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께 '장 독립'을 선언하다

장을 담가보니 선조들의 노고가 생각나

등록 2007.03.15 10:16수정 2007.03.15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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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이 있으니 든든하다.
장독이 있으니 든든하다.정명희
엊그제(12일) 장을 담갔다. 몇 주 전 시어머님이 메주를 주실 때 '길일'이라며 일러주었기에 기다렸다가 담근 것이었다. 내심 불안해 하는 어머님께 걱정 말라며 요즘은 인터넷이 선생이라 자료하나 복사하여 몇 번 읽으면 저절로 장 담는 방법을 숙지할 수 있다며 과장되게 떠벌렸다. 사실이 그러하기도 하고….


"아이고, 모르겠다. 너그들은 왜 그렇게 별난지. 그냥 주는 것 먹으면 될 거구마는. 주변엔 다들 갔다먹던데…."
"어머님, 그게 잘못된 거예요. 젊은 자기들이 배워서 거꾸로 갔다드리든가 해야지 왜 자기 자식들 대학가고 군대 갈 때까지 장을 얻어먹지요? 그리고 흔한 말로 물고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웃음)"
"오냐. 니 잘났다."

친정엄마는 자식들에게 무얼 바리바리 못 싸주어서 애를 태우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 시어머님은 반대다. 우리들이 그냥 시장에서 사먹어도 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이 사줘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분이다.

예를 들면 멸치가 제철일 때는 멸치 한 박스를, 감자가 제철일 때는 감자 한 박스를 최상품으로 사서 자식들 차 트렁크에 턱하니 실려 가는 것을 봐야 흐뭇해지는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김장독립', '간장독립' 얘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해서 진즉에 독립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하고 10년을 기다린 셈이다. 그러나 막상 독립을 하고 보니 10년을 기다릴 게 아니라 한 5년만에 그랬더라면 어머님도 우리들도 서로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장보다 더 쉬운 게 장 담기


장 담기를 하기 전에는 아무렴 김장보다는 장 담는 것이 당연 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막상 하고 보니 장 담기만큼 쉬운 것이 없었다.

메주는 며칠 전에 씻어 말려 놓고 장독은 역시 더운물로 씻어 건조시켜 놓는다. 그리고 소금물의 경우는 커다란 대야에 메주 양에 맞는 소금을 붓고, 이때, 주걱 같은 것으로 저으면 빨리 녹는다.


다 녹았을 때 날계란을 한번 띄워서 계란의 표면이 10원 동전만하게 떠오르면 알맞은 염도라고 하였다. 이때 많이 떠오를수록 염도가 높은 것이니, 좀 짠 장을 원한다면 500원 동전크기만큼 떠올려도 무방하였다. 나는 어떻게 하다 보니 100원 동전 크기에서 결론을 봤다.

염도를 결정하고 나면 소금물의 불순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채나 망사 천 같은 것으로 물을 한번 받쳐서 깨끗함의 정도를 살펴보고 경우에 따라선 시차를 두고 한 번 더 받친다. 그러면 아주 맑은 소금물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메주를 단지에 차곡차곡 쌓은 다음 메주가 푹 잠기도록 소금물을 부으면 끝이다.

옛 사람들의 장담기, 그 노심초사가 애잔해...

옛날엔 요즘처럼 베란다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 그 옛날 우리 조상 '할무이들'은 해마다 봄이면 장을 담고 뜨는 일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꼬?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어머니 세대만 해도 장 담는 일이 늘 큰일이었을 것이다. 장의 특성상 볕을 자주 쬐어주어야 하기에 볕이 좋은 날은 장독 뚜껑을 죄다 열어놓고 밭에 일들을 하러 갔다.

그런데 하필 예고 없이 소나기가 내려 빗물이 퐁당퐁당 열어둔 단지 속으로 들어가고 결과는 장맛이 싱거워지거나 못해지고 된장엔 불순물이며 더러 날아다니는 거사님(?)들이 익사하기도 하였을 터.

장맛은 음식의 기초이기에 장을 담그고 두 달을 기다려 간장 된장 분리를 하고, 또 두 달 숙성시키는 그 넉 달의 기간 동안 빗물, 이물질 세례 받게 하지 않으려 무척 노심초사 하셨으리라. 그렇게 애간장을 태우며 사오십년 장을 담가오신 어머니들을 생각하자니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났다.

옛날에 비하면 요즘은 장담기가 완전 땅 짚고 헤엄치기다. 도시의 경우 극성맞은 파리모기도 별로 없는데다, 시골이라 해도 투명한 장독전용뚜껑이 있으니 소나기건 장대비건 파리건 모기건 걱정이 없다.

하여간, 내가 담근 장독을 바라보자니 흐뭇하기 이를 데 없었다. 장을 뜨기까지는 앞으로 두 달 정도 기다려야 되는데 메주와 소금물이 만나서 이뤄낼 경이를 쭉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척 설렌다. 과연 어떤 장이 태어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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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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