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양산 보존하자는 목사가 빨갱이?

[인터뷰]소나무 농성 101일째 맞은 윤인중 목사

등록 2007.03.31 11:51수정 2007.03.31 15:03
0
원고료로 응원
"내려와 이 XX야, 쓰레기만도 못한 XX같으니라고."
"나무를 사랑해? 계양산을 보존해? X주접 떨어라 X자식아."
"저런 XX들 때문에 나라가 이 꼴이야, 이 빨갱이 같은 XX같으니라고."

a 계양산 소나무 농성 100일을 넘긴 윤인중 목사와 인터뷰 도중 나타난 골프장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들로 구성된 계양발전협의회 H 회장. 계양산에 나무를 심기 위해 올라가다 윤 목사를 발견하고 위협을 가했다. 사진은 '계양산을 보존하자'라는 플래카드를 삽으로 내리찍고 있는 모습.

계양산 소나무 농성 100일을 넘긴 윤인중 목사와 인터뷰 도중 나타난 골프장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들로 구성된 계양발전협의회 H 회장. 계양산에 나무를 심기 위해 올라가다 윤 목사를 발견하고 위협을 가했다. 사진은 '계양산을 보존하자'라는 플래카드를 삽으로 내리찍고 있는 모습. ⓒ 박지훈

30일 계양산 소나무 숲. 섬뜩한 적의가 담긴 욕설은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롯데의 계양산 골프장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들로 구성된 계양발전협의회 H 회장은 계양산을 지키기 위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윤인중 목사(인천민중교회연합회장)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지난 29일 소나무 농성 100일을 맞아 이날 진행된 인터뷰 도중 벌어진 일이다. H 회장은 계양산에 나무를 심기 위해 올라가다 윤 목사를 발견하고 욕설과 함께 돌까지 던졌다.

계양발전협의회 H회장, 윤인중 목사 위협

H 회장은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 들고 있던 삽으로 '계양산을 보존하자'는 플래카드를 내리찍고, 돌을 던지는 등의 위협행위를 10여분 가량 계속했다.

윤 목사는 "나무를 심으러 가는 마음은 생명을 살리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일 텐데 욕을 하고 돌을 던지는 등의 위협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롯데의 골프장 건설을 저지키 위해 지난해 12월20일 소나무에 첫 발을 디딘 후 101일째를 맞은 30일.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고공 시위를 이어온 그는 심리적 위협은 물론 오늘과 같은 물리적 위협에 종종 시달려 왔단다. 윤 목사는 "위협을 가한 것은 4번째"라며 "그러나 돌까지 던진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소나무 농성 100일 넘긴 내가 대견스럽다

그는 또 "비방과 욕설은 참아도 폭력은 참을 수 없다"며 "계양 경찰서에서 이 일을 묵과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 돌을 던지기 시작하면 계속 던지게 된다. 이는 사람이 폭력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00일을 넘는 기간 동안 고공 시위를 벌여온 윤 목사는 심경의 변화를 많이 겪은 듯 했다. 그는 "스스로 대견스럽다"며 "이렇게 오래 할 줄 꿈에도 못했다"고 웃었다. 또, "숲 속에서 하나님이 만든 작품에 취해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윤 목사와의 일문일답.

-소나무 농성 100일을 넘긴 소감은.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농성이 이렇게 오래 갈 줄 전혀 몰랐다. 이곳에서 하나님이 만든 작품들을 만끽하는 등 하루 하루가 특별한 체험의 연속이다."

-시위는 언제까지 계속되나.
"롯데의 골프장 건설 전면 철회까지다. 그러나 우선 계획은 오는 11월 6일까지로 정했다. 지난해 11월7일 계양산 골프장 건설 반대 인천시청 앞 시위가 오는 11월이면 1년째를 맞는다.

현재 비록 교인이 적지만 개척교회를 맡고 있어 교인들을 언제까지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시위가 1년째 되는 날 내려올까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단지 계획일 뿐 롯데의 골프장 전면 백지화를 위해 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롯데건설 3차 계획안 내놓을 기미 없이

a 지난 29일 소나무 시위 100일을 맞은 윤인중 목사. 30일, 백일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윤 목사를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지난 29일 소나무 시위 100일을 맞은 윤인중 목사. 30일, 백일 넘게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윤 목사를 만나 근황을 들어봤다. ⓒ 박지훈

-지난 2월16일 환경부의 롯데 골프장 2차 계획안 반려 소식을 듣고 어땠나.
"이제 승리했다고 생각했다. 롯데가 조만간 3차 계획서를 내면 3월말 정도에 (고공 시위가)끝날 줄 알았는데 롯데가 계획안을 내놓을 기미가 없다. 롯데가 3차 계획안을 내면 환경부 평가가 50일 정도 걸린다.

때문에 최소 2달 이상은 더 있어야 한다. 환경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입장은 계양산 골프장 저지 인천시민대책위보다 오히려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계양산은 인천 생태계에 중요한 녹지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어 롯데가 3차 계획안을 낸다 해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롯데가 3차 계획안을 언제 낼 것 같은가.
"늦어도 5~6월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2월28일 일본그리스도교회협의회에서 지지의 뜻을 보냈는데.
"계양산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 지지를 보내준 일본 교회협의회에 무척 감사했다. 롯데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이다. 이 기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부동산 투기와 유통업이 주요 수익 사업이다. 때문에 일본 시민단체에 국내 활동을 알리고 연대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본 환경 단체와 연대도 모색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일본 교회협의회에서 지지 성명을 내 준 것은 한일협조의 첫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 소나무에 발을 디뎠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많은 심경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많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올라왔을 뿐이다. 그저 롯데하고 싸워 골프장 건설을 저지시키기 위해 올라왔는데 100일이 넘게 나무 위에서 생활하며 참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나무 위에서 바라보는 숲은 기가 막힌다. 아침 햇살이 비치면 텐트 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저녁에 서쪽 하늘이 물들면 그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소나무 농성을 하며 얻은 것은.
"너무 많은 축복을 받았다. 또,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잃은 것이 있다면.
"특별히 잃은 것은 없다."

소나무 위에서 49번째 맞은 생일, "사람답게 살아야 겠다..."

-가족과 오래 떨어져 있지 않은가.
"78세 되신 노모가 눈에 백내장이 와 수술을 앞두고 있다. 이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죄스러운 생각이 든다. 아들이 옆에서 지켜주지 못하는 죄스러움이다."

-건강은 어떤가.
"특별하게 아픈 곳은 없다. 다만 발에 동상이 걸려 쉽게 낫지 않고 있을 뿐이다."

-'소나무 이웃(송린)'이란 아호가 생겼다고 들었다. 소나무가 특별하게 느껴질 것 같다.
"소나무만이 아니라 모든 나무가 특별하다. 나무가 생태계에 얼마나 유익한 존재인지 알아야 하고 또, 숲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세상이 선진 사회라 생각한다."

-소나무 일기를 중단한 이유는.
"오타가 너무 많아서다. 일기를 써서 내려주면 인터넷에 옮기는 이들이 오타를 너무 많이 낸다. 이래봬도 학보사 편집장 출신인데 용납할 수 없었다.(웃음)"

-일기에 '개마고원에 들어가고 싶다'고 쓴 글을 봤다.
"어릴 때부터 품었던 낭만적 꿈이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 때 개마고원하면 괜히 멋있어 보였다. 사실 이제 어떤 숲에서라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지난달 6일 생일을 맞았는데, 소나무 위에서 맞은 생일은 어땠나.
"49번째 생일을 맞았었다. 생일을 맞으며 든 생각은 순간순간 사람답게, 신앙인답게, 목회자답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이나 여러 매체에서 지구 온난화라든지 생태계 파괴 징후들이 보도되고 있지만 우리의 의식과 생활습관, 산업문화 방식은 크게 변화하지 않는다. 안타깝다. 교회가 다른 문제는 몰라도 환경과 생태 문제에 나서야 한다고 본다. 교회가 나서면 틀림없이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a 계양산 골프장 금지 플래카드. 롯데의 골프장 건설 철회를 염원하는 이들이 손바닥 도장을 찍었다.

계양산 골프장 금지 플래카드. 롯데의 골프장 건설 철회를 염원하는 이들이 손바닥 도장을 찍었다. ⓒ 박지훈

내려가면 목욕탕 제일 먼저 가고 싶어

-재밌는 일이 생겼다는 소리를 들었다.
"특별한 건 아니고 발씻기다. 따뜻한 물로 발을 씻는 재미란 매일 편하게 발을 씻는 이들은 알 수 없을 것이다. 소나무 위에서는 물 사용이 힘들기 때문에 발 씻는게 때로는 사치스런 행동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비싸게 발을 씻고 있다. 하루에 1.8리터 생수병 4개가 올라오는데 2개는 발을 씻고, 하나는 식수로 쓴다. 나머지 하나는 양치질 등 기타 용도로 사용한다."

-계양산 명물이 됐을 것 같은데.
"등산객들이 오며 가며 격려를 많이 해 주신다. 평일에는 백여 명, 주말에는 3백여 명이 산에 올라오는데 격려하며 떡이나 과일을 올려주시는 분들이 있다. 또, 인천시민단체들이 소나무 아래서 돌아가며 밤을 지키며 힘을 실어준다."

-내려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목욕이 가장 하고 싶다. 소나무에서 내려가면 목욕탕으로 바로 달려갈 생각이다.(웃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작은 존재 안에도 우주가 들어있다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고 든 생각은 솔 잎 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스쳤다. 강한 사람, 약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은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품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 그럼에도 최소한 시늉이라도 내고 그런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게 신앙인의 도리라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에큐메니안(www.ecumenian.com)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에큐메니안(www.ecumenian.com)에도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김건희·채상병특검법 부결,  여당 4표 이탈 '균열'
  2. 2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3. 3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한국만 둔감하다...포스코 떠나는 해외 투자기관들
  4. 4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
  5. 5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이충재 칼럼] 윤 대통령, 너무 겁이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