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개헌'서 손 떼라

[하승수 칼럼] 18대 국회서 개헌 전제로 논의 시작하자

등록 2007.03.24 12:50수정 2007.07.06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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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8일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각 당이 당론으로 임기단축 등을 포함해 개헌을 `대국민 공약`한다면 개헌안 발의를 차기 정부로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요즘 이메일함을 열어보면, 정부부처들이 보내는 '개헌' 홍보메일들이 들어와 있다. 오늘은 국세청에서 보낸 메일이 와 있다. 국세청이 왜 이런 메일을 보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선택입니다"라는 제목의 메일이다. 내용을 보면 대통령 단임제는 문제고, 연임제는 다수 국민의 뜻이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일치가 되면 국가정책을 일관성있게 추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20년만에 온 기회이므로 올해에 개헌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주장도 들어가 있다. 과연 그런가?

20년만에 온 기회? 전혀 아니다

노 대통령은 자꾸 20년만에 온 기회이므로 지금 시기를 놓치면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설사 대통령 단임제를 대통령 연임제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꼭 지금 해야 할 이유는 없다. 다음 정권에서 대통령 단임제를 연임제로 바꾸어도 전혀 문제는 없다. 대통령 단임제를 대통령 연임제로 전환하는 것만으로 20년만에 온 기회라는 말을 쓰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핵심은 대통령-국회의원 임기일치에 있다. 노 대통령이 20년만에 온 기회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2007년 12월 대통령선거와 2008년 4월의 국회의원선거가 시기적으로 붙어 있으므로 지금 개헌을 해야 대통령-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기 좋다는 논리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에서는 "20년만에 온 기회"라는 말은 전혀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다.

대통령-국회의원 임기일치가 만능인가?

우선 대통령-국회의원을 동시선거(또는 1개월 정도의 시차로 붙여서)로 뽑는 것은 특정정파가 대통령과 국회다수를 동시에 장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소위 '여소야대'에서 비롯된 '분할정부'가 문제이므로, 가능하면 '여대야소'가 되도록 인위적으로 제도를 변경하자는 말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우선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 상황에서 '여대야소'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자칫 특정 정파의 독주가능성을 허용하는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국회의원 동시선거를 해서 대통령의 소속정당이 국회의석의 2/3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이 되면, 특정정파가 독주해서 헌법개정(개헌)을 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4년의 임기동안에는 대통령과 국회 다수를 안정적으로 장악하게 되므로 어느 누구도 견제하기가 어렵고, 일방적인 독선과 전횡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대통령 연임제와 맞물리면 장기집권 획책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오면 87년 헌법을 통해 그나마 정착시켜온 대의민주주의의 기초마저도 위협받을 수 있다.

지금도 지방선거의 경우에는 집행부의 수장(시ㆍ도지사)과 지방의원을 동시선거로 뽑고 있다. 그 결과를 보라. 2006년 지방선거에서 광역의회 의원(시ㆍ도의원)의 경우에는 특정 정당이 전국적으로 76%의 의석을 차지했다. 2/3를 훨씬 넘는 수치이다. 서울, 경기, 인천의 광역의회를 보면 지금 특정정당이 90%가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결과가 총선이라고 나타나지 않는다는 법이 있는가?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 시차가 발생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견제와 균형'을 위해 바람직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마치 시차선거가 모든 문제의 근원인 것처럼 돌려세우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미국도 동시선거제로 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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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8일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각 당이 당론으로 임기단축 등을 포함해 개헌을 `대국민 공약`한다면 개헌안 발의를 차기 정부로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이 특별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던중 기침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미국이 대통령과 의원선거를 동시에 한다지만, 그것은 우리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은 하원의원 임기가 2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대통령 선거 이후 2년만에 중간평가 성격의 의원선거를 치르게 되고 하원의 구도가 급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상원의원의 임기가 6년이고, 대통령선거와 동시에 치르는 상원의원선거에서는 전체 상원의원의 1/3만이 교체되기 때문에 대통령과 상원의원의 임기는 일치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하원(2년)-대통령(4년)-상원(6년)의 임기를 다르게 하고 동시에 완전교체가 되지 않도록 한 것은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한 미국 특유의 장치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에는 그런 최소한의 장치도 없이 대통령-국회의원의 임기일치가 만능인 것처럼 주장되고 있다. 이것은 87년 헌법의 최소한의 성과마저도 위협할 수 있는 주장이다.

만약 대통령-국회의원 임기일치에만 집착하지 않는다면 개헌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충분히 논의해 가면서, 그리고 기본권, 민주주의, 시민참여, 지속가능사회 등의 관점에서 논의되어야 할 중요한 주제들까지 논의해 가면서 진행해 나갈 수 있다. 대통령 연임제에 대해 제기되는 우려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하고 논의할 수 있다.

개인적인 소망으로 개헌을 한다면 사법개혁이 중요한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언제까지 전관예우와 '그들만의 리그'식의 법조계를 국민들이 두고 보아야 하는가? 그러나 이 모든 내용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라도 앞으로의 과정이 중요하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개헌논의를 제대로 해 볼 수 있는 여건은 되어 있다. 야당의 입장도 개헌의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고 대통령 연임제 외에도 논의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헌은 내년 총선이후에 치러질 18대 국회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하고, 지금은 좀더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시켜 나가면 된다. 대통령-국회의원 임기일치에만 집착하지 않으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해법은 18대 국회에서의 개헌을 전제로 논의를 진행시키는 것

지난 몇 년간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개헌논의가 진행되었고, 한나라당 소속의원들조차 개헌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이 개헌추진 발표를 한 이후에 이 모든 논의들이 혼선에 빠졌다. 노 대통령의 개헌추진이 의미가 있다면, 개헌논의를 수면위에 올렸다는 것이다. 이제라도 노 대통령은 그 점에서 의미를 찾고, 나머지는 국회와 국민들의 몫으로 맡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헌법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런 과정을 제안해 본다. 첫 번째는 노 대통령이 무조건적으로 개헌 발의를 유보하고, 이후의 논의를 국회와 국민들의 몫으로 넘기는 것이다. 이렇게 만 한다면, 개헌논의를 수면위에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노 대통령이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국회에서는 17대 국회내에 개헌발의를 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국회내에 초정파적인 개헌연구기구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구에서 개헌을 위한 기초조사와 연구, 논의를 진행해서 18대 국회로 넘기고, 내년 총선 이후에 구성될 18대 국회에서 개헌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만약 노 대통령이 끝내 개헌발의를 한다면, 국회차원에서라도 논의를 해서 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을 통과시키지 않는 대신 초정파적인 개헌연구기구를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노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로부터도 외면당하고 있다. 그 이유를 다른 탓으로 돌리지 말고 스스로에게서부터 찾는 것이 좋지 않을까? 자신의 판단이 옳고 자신이 해결한다는 식의 독선과 오만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노 대통령이 아직도 87년의 거리를 기억한다면, 그리고 87년의 거리가 보여준 국민의 힘을 믿는다면, 이제 개헌을 국민들의 몫으로 넘길 때이다.
#개헌 #노무현 #단임제 #연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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