당] 1명 '마루타' 포기했다
예약한 식당에서 25명의 남자가 떼거지로 5천원짜리 전주비빔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박 간호사와 일문일답.
- 이 생동성시험을 계속 담당하고 있나. 담당자 입장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
"맡은 지 꽤 됐다. 시간약속을 안 지키는 것이 가장 힘들다. 해보면 알겠지만, 이런 임상실험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 시험기간 내 금연이 힘들텐데, 몰래 흡연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그렇다. 목격했을 때는 시험보상비용에서 일정부분 삭감한다."
- 임상실험인데 사람들의 호응이 있는가.
"꽤 높은 편이다. 몇 번 하는 사람도 봤다. 생각과 달리 이 시험은 위험하지 않다. 투약한 약의 성분이 혈중농도에 유지되는 시간은 채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래도 시험이 위험해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시 돌아온 물리치료실. "얘기를 좀 해봐요." "그러니까 그게…" 간호사의 친절한 '솔'음에 이어 우물쭈물 낮은 '시'음. 우물쭈물씨는 곧 짐을 챙겨 돌아가고, 간호사는 예비순번 목록을 보면서 전화를 한다. 1명이 탈락했다.
[#3. 그날 밤 9시 20분, 물리치료실 라꾸라꾸침대] 그 예에엣날 군대 내무반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