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스쿠터, 사람 잡을 뻔했네

등록 2007.03.30 11:30수정 2007.04.02 11:4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농촌에서 일어나는 사고 중에 교통사고 못잖게 농기계 사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작년에도 이웃 마을 어떤 농부가 경운기를 몰고 가다 언덕에서 구르는 바람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일이 있었다. 일상적인 농사일에 잠시 잠깐 방심하다간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사고가 바로 농기계로 인한 사고가 아닌가 싶다.


더구나 힘든 농사일에 반주 삼아 소주 몇 잔은 우습잖게 걸치는 농부들이다 보니 술기운에 느슨해진 마음이 사고를 더욱 부추기는 것 같다. 자동차 운전자라면 음주단속 때문에 조심이라도 하는데 농기계 운행하는 농부들 음주는 아예 단속대상에서 빠지는 음주 사각지대다. 밥 때나 새참 때, 입맛 당기는 반찬 서너 개 있으면 시원한 맥주나 소주 한두 병 비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여튼 농기계 사고가 참 무섭구나 생각을 했었는데 그만큼 무서운 사고가 또 있었음을 얼마 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우리 마을엔 거동이 불편한 생활보호 대상자가 몇 분 계신다. 그런데 작년인가? 정부에서 그 분들을 위해 무상으로 '전동 스쿠터'를 지급했다.

한 개에 몇 백만 원은 족히 나간다던데 내가 보기에도 보통 요긴한 것이 아니었다.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휠체어나 지팡이에 의지해 나다니기는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편리하게 고안된 전동 스쿠터는 그 분들만의 자가용이나 다름 없었다.

전동 스쿠터는 마을 안은 물론 조금 떨어진 이웃 마을 나들이까지 그 동안의 어려움을 한 쾌에 날릴 만큼 편리한 것이라 지금까지 자기 집 안에서 옴치고 뛸 수 없었던 그 분들의 행보를 단숨에 활달하게 만들었다.

효자상품이 된 전동 스쿠터지만...


사정이 그렇다 보니 다리와 허리가 아파 멀리 걷지 못하시는 어른들에게 전동 스쿠터는 효자상품으로 등장했다. 외지에 사는 자식들이 걷는 데 힘겨워 하는 노부모에게 전동 스쿠터를 사드리는 집이 늘어난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제법 떨어진 이웃집에 마실 가실 때 혹은 상당히 멀리 떨어진 논밭에 나가실 때 요긴하게 쓰이는 자가용 마련이 유행처럼 번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편리하고 유용하게 쓰이는 자가용이 때로는 사람을 해칠 만큼 무서운 흉기가 된다는 걸 내 눈앞에서 봤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우리 집은 동네 맨 앞 길갓집이다. 집 담장 바로 앞이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이어진 계단 논이고, 집 엽에 있는 마을창고 앞 너른 터가 공동 주차장이자 농사철엔 곡식을 널어 말리는 데 요긴하게 쓰이는 마을 마당이다.

요즘은 마을마다 서너 개는 설치한 분리수거함에 그 동안 모아놓은 유리병과 페트병을 처리하려고 막 대문을 나서 수거함으로 다가 서는데 길 아래 논바닥에 처박힌 사람이 눈에 띄었다. 대낮부터 누가 술 취해 넘어졌나 다가가 보니, 세상에 우리 마을에 홀로 사시는 아저씨가 내리 누르는 전동 스쿠터를 힘겹게 떠받치고 논바닥에 박혀있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 논으로 뛰어 들어가 스쿠터를 잡아봤지만 어찌나 무거운지 내 힘으로도 꼼짝 안했다. 누워계신 아저씨는 약주가 과하셨는지 술 냄새가 진동했다. 미뤄 짐작하건데 얼큰하게 취한 아저씨가 둔해진 감각으로 전동 스쿠터를 운전하다 논바닥으로 떨어진 것 같았다.

다행히 길과 논이 깊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깊은 논바닥에 떨어졌다면 살아나기 힘들었을 상황이었다. 그나저나 전동 스쿠터가 아저씨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게 있는 힘을 다해 붙잡고 있는 내 팔도 서서히 힘이 빠져 나갔다.

만에 하나 힘 빠져 스쿠터를 놓칠 경우 그 무거운 것에 아저씨가 깔리면 심각한 부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시골이 대충 그렇듯 오가는 사람을 만나기는 하늘에 별따기였다. 더구나 술 취해 모로 쓰러진 아저씨가 스쿠터는 아주 나한테 떠맡기고 그나마 받치고 있던 손도 놓아버린 상태였다.

팔은 마비가 될 것처럼 아프지, 옆구리는 끊어지지, 온 몸의 힘은 점점 빠지지, 앞이 캄캄했다.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진땀으로 완전히 기진맥진 했을 무렵 다행히 개 사료 파는 용달차가 나타났다. 확성기로 개 사료, 닭 사료 사라고 시끄럽게 소리소리 지르던 사료 장수 아저씨가 그 때처럼 반가운 적도 없었다.

그 아저씨의 도움으로 스쿠터를 끌어 올리고 아저씨를 일으켜 태워 보냈을 때 완전히 진이 다 빠져 흡사 토끼 용궁 갔다 온 심정이었다. 자칫했으면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는 아저씨를 구해낸 것은 다행이나 덕분에 한 며칠 간 온 몸이 쑤셔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전동스쿠터, 모든 기계가 다 그렇듯 이 스쿠터도 몸이 불편한 어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편리한 도구지만 때로는 치명적인 위험을 안겨줄 요소도 많다. 특히 지방도로라는 게 갓길이 거의 없는 곳이라 이웃 마을 나들이를 할 때 사고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다.

더구나 기력이 달리고 감각이 둔한 어른들은 그만큼 운전이 미숙한 형편이니 앞으로는 이런 어른들이 보이면 유심히 살펴봐야겠다. 인적이 드문 농촌사회이다 보니 도시 독거노인 못잖게 어려움이 많은 농촌 노인들의 모습이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2. 2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3. 3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이런 곳에 '공항'이라니... 주민들이 경고하는 까닭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사다리 타고 올라간 동료의 죽음, 그녀는 도망치듯 시골로 갔다 사다리 타고 올라간 동료의 죽음, 그녀는 도망치듯 시골로 갔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